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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이 희망입니다." - 12.2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20 조회수622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2.20 대림 제4주일                                                
미카5,1-4ㄱ 히브10,5-10 루카1,39-45

                                                      
 
 
 
 
 
"사람이 희망입니다."
 
 


“사람이 희망이다”
어느 시인의 외침이 생각납니다.
 
요즘 저 출산에 대한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는데
아무리 땅 넓고 좋은 건물 즐비한 나라도 사람 없으면 망합니다.
 
아무리 수도원의 환경이 아름답고 건물이 좋아도
거기 살고 있는 수도자 없으면 수도원도 망합니다.
 
급격한 수도성소의 감소로
고령이 되어 죽어가고 있는 유럽의 수도원들 얼마나 많은지요.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몇 번 인용한 말마디 인데
가끔 생각나는 십여 년 전 어느 분의 고백입니다.
 
사람은 많아도 희망과 신뢰의 사람, 참 만나기 어려운 시절입니다.
 
하느님의 심정도 우리와 흡사할 것입니다.
 
사람 만나기 어려운 것은 예나 이제나 똑같습니다.
 
다음 대목들에서 사람 하나 만났을 때의 하느님의 기쁨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그러나 노아만은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
  그 당시 노아만큼 올바르고 흠 없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었다.”(창세6,8-9).

노아 하나를 발견했을 때의 하느님의 기쁨이 감지됩니다.
다음은 민수기의 모세입니다.

“모세는 실상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다.
  땅 위에 사는 사람 가운데 그만큼 겸손한 사람이 없었다.”(민수12,3).
위의 노아나 모세 같은 사람 하나 만나면 참으로 사는 맛을 느낄 것입니다.
'사람이 희망이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입니다.
 
이런 사람 하나 맛으로 살아가는 하느님이요 사람들입니다.
 
다음은 하느님이 사탄에게 욥이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그래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만큼 온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은 땅위에 다시없다.”(욥1,8).
이런 욥 같은 사람이 희망입니다.
 
욥 같은 갑부가 이런 품성을 지녔다는 게 놀랍습니다.
 
노아보다 노아를, 모세보다 모세를, 욥보다 욥을 잘 알았던 주님이셨습니다.
 
노아나 모세, 욥은
아마 하느님이 이렇게 인정해 주시고 있음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입니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사람이 나를 몰라준다고 서운해 할 것 없습니다.
사람은 몰라줘도 하느님만은 나를 알아주십니다.
누가 뭐래도 하느님 앞에 바르게 살면 됩니다.
수도자는 무엇을 하러,
무엇이 되려고,
무엇을 이루려고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느님을 찾아, 하느님의 사람이 되려고 수도원에 왔다고 합니다.
 
사제가, 수도자가 되기 이전에 사람이 되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게 수도자의 유일한 목표이자 평생과제이기도 합니다.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들 역시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사람이 되려는 거룩한 욕심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작은 사람이 되십시오.
작음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하느님이 특히 좋아하는 작은 사람입니다.
 
키가 작은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라
겸손하고 진실하여 내(ego)가 없는 사람입니다.
 
키나 체구는 작아도 겸손으로 자기를 비워
마음은 한 없이 깨끗하고 큰 사람입니다.
 
앞서 인용한 노아나 모세, 욥 모두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던 작은 사람의 전형입니다.
 
도대체 거짓이 교만이 허영이 전혀 없는 참 사람들입니다.

주님 역시 작은 분이셨습니다.
 
미카 예언자가 예언하는 구세주의 탄생지 베들레헴, 참 보잘 것 없이 작습니다.
 
사람은 지나쳐 버리겠지만 하느님은 절대 놓치지 않고
이런 보잘 것 없는 곳에 자리를 잡고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 것 없지만,
  나를 위하여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 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그 아득한 옛날에 이미 구세주 탄생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대림 제 4주일, 바로 이런 주님 오실 날도 며칠 안 남았습니다.
 
