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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92) 얼굴도 모르는 그대에게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05 조회수935 추천수3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6785          작성일    2004-04-03 오후 2:43:57 
 
 
 

           (92) 얼굴도 모르는 그대에게

                                                          이순의

                        

ㅡ고맙습니다.ㅡ

전부는 아니더라도 양쪽 손가락을 사용하게 되면 제일 먼저 올리고 싶은 제목이 있습니

다.

ㅡ얼굴도 모르는 그대에게ㅡ

글을 쓸 수 없다는 아들의 알림으로 새롭게 알게 된 감사들이었습니다.

회신을 달아주신 분들과 개인메일에 관심과 사랑을 전해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날마다 올리는 한편의 수필 같은 글을 묵상이라고 올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생각을 해야 하고 그 생각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군더더기들을 제거하고

글을 올리기 위해 매일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한 다음에 글과 연결 지어서 맺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아마 함께 묵상 글을 쓰시는 분들이라면 좀 더 쉽게 이해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런 묵상 글을 올리라고 누군가 요청한 적도 없고, 강요한 적도 없기 때문에

혼자만의 기도이며 봉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로는 소재와 묵상이 서로 맞지 않아서 포기하고 싶은 난관도 있었습니다.

하루 세끼의 밥을 먹고 내가 주님께 해 드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볼 때

이것뿐이었습니다.

곰살갑게 옆에 앉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자분자분하게 들려드리는 일 이외에

어떤 것도 해 드릴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 드린 나의 색깔 이야기들이 여러분들께 기쁨이 되기도 하고 슬픔이 되기

도 하였다는 소식을 받으면서 하염없는 감사와 은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글이 길고 시시콜콜하여 초 단위로 넘어가는 인터넷 시대에 누가 감히 감동을 실어 따분

하게 읽어 주시기나 할까? 라는 의구심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늘 제 글의 창

을 열어 보신 분의 30%만 읽어 주셨을 것이라고 가늠을 하곤 했었지요.

 

그렇게 귀하신 분들 중에 안부를 전해 주시기도 하고 쾌유를 빌어주시기도 하는 분수에

 넘친 애정을 받으면서 무어라고 인사를 올려야 할지 감흥이 헤아려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손가락이 조금이라도 구실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다 나았습니다." 라는 소식

과 감사의 글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그대에게" 라는 연정의 근사한 제목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어???

그런데 제목처럼 멋있지를 못한 편지가 써 지고 있네요?! 어떻게 하지요?(^-^)

 

ㅡ얼굴도 모르는 그대를 그려봅니다.

ㅡ얼굴도 모르는 그대의 따스운 이야기가 살갑습니다.

ㅡ얼굴도 모르는 그대의 정다움이 그립습니다.

ㅡ얼굴도 모르는 그대의 기다림에 눈물겹습니다.

ㅡ얼굴도 모르는 그대의 너그러움에 부끄럽습니다.

ㅡ얼굴도 모르는 그대의 인내심에 송구합니다.

ㅡ얼굴도 모르는 그대의 관대한 용서가 망극하옵니다.

ㅡ얼굴도 모르는 그대의 걱정에 탄복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ㅡ얼굴도 모르는 그대의.......

ㅡ얼굴도 모르는........

ㅡ얼굴도.......

 

무엇보다 이중적 인간성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거침없이 노출시키고 있는 제 모습을 부

정하기도 하고 수용하기도 하면서 창을 열어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감사

합니다.

떫은맛이 강하고 고약한 냄새나는 글들도 솔직한 제 내면의 실체이자 곧 모든 인간의 실

체일거라고 생각하면서 때로는 긍정의 편에 서서 함께 난도질을 하기도 하실 것이고, 때

로는 부정의 편에 서서 원망의 화살을 깎기도 하실 것입니다.

 

어차피 모든 사람은 자기가 살아가는 경험의 반경 안에서 펴지기도 하고 오므리기도 하

며 수용의 자세를 마련할 테니까요.

그러므로 어떠한 부정에도 어떠한 긍정에도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묵상 글은 제가 써서 주님께 봉헌하고 있지만 그 감동의 굴곡들은 얼굴도 모르는 그대들

의 봉헌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너무나 다행히 주님께서는 누구의 편도 아닌 모두의 편이 되셔서 지긋이 무언의

 미소만 쏟으실 것입니다.

 

얼굴도 모르는 그대의 모습 그대로를 주님께서는 사랑하신다고 믿으니까요.

나를 위한 긍정보다 그대의 마음 그대로를 주님께서는 더 소중히 여기며 그대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십니다.

경상도 출신이신 채선생님의 글이 빠져서 아쉬웠습니다. 제가 경상도를 싫어하지 않는

데도 제 글 중에서 그것이 느껴지셨다면 분명히 채선생님의 마음에 동감을 표시하고 싶

으신 분들의 위로가 되었을 텐데 어느 날 글들이 빠져서 개인적으로 몹시 죄송했습니다.

 식탁에 써 두신 기도문들도 좋았습니다. 부부의 모습도 행복하셔서 몹시 즐거웠습니다.

