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304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30 조회수516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대림 제1주간 월요일]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8-2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어부인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제자로 삼기 위해서 부르신 복음입니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에서 오늘 복음은 의문이 없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는 말씀 한 마디에 생업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이런 의문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예수님과 시몬 형제가 만나는 장면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점이 오늘 복음과 다른 것 같습니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제자들을 처음 만나는 오늘 장면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리는데 주안을 두고 있다면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순명을 중시한 것 같습니다.

 

지난 금요일 대림특강에서 호인수 신부님께서는 성모공경 신심을 잠간 언급하시면서 우리 가톨릭에서는 성모님의 순명을 중시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가톨릭은 성모님의 순명을 강조하며 한편으로는 신자는 신부에게, 소속 사제는 주교에게, 주교는 교황에게 순명하는 의식을 심어주는데 활용하는 면도 없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도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순명이 먼저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에서 순명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에서 유래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순명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순명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명하기 보다는 사제에게, 사제는 주교에게, 주교는 교황에게 순명하는 것이 순명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물론 사제의 모든 지시가 복음 말씀과 하나도 틀림없다면 당연히 순명하는 것은 신자 된 도리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관점의 순명보다는 군대처럼 무조건적인 상명하복이 순명으로 인식되어 있으므로 이에 반발하는 신자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는 순명에 반발하는 신자들이 계속하여 늘어날 수밖에 없으므로 신자들의 불만을 순명으로 억누르는데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쇄신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이고 그 방향은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관계로 발전해 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세의 절대 왕정이 민주화 되었듯이 우리 교회도 민주화의 과정을 밟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내에서 평신도들의 의사가 많이 반영되어야하고, 주교의 선출은 지금의 임명방식에서 투표로 선출하는 제도로 전환되어야하며, 남성위주의 교계제도도 여성에게 문호가 개방되어야 합니다. 아직은 이런 목소리가 소수에 불과하지만 지금 세상은 급속한 속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으므로 다음 세대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너라.' 하신 말씀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이고 수도자는 수도자의 길을 선택한 이유로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각자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오늘 복음에 의하면 재물을 탐하는 인간에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는 말씀을 묵상하면, 낚는 대상이 고기에서 사람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고기는 재물을 상징하고 있다면 사람은 하느님의 뜻인 진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많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하느님을 생각하느냐, 못 하느냐로 구분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은 이성으로, 진리로 생각하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사람을 낚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오늘 제자들을 낚았듯이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서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는 말씀은 고기나 잡는 평범한 삶에서 진리의 삶을 살도록 인도해 줄 것이므로 너희도 내 가르침을 배워서 다른 사람을 인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렇듯 제자들은 진리의 삶을 통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른 것이며 다른 욕심이 있어서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기를 매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였으므로 재물에 관한 욕심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느님과 재물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저 역시 재물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이러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리스도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하셨으나 두 주인을 섬기고 있으므로 아니 재물을 더 섬기고 있으므로 오늘 제자들처럼 재물과는 결별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저는 무늬만 신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재물만을 섬기는 폐해에 대하여는, 11월 24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수원교구, 인천교구, 의정부교구, 서울대교구 소속의 사제 40여 분 참석하고 최덕기 주교님(전임 수원교구장)이 주례하신 '4대강 사업 중단과 팔당 유기농지 보존을 위한 생명평화미사'에서 이 날 강론을 맡은 조영준 신부(수원교구)의 말씀으로 대신하며 오늘 묵상을 마치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경제가 침몰한다!"는 외침과 함께 늑대의 몸을 감추고 양처럼 나타나서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면서 "국민들은 자신의 선택이 훗날 얼마나 큰 후회를 낳을 지 생각하지 못했다"며 한탄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발췌)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어부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시겠다며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야 함을 알려주셨으나
저희는 모든 것을 움켜지고 주님의 축복만 받으려고 하고 있으므로
주님의 가르침은 어느 하나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체
무늬만 그리스도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 자들이 아직도 이단논쟁을 하고 있사옵니다.
이번 성탄만큼은 저희 모두가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깨우침의 성령님을 보내주시어 주님의 길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고
특히, 용산참사의 유가족 분들과 구속된 분들에게 주님의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고
이 땅의 지도자에게도 주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자비의 성령님을 보내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