보잘 것 없는 곳에서 태어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예수님이십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작은 자들, 작다고 얕봤다가 큰 코 닥칩니다.
하느님의 능력에 힘입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말씀처럼, 비단 예수님뿐 아니라
진정 하느님의 능력으로 충만한 작은 자들은 그 자체가 평화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와 엘리사벳 자매들 역시 작은 자의 전형입니다.
유다 산악 지방의 보잘 것 없는 곳에 사는
작은 자 엘리사벳을 찾아 간 작은 자 마리아입니다.


하느님만을 찾으십시오.

하느님을 찾을 때 저절로 하느님께 희망과 신뢰를 두게 됩니다.
 
하느님을 볼 때는 희망이지만 세상이나 사람을 볼 때는 절망입니다.
 
하느님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진정 하느님이 희망이 될 때 비로소 사람이 희망이 됩니다.
 
하느님께 신뢰를 둘 때 비로소 사람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들 그대로 희망의 사람들이요, 신뢰의 사람들입니다. 그
 
러니 하느님이 희망이 될 때 비로소 사람이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찾을 때 저절로 겸손과 진실의 작은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과 멀어질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탐욕과 무지, 허영과 위선이 그를 감싸버립니다.
 
본질을 살지 못하고 부수적인 것들을,
존재를 잊어버리고 소유의 노예 되어 삽니다.
 
모두가 큰 사람 되기를 추구하는 참으로 위태한 세상입니다.
 
주변의 모두가 온통 큰 사람 되라는 유혹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진정 단순하고 소박한 참 사람 만나기 힘든 세상입니다.
 
작은 자 되어 살기 위해 순례의 여정에 올라야 합니다.
온갖 유혹에 맞선 고독하고 힘든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노아나 모세, 욥, 당대의 하느님의 작은 자들 한결같이 고독하고 외로웠습니다.
 
요한을 잉태하기까지의 엘리사벳과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 역시 고독과 외로움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분들은 고독하고 힘들수록 하느님을 찾았고
하느님과 함께 살면서 작은 자로서의 자기의 정체성을 지켰습니다.
 
오늘 히브리서에서 예수님의 고백은
하느님을 찾는 자들인 우리 모두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으니
바로 매일미사의 은총이기도 합니다.
 
매일 미사를 통한 성화은총이
우리를 거룩하고 겸손한 작은 자 되어 살게 합니다.

도반 없이 혼자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혼자서는 참 사람 되는 길은 요원하며 폐인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고립 단절된 혼자의 상태가 바로 지옥입니다.
 
 이래서 좋든 싫든 공동생활입니다.
 
존재는 관계입니다. 관계를 떠난 존재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찾을 때, 저절로 겸손하고 진실한 작은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의 좋은 도반 되어 살 때 나타나는 좋은 도반의 사람들입니다.
 
내가 교만과 탐욕, 무지로 눈이 가려져 있으면
아무리 좋은 스승, 좋은 도반이 나타나도 알아보지 못해 다 놓치고 맙니다.

스승 없다고, 좋은 도반 없다고, 좋은 사람 없다고 탓할 게 아니라
먼저 나부터
좋은 제자 되는 것이,
좋은 도반 되는 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도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엘리사벳과 마리아, 진정 이심전심의 참 좋은 영적도반입니다.
 
하느님을 찾았던 겸손과 믿음의 여인들,
서로 눈이 열려 주님 안에서 참 좋은 도반임을 알아봅니다.
 
한 눈에 마리아의 정체를 알아본 엘리사벳은 기뻐 환호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궤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참 좋은 도반 엘리사벳의 말에
마리아의 모든 의혹과 스트레스는 다 풀렸을 것이며
하느님의 작은 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도 분명히 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희망입니다.
 
사람보다 더 귀한 보물은 없습니다.
사람을 아끼고 존중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겸손하고 진실한 작은 사람이 되십시오.
 
하느님만을 찾으십시오.
 
영원한 도반이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사람 도반들도 모여듭니다.
이렇게 살아야 비로소 사람은 희망이다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자 도반이시며
참 좋은 분이신 주님은 우리와 함께 사시고자 오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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