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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의 영원한 성군(聖君)이신 주님" - 12.1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18 조회수361 추천수8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2.18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예레23,5-8 마태1,18-24

                                            
 
 
 
 
 
"우리의 영원한 성군(聖君)이신 주님"
 
 
 


성왕(聖王)같은 지도자가 참으로 그리워지는 시절입니다.
성왕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성군과 같은 뜻으로
‘덕으로 나라를 다스린, 어질고 훌륭한 임금’이라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나라든 사회든, 그 어떤 공동체든 지도자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요즘 베네딕도 수도회의 한국 진출 100주년 기념으로 출판된
‘분도통사’를 보며
조선말기 및 한일합병 이후 20세기 초 중반의 나라 현실을 보며 절감합니다.
 
조선 말 어리석은 임금 및 위정자들로 인해 자초한 화입니다.
 
당시 베네딕도회 선교수도승의 글을 일부 소개합니다.
“한국인들의 경제관념은 너무나 후진적이다.
  한국인들은 무위도식의 경향이 강하며 독선적이고 불성실하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

아주 비관적이요 부정적 견해입니다만
이 또한 당시의 현실이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선교사의 글입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도시든 농촌이든 심각한 가난을 목격한다.
  가난한 사람 대부분은 본인 때문에 가난을 겪는 게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말없이 초가집 앞에 멍하니 앉아 허공을 응시하면서
  다음 번 채찍질을 기다리는 것 같다.
  이런 고통스러운 삶이 세례로 이끌어 주기도 한다.
  동아시아 민족들은 그들에게 숭고한 목표를 가리켜 줄
  그리스도교의 조력자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고통스러운 길은 회한과 볼세비즘으로 이끌 뿐이다.”
바로 이게 100년 전,
20세기 초 우리의 참 가난한 절망적 현실이었습니다.
 
아마 1독서의 예레미야도 이와 대동소이한 절망적 현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절망에 머무르지 않고
영원한 성군의 도래를 예견하며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 희망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보라, 그 날이 온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여,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정의’라고 부르리라.”

바로 우리의 영원한 성군이신 주님 탄생이 예고되고 있고,
지금 대림시기에 우리는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성군이신 주님은 모든 지도자의 모델입니다.
 
주님처럼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여
공동체에 공정과 정의, 평화를 이루는 지도자를 모신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하겠는지요.

바로 이런 성군의 모습에 근접해 있는 분이
오늘 복음의 주인공인 의인 요셉입니다.
 
아침 성무일도 두 번째 후렴이 생각납니다.
“시온산은 우리의 힘과 피난처이니,
  구세주는 그의 성과 보루가 되시리라.”

성 요셉의 성가정을 상징하는 구절 같습니다.
 
성과 보루가 되는 요셉 있어
시온산과 같이 힘과 피난처가 된 요셉의 성가정이었습니다.
 
의인 요셉은 참으로 진지한 침묵의 사람이었고,
배려와 지혜의 사람이었으며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한 구절이 요셉의 인품을 요약합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이런 의인을 당신의 도구로 쓰신 눈 밝으신 하느님이셨습니다.
 
이런 요셉이 깊은 침묵의 기도 중에 고뇌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을 때
요셉의 꿈에 나타난 주님의 천사였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즉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침묵의 사람,
배려의 사람,
기도의 사람,
순종의 사람,
믿음의 사람으로서의 요셉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나는 복음입니다.
 
이런 가장을 통해 태어난 우리의 영원한 성군이신 주님이십니다.
 
복음 중 예수님의 신원을 분명히 보여주는 다음 두 구절이 참 은혜롭습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임마누엘은 번역하며,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의 영원한 성군이신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임마누엘 하느님으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자 우리에게 오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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