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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서묵상 모세오경 「내가 네 힘이 되어주겠다」에서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27 조회수394 추천수1 반대(0) 신고

 

 
아담 내외는 알몸이면서도
 서로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창세 2,25)


하느님께서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고 하신 것은 사람이 이웃과 단절된 상태에서
능력과 업적을 쌓아가며 성공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공동체성이 인간의 본질에 속한다는 말씀이다.
물론 교회 역사 안에서도 사막의 교부들처럼 홀로
하느님을 체험하는 여정을 간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이 떠났던 것은 사람 사이로 돌아오기 위함이었다.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이웃과 관계를 갖기 위해
주님을 깊이 체험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봉쇄 수도원의 수도자들 역시 기도와 관상 안에서
주님과 세상을 만나도록 부름받았다.

아담 내외가 알몸이면서도 서로 부끄러운 줄 몰랐다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은 뒤 하느님께서 아담을 찾으실 때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라는
 대답과 대조를 이루면서,
우리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애초에 아담 내외는 상대가 그렇게 있어주는 것이 좋아 서로에게 감사하고,
그래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약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되고 눈이 열린다는
유혹에 끌려 자신을 넘겨줄 때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졌다.
'알몸'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어떤 의미에서는 무능함의 상징이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그런 존재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에게 자신이 알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리 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힘을 추구하고 산다면
뭔가 갖지 못했을 때 부끄럽고 열등감을 느끼고 두려울 수 있고,
 타인이 살아가는 순수한 동기도 그런 힘의 논리로 해석하고
 때로는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공격적이 될 수 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느냐고 질책하자
아담이 즉시 여인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이 그런 태도다.
"당신께서 저에게 짝지어 주신 여자가 따주기에 먹었을 따름입니다."
아담의 대답은 책임의 일부를 하느님께 돌리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사막의 교부들이나 봉쇄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염원하는 온전한 공동체의 모습은
알몸이면서 서로 부끄러운 줄 몰랐던 태초의 아담 내외한테 볼 수 있다.
우리의 시선이 진정 이웃을 향해 있을 때 우리는 부끄럽지 않다.
사랑은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

성서묵상 모세오경 「내가 네 힘이 되어주겠다」에서
김종수 신부 지음 / 바오로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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