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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 21일 대림 제4주간 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21 조회수1,057 추천수17 반대(0) 신고
 

12월 21일 대림 제4주간 월요일-루카 1장 39-45절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내게 큰일을 하신 하느님>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신성(神性)을 드러내는 일정한 공간이나 영역을 갖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자신들이 신봉하는 절대자가 현존하며, 신자들은 그곳에서 절대자를 만납니다. 타종교에서는 그런 곳을 교당, 법당, 회당, 예배당, 신전이라고 합니다만 우리 가톨릭에서는 그런 곳을 성당, 교회, 본당, 성전 같은 말로 표현합니다.


   암울했던 군부독재 시절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렸던 많은 사람들이 명동성당으로 몰려오곤 했습니다. 천막을 치고, 현수막을 내걸고, 단식투쟁을 했습니다. 협상이 결렬되고 대치상태가 지속되던 어느 순간 시위대들은 공권력을 피해 성당 안까지 쫓겨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뒤를 쫒던 경찰병력은 성전 문 앞에서 발길을 멈추곤 했었는데, 그게 성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고 예우였습니다.


   이처럼 신앙인들에게 있어 성전은 목숨과도 같은 대상입니다. 그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방어해야하는 생명과도 같은 도성입니다. 이런 이유로 신앙인들은 세상으로부터의 오염과 훼손으로부터 성전을 지켜내려고 목숨까지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아기 예수님 잉태로 인해 이제 성전의 의미가 크게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라는 한 가난하고 어린 처녀의 몸이 하느님의 현존장소가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육신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처가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자궁이 하느님의 도성이자 새로운 예루살렘이 된 것입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리아라는 어린 처녀의 작은 자궁이 하늘보다 더 높고 바다보다 더 깊고 우주보다 더 큰 ‘그’를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눈, 현실의 눈, 인간의 눈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오직 성령의 눈이라는 새로운 프리즘을 통해서만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특별한 사건입니다.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마리아의 인생을 감싸셨습니다. 마리아의 나약함을 덮으셨습니다. 마리아의 어둠을 밝히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큰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 하느님께서는 똑같은 방식으로 오늘 우리에게 큰 일을 하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엄청난 하느님의 초대 앞에 마리아가 지녔던 의혹과 망설임을 숨김없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마리아는 인간적으로 바라봤을 때, 너무나 이해하기 힘들고, 너무나 걱정되고, 너무나 가혹한 하느님의 초대 앞에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처녀로서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신앙여정은 한마디로 힘겨웠습니다.


   그렇다고 마리아의 신앙이 회의적이거나 폐쇄적인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꼬치꼬치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무서워서 도망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느님의 신비 앞에 자신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기꺼이 수용했습니다. 지금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겠지만 일단 인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그 말씀을 마음 깊이 간직했습니다. 그 말씀에 대한 평생에 걸친 묵상을 시작하였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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