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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광과 존귀의 인간" - 11.28, 이수철 츠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30 조회수370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츠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1.28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다니7,15-27 루카21,34-36

                                                  
 
 
 
 
"영광과 존귀의 인간"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제부터 오늘까지 말씀묵상과 관련하여 골똘히 생각한 내용입니다.
 
못 미친다 생각되는 사람을 비하하여 흔히 짐승에 견주어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 다니엘서의 무도한 대제국들 역시 짐승에 빗대어 풀이합니다.
 
수도원 닭장의 수십 마리 닭들,
먹이를 주면 우르르 달려드는 모습이
흡사 이익을 찾아 우르르 모여드는
잘 길들여진 사람들의 무리와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곰 같다’ ‘돼지 같다’ ‘소 같다’ 라 들으면 그런대로 참아내겠지만, ‘쥐 같다’ ‘여우같다’ ‘개 같다’ ‘뱀 같다’, 라는 말을 들으면
심한 모욕감에 평생 상처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라지만 오늘날의 인간 풍속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동물보다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탐욕스런 인간들,
짐승의 수성(獸性) 넘어 악마의 마성(魔性)에 까지 이를 수 있는
참 무서운 인간들임을 깨닫습니다.
 
사람들에게 받은 큰 상처로 사람들을 무서워하는 것,
아마 사람들을 통해서 짐승 같은, 악마 같은 모습을 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래서 애완견을 많이 키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사람만큼 식생활, 성생활 문란한 동물도 없을 것입니다.
 
나무나 짐승은 늙어 가면서 품위도 있고 중량감도 느껴지는 데
대부분의 사람들 늙어갈수록 참 초라하게 보입니다.
 
나무처럼 품위 있고 아름답게 늙어 갈수는 없는지요.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영혼을 지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지정의(知情意)의 인간,
신망애(信望愛) 삼덕의 하느님을,
진선미(眞善美) 하느님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이게 짐승과의 결정적 차이점입니다.
 
아침 시편성무일도 시 다음 구절이 인간과 짐승의 차이를 분명히 합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
  천사들 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삼라만상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
  통틀어 양떼와 소들과 들짐승하며,
  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며
  바다 속 지름길을 두루 다니는 것들이오이다.
  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시편8,5-10).
참 아름답고 고마운 시편입니다.
 
인간과 짐승을 비롯한 피조물과의 구별이 분명합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인간이요
하느님께서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주시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신 인간입니다.
 
결코 짐승이 될 수 없는 고귀한 품위의 인간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추락하여 짐승들처럼 살아가고 있는지요.
 
다니엘서에 나오는 네 번째 몹시 끔직 하게 생긴 짐승이 상징하는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을 대적하는 네 번째 대제국을 상징합니다.
 
오늘 날의 대제국들,
대제국의 탈을 벗겨보면 어떤 모습의 짐승들일까요.
 
마찬가지 사람들 역시 사람의 탈을 벗겨보면
어떤 짐승의 모습일지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독서의 끔직한 짐승과 거룩한 백성의 전쟁,
오늘날 악의 세력과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전쟁을 상징합니다.
 
짐승은 처음에 거룩한 백성을 압도했지만
하느님의 개입으로 거룩한 백성의 승리로 끝나고
주님은 결정적으로 승리를 선언하십니다.
“나라와 통치권과 온 천하 나라들의 위력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주어지리라.
  그들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가 되고,
  모든 통치자가 그들을 섬기고 복종하리라.”

이미 하느님의 승리,
거룩한 백성의 승리에 참여하고 살고 있는 우리 믿는 이들입니다.
 
이래야 거룩한 품위의 존귀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평생, 방심은 금물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저절로 존귀한 품위의 인간이 아니라
방심으로 추락하면
본능만의 짐승이 될 수 있고
탐욕스럽고 잔인하고 포악한 악마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끊임없는 수행의 노력을 요하는 영적전쟁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업게 하여라.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닐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하느님의 존귀한 품위의 거룩한 자녀로서 살 수 있는 길은
위의 말씀 하나뿐입니다.
 
늘 깨어있는 삶,
절제와 극기의 자기훈련에 충실한 삶,
끊임없이 기도하는 삶만이
영적전쟁에 승리를 가져다주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영광과 존귀의 삶을 살게 합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이렇게 늘 깨어 기도하며 살아야
죽음이, 심판의 그날이 덫처럼 덮치지 않습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당신의 말씀과 성체의 은총으로
우리의 존엄한 품위를 회복시켜 주시고
늘 깨어 기도하며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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