 

아마도 대통령께 쓴 글에 대한 파장이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국가도 하

느님의 뜻이며, 사람이 사는 모든 공간과 공기 안에 있는 모든 존재가 하느님의 숨결에

서 벗어날 수 없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그런 묵상을 시대적인 아픔으로 올릴 수 있었습

니다.

물론 저의 모든 글들이 "생활 속의 관상(Contenflazione in Azione)" 이라는 테두리를 벗

어나지 않습니다.

생로병사, 희로애락, 빈부귀천, 등 그 어느 것도 생활 자체가 관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을 중심에 두었다고 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한계성 안에서 공존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자기 안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

 짓고, 성당에서는 하느님을 만나고 추한 일상의 순감에는 하느님을 제외시킨다면 아마

모르긴 해도 제 생각으로는 구원을 위해 죽으러 오신 주님께 왜 죽으셔야 하는지를 모르

겠습니다. 라고 외면하는 것과 같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좀 아니 많이 거북하시지만 국가의 현실 또한 그리스도인이 속해있는 현실적인

 삶이므로 내가 이 땅에 태어날 수 있도록 터를 마련해 주신 하느님께 대통령을 위해 올

릴 수 있었던 기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소 때문에 좀 장난스러이 생각하신분도 계시겠지만 국가의 중요성과 고유성이 전 우

주적으로 유일한 나의 터전임을 강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회신을 달으신 임선생님께도 여전히 그 고유권한을 인정하고 답신을 드리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이 논란의 여지가 넘쳐나는 관계로 묵상 글마저 소란이 일어난다면

 그 아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을 것 같아서 부득이 임선생님의 고유 권한에 제동을 거는

 답신을 드린 점에 너그러이 용서바랍니다.

 

이제 제 마음이 좀 편안해 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 크신....... 얼굴도 모르는 분들의 넘치는 사랑에 답을 드려서 조금은 위로를 삼을

 수 있겠고, 반감을 표시해 주신 분들께는 저의 본심을 알려 드릴 수 있어서 다행한 감사

를 드립니다. 한편으로는 서로 얼굴을 모르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

다.

 

추접하게 떼 끼었다고 푸른 지폐 두 장에 짝꿍을 구박하는 졸부의 모습 또한 범으로 보

시고, 여걸로 보시는 분이 계시니, 얼굴도 모르는 그대들께 제 얼굴을 보여드릴 수 없다

는 현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후후후

참! "생활 속의 관상(Contenflazione in Azione)"이라는 말은 스승께 수업 중에 배운 영

성인데요. 저의 화살기도 입니다.

좀 어렵다고 하는 영성인가 본데요 실제로는 저도 잘 몰라요.

다만 제가 스승의 고지에 다다를 수는 없지만 저의 일상이 관상이게 해 주시라는 기도로

 늘 쫑알거리는 화살기도입니다.

 

"Contenflazione in Azione!" 라고 쫑알거리는 매일 매순간이 20년이 되었네요.

어쩌면 이런 화살기도의 은총 덕으로 일상이 시시콜콜한 묵상 글을 올릴 수 있는 특혜를

 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합니다.

20년 동안 부자 되게 해 주시라고 기도했다면 지금쯤 부자가 되었을 텐데 저는 지금도

 일상을 봉헌하는 법을 잘 알아내지 못 해서 부자가 되고 싶은 기도가 안 되나 봅니다.

 

이거 영어 아니구요. 이태리 말인데요. 얼마 전에 교회신문에 어떤신부님께서 영어로

영성풀이를 하셨더라구요. 학술적으로는 어렵지만 제 수준으로는

"사는 게 하느님이여!"

해 버리면 간단한 영성입니다. 히히히히! 알고 싶으신 분은 제게 묻지 마시고요. 서울교

구 쪽에 문의하시거나 본당 신부님 쪽으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하하하하하! 저는 20년

 전에 살레시오 수녀님이신 스승께 수업 중에 배운 겁니다. 그 때도 일상을 못 이기고 너

무 힘들어서 거의 졸았지만 이렇게 멋진 영성을 20년씩이나 지니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일생동안 마음을 다해 품고 갈 수 있는 지향을 주신 저의 스승께도 감사합니다.

 

ㅡ얼굴도 모르는 그대ㅡ께서는 이미 일상이 기도뿐만 아니라 관상으로 봉헌되고 계신

가요? 저는 아직도 그게 잘 안됩니다.

앞으로도 20년은 더 "Contenflazione in Azione!" 라고 화살기도를 쫑알거리고 다닌다면

 영성이라는 서광이 좀 보일까요??????

제가 두 손을 쓸 수 있을 때 제일 먼저 쓰고 싶은 묵상 글을 써 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ㅡ얼굴도 모르는 그대에게ㅡ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참! 하나 더! 함께 글 올리시는 박상대신부님과 양승국신부님, 한참 인생의 선배님이신

 박영희님과 그림을 함께 올려주셔서 즐겁게 해 주시는 여박사 배순영님과 창이 화려한

 황미숙님 그리고 근래에 글을 열심히 올려주시는 분들께도 반가운 인사 전합니다.

모두모두 얼굴도 모르는 그대에게 사랑전합니다. 행복하세요.

아차! 양승국신부님은 제외군요. 양신부님은 저를 아시지요? 그러니까 제외입니다.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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