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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는 모두 주님의 용서를 먹고 사는 죄인들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18 조회수365 추천수2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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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우리는 모두 주님의 용서를 먹고 사는 죄인들


다윗이 부하 장수의 아내와 몰래 정을 통한 뒤 아기를 가졌다는 말을 듣고 그 부하 장수를 죽게 만듭니다.
이 내막을 다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보실 때에, 다윗의 행동이 얼마나 가소롭고 우스꽝스럽겠습니까?

우리 자신도 또한 다윗처럼 행동하고 있으니,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여전히 우리는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뻔뻔스럽게 남을 비판하고 흉을 봐도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연약한 인간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살아야 합니까?


1.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 죄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바로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인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신체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 음식을 잘 섭취해야 하듯이, 영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하늘의 양식을 풍족하게 먹어야 합니다.

다윗이 하느님을 늘 가까이하면서 살던 사람인데, 육신적으로 고달픈 일이 없으니까, 영적으로 굶주리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무서운 죄를 짓게 되었고, 그 결과 엄청난 불행을 겪어야 했습니다.
죄를 뿌리면, 반드시 뿌린 사람이 그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씨를 뿌린 당사자만 거두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과 후손들까지도 그 쓴 열매를 먹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나 한 사람의 행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아무렇게나 멋대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레벤슨'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다면 언제나 친절하게 말하고, 사랑스런 눈을 갖기를 원한다면 사람들의 좋은 점을 보도록 노력하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다면 너희 음식을 배고픈 사람에게 나눠주고, 아름다운 머릿결을 갖고 싶다면 어린아이에게 하루 한 번씩 네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다면 결코 혼자서는 걸어가지 말라."

더욱 온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래 모습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우리 인간의 죄를 없애기 위해 우리 대신 겸손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자신이 죄를 지어 죽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다른 사람에 향해서 '너는 죽어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2. 우리는 진리에 따라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특별하신 은총으로 예수님을 믿게 됨으로써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죄에 대하여 분노하고 괴로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를 하느님 앞에 털어놓음으로써 그 죄의 굴레에서 속히 벗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한 사탄의 세력이 그 죄를 빌미삼아서 우리를 종으로 부려먹게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아무 죄나 잘못이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마냥 비난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거듭나고 온전하게 됨으로써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행동할 때에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남의 흉보기를 일삼거나 비난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치고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에 대해서 큰소리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크게 분노하고 괴로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새롭게 살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이제부터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상대방의 결점을 사랑으로 덮어주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자기 잘못을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참고 기다려주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잘못을 다시 한 번 용서하여 주시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큰소리치지 말고, 하느님 앞에서 더욱 겸손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수환님)




[12월 19일, 토요일] 생명의 거룩한 말씀 '복음' 
<루카 1,5-25>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사제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기로 결정되었다.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한편, 즈카르야를 기다리던 백성은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와서 말도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어떤 환시를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오늘의 묵상]
즈카르야 사제에게 아이가 없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였습니다. 제비뽑기로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게 된 것도 섭리였습니다. 그가 천사를 보고 놀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이끄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릅니다.

젊은 시절, 그는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수없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것에 대한 절망도 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때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제야 그는 천사를 만나 아이를 갖게 될 것을 알게 됩니다. 천사는 얼마나 장황하게 말하는지요? 그만큼 주님께서도 기다려 오셨던 일입니다. 그런데 즈카르야는 항변합니다. ‘그토록 청할 때는 침묵하시더니, 이제 주신다는 것입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즈카르야는 ‘인간적 계산’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갖는 것 자체가 ‘기적인 것’을 그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천사는 그를 질책합니다. 그리하여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벙어리가 되라는 ‘보속’을 줍니다. 그제야 즈카르야는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말은 잃었지만, 깨달음은 얻었던 것입니다. 그는 시련을 견디어 냅니다. 아들 요한을 위해 참아 냅니다. 우리 역시 보속이라는 느낌이 오면 ‘변명’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깨달음에 닿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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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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