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나는 몇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는가?" 12.1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15 조회수440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2.15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스바3,1-2.9-13 마태21,28-32

                                              
 
 
 
 
 
 
"나는 몇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는가?"
 
 
 


과연 여러분은 몇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까?
한 얼굴의 진면을 지녀야 참 좋은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찾아 진실해 질수록 하나의 진면(眞面)이지만
하느님께 멀어져 진실이 사라져갈수록 여러 개의 가면(假面)들입니다.
 
자리나 지위 따라 가면도 늘어나기 마련이니
끝까지 한 얼굴의 진면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요.
 
수많은 가면을 번갈아 바꿔 써가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입니다.

“생긴 대로 살라”
“생긴 대로 놀라”
가면 없이 제 모습 그대로 자유롭게 살라는 말입니다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힘든, 가짜가 횡행하는 시대입니다.
 
가면(假面), 가발(假髮), 가화(假花) 등
한참 들여다보고 만져봐야 확인되는 가짜들입니다.
 
하여 참 행복, 참 평화, 참 기쁨, 참 말 등
‘참’자가 들어가는 말도 많습니다.
안팎이 같은 한 얼굴의 진면을 지닌 진실한 사람이 신뢰를 받습니다.
 
또 신뢰보다 큰 자산도 없습니다.
 
직장에서 가면을 쓰고 살다가 집에서는 가면을 벗어놓고,
사람들 앞에서는 가면을 쓰고 살다가
하느님 앞에서는 가면을 벗어놓은 사람들,
바로 이게 약한 사람들의 실상입니다.
 
본의든 타의든 두려움과 불안에 자기방어본능 상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약하고 불쌍한 인간들입니다.
 
어디서든 가면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이
진정 자유롭고 용기 있는 사람들입니다.
 
진정 하느님만을 찾을 때
언제 어디서나 한 얼굴의 진면으로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가면이 통하지 않습니다.
 
가면을 꿰뚫어 마음속을 들여다보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벌거숭이로 드러날 뿐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앞에 일체의 가면들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립니다.
 
하여 사람 눈에 의인이 하느님 눈엔 죄인일 수 있고,
사람 눈에 죄인이 하느님 눈엔 의인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진복팔단,
가면이 사라진 참 사람들에 대한 축복 선언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가면 없이 한 얼굴의 진면을 살았던 성인들이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주님의 충격적인 폭탄선언입니다.
 
세리와 창녀들, 사람들 눈에는 죄인일지 몰라도
하느님 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가면이 필요 없는
가난하고 진실한 한 얼굴의 사람들입니다.
 
요한이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가면을 쓴 완고한 기득권층의 사람들은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습니다.
 
이 기득권층의 사람들은
요한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믿지 않았습니다.
 
끝내 가면을 벗지 못했습니다.
 
또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맏아들은 포도밭에 일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싫습니다.’ 대답했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감으로 아버지의 뜻을 따랐습니다.
 
이런 회개의 실천을 통해 서서히 벗겨져 가는 가면들입니다.

하느님만을 찾는 수도승들은 한 얼굴의 진면을 지닌 자들입니다.
 
하여 수도자들에게 진실과 성실은 생명입니다.
 
생활양식 또한 가짜가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미사와 성무일도를 통해 하느님을 대면함으로
한 얼굴의 진면만 남게 됩니다.
 
회개란 끊임없이, 하느님께로, 공동체에로, 참 나에게로 돌아가는 행위요
더불어 저절로 벗겨지는 가면들입니다.
 
바로 1독서 스바니야 예언자는
이런 가면들이 없는 진실한 무리의 유토피아 공동체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수도공동체의 이상이기도 합니다.

“나는 네 한 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하느님 친히 울타리가 되어 보호해 주시니
그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가난하고 진실한 이들의 자유로운 공동체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참 얼굴을 회복시켜 주시고
이런 유토피아공동체를 만들어 주십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