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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305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01 조회수519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대림 제1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신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1-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루카 복음서에서 오늘 복음은 각 고을에 파견한 일흔두 제자들이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자 기뻐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세 말씀으로 이루어졌으며 각 말씀마다 담겨있는 뜻이 예사롭지 않은 말씀이므로 먼저 말씀의 뜻을 바르게 이해한 후에 이에 따른 묵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이 말씀에서 '이것을 감추시고' 하셨으므로 '이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그 다음 말씀에서 이어받고 있으므로 '아버지의 선하신 뜻'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도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알려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말씀은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모르고 하느님을 섬기고 있다는 말씀이므로 지금 우리의 일부 모습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이유도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알아서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선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하느님의 뜻'으로 또한 '하느님의 뜻'은 진리로 이해하여도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특이한 점은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이것'을 감추고 계시므로 그들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철부지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이 오히려 하느님의 뜻을 더 잘 알고 있다는 말씀이므로 민심이 천심이라는 우리의 정서와도 부합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다 아는 것처럼 설치고 있는 사람들은 유대사회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의 뜻을 다 아는 냥 설치는 사람들 때문에 민중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국민들을 철부지로 생각하여 국민의 뜻을 거슬러가며 자신의 생각대로 국정을 추진하거나 국민과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가며 법마저도 무시하는 잘못된 지도자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물론 독선으로 흐를 것이므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할 뿐입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모두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이를 아직도 문자 해석에 급급하여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받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달리 어떻게 해 볼 방법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는 비단 성경해석의 잘못에 그치지 않고 이 땅의 지도자의 생각도 이러한 것 같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모든 권한이 자신에게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모습은 위의 잘못된 성경해석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국민이 권한을 위임한 것은 국민의 뜻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신 말씀도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모두 깨달았기에 '그래서 예수님만이 하느님의 뜻을 알고 계신다.'는 뜻으로 묵상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아들 외에는, .....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다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좋은 독해력을 가진 사람들이 왜 유독 성경의 독해만큼은 문자 해석에 급급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아무도 하느님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누가 하느님을 알겠습니까? 우리 신앙 안에서는 오직 한분, 예수님뿐입니다. 

유대 민중들은 비록 하느님의 뜻을 잘못 알고 있었지만 하느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민족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알려주면 나머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유도 하느님의 뜻을 민중들에게 바르게 알려줬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하느님으로 민중들을 속이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겨왔던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알려주는 예수님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진실을 얘기하는 사람은 거짓된 자들에게, 이들에게 속고 있는 자들에게 수난을 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유대민중들은 하느님을 지성으로 섬겼지만 지금 우리는 하느님을 지성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다 큰 자식이 아직도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그런 유아적인 상태에 머물러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자들은 부모의 뜻은 생각할 필요도 없고 오직 내 바램만 있을 뿐입니다. 이렇듯 지금 우리는 하느님의 뜻은 관심도 없으므로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와는 상관도 없는 죽은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교회의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위한 교회이고, 교세를 확장하기 위하여 헛된 기대심리를 더욱 부채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근본 문제 중 하나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하느님을 섬기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누가 정확히 알 수 있으며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하느님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교회가 하느님을 대신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없으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예수님의 알려주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면 하느님을 그 누구보다 잘 섬기는 사람이며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무엇을 봤기에, 무엇을 들었기에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제자들이 보고 들은 것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병들은 이들을 치유해 주시고, 창녀와 세리 등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들을 한없이 사랑하신 모습을 보았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립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몸소 실천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사랑의 현장을 매주마다 하루는 보고 있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매주 금요일이면 오후부터 다음 날까지 무의탁 어르신들을 돌보는 요양시설에서 보낼 수 있느냐 하지만 저는 그곳에 가야 사람다운 사람들이 아름답게 사는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끼고 있으므로 오히려 그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어느 할머님이 들려주신 말씀을 소개하면, "하늘나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 하늘나라가 아니면 그 어디가 하늘나라이겠느냐? 때가 되면 하루 세 끼 밥을 주고, 간식도 주고, 아프면 치료해주고, 이 추운 겨울에도 추운 줄 모르고 살 수 있는 이곳이 하늘나라"라고 하였습니다. 또, "공기 좋은 곳에서 잘 먹고 편히 지내므로 죽지도 않는다며 어떤 자식이 이보다 더 잘 모실 수 있느냐" 하였습니다. 자칭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이 알려주는 하늘나라보다 이 할머님이 하늘나라를 더 정확히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사랑이 없는 자들이 어떻게 예언자가 될 수 있으며, 사랑이 없는 자들이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얘기할 수 있으며, 사랑이 없는 자들이 어떻게 슬기롭고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사랑을 어떻게 말로, 글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말로, 글로만 사랑을 얘기하는 자들보다 쌀 한 톨이라도 이웃과 나눠먹는, 배운 것이 없어서 하느님의 뜻을 몰라서 철부지 취급받는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 하느님과 하나님으로 나눠져서 싸우는 저희보다 훨씬 더 하느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며 오늘 묵상을 마치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들에게는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아무도 아버지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하느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하느님의 선하신 뜻만을 실천하여야 함에도
하느님을 섬긴다며 저희에게 축복만 내려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에서 빨리 벗어나 주님께서 알려주신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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