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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124) 폭 넓은 대화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27 조회수563 추천수1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7302       작성일    2004-06-21 오후 3:03:02
 

2004년6월21일 월요일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ㅡ열왕기하17,5-8.13-15.18;

마태오7,1-5ㅡ

 

   (124) 폭 넓은 대화

                                 이순의

 

중학교를 졸업 할 무렵부터 시작된 방황의 정점은 지난겨울 방학을 기점으로 소강상

태로 접어들었다. 사춘기라는 일차 관문이 그 정도에서 마무리가 되어 가는가 싶으다.

어제는 일요일!

종일 집에서만 뒹구는 아들에게는 그만큼 사사로운 볼일들이 삭제된 원인일 것이다.

엄마는 바빴다. 무쇠돌이처럼 왕성한 입놀림에 주전부리를 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먹다가 공부하다가 먹다가 컴퓨터게임 하다가 또 먹다가........ 그리고 아들의 심산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엉뚱한 질문을 하나씩 던져 놓고 모르는 척한다. 엄마는 그 질문

이 예사롭지 않아서 아들의 방을 들락거리며 생각나는 대로 던지고 돌아 나오고, 또

생각이 나면 던지고 돌아 나오고, 아들은 듣는지 마는지 자기 볼 일만 본다. 그러다가

내 발길이 똑 끊어지면 또 불러다 세워 한마디 던져놓고 엄마를 들락날락하게 만든다.

그런 하루를 보냈다.

작년처럼 육탄전을 할 일도 없고, 먹던 밥그릇을 던지는 일도 없고, 전화기를 망치로

부수는 일도 없고, 신용카드를 분실하는 일도 없고, 모친인 나꺼정 방황하여 찜질방에

서 자정을 보내는 가출도 없고........ 아무튼 안정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본인의 가슴

이 안정된 증거가 확실하다. 

엄마의 많은 말을 필요로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본인의 심상은 결코 구체화하

지 않고 있다. 아직은 엄마에게 밝히고 싶지 않나보다.

 

오늘은 아들의 귀에 흘러들어간 엄마의 말들을 나열 해 보고자 한다.

 

<"엄마 나 사관학교 가면 어떨까?"

왜? 군인이 되고 싶어? 군인이 되려면 지금 그 성적으로는 어림없지 않을까? 그리고

엄마 생각은 사관학교에 갈 성적이라면 다른 길도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왜냐하면 앞으로는 한반도가 남북이 화해하게 되면 탈냉전시대가 올 거거든! 그렇게

되면 유능한 인력수급에도 한계가 오지 않을까? 특별한 운을 타고나지 않으면 그만큼

전역이 빨라질 것인데 군인의 신분이 퇴역을 하게 되면 사회에 적응하는 속도가 일반

직종의 사람들보다 어렵다고 들었거든! 군대는 계급사회잖아! 그런 점이 사회적응에

난점으로 작용하는 거야.

그건 비단 군인만이 아니라 성직자도 마찬가지야. 성직을 사는 사람들이 환속을 하게

되면 다른 직종의 사람들 보다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비슷하지! 결혼을 해서 사시는

목사님들도 환속을 하게 되면 신부님들 보다 쉬울 거 같아도 어렵다고 들었다. 그러

니 스님이나 신부님들은 오죽하지 않을까? 그건 그 직업이 보장해 주는 특수성 때문

에 일반적인 삶을 수용하기가 어려운 점이란다. 그 점에서는 군대도 마찬가지야. 엄

마는 특수성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안목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

해. 너희들 세대는 지금과는 다를 테니까!

 

극히 평범함을 유지하는 법부터 알아야 고갈되지 않는 자신을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아.

너희들 세대는 뿌리가 탄탄한 성장을 못하고 있거든! 그렇다고 버팀목이 되어줄 가족

관계도 핵가족이라서 늙은 부모를 언제까지나 의존 할 수도 없는 거고, 형제나 자매도

없구! 그렇다면 평범함을 유지하는 법이 최우선과제라고 본다. 모두들 살아남기 위해

튀어버리는 세상이 되었어. 얼핏 보기에는 만능재주꾼에 인텔리한 조건들에 외모지

상주의까지!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그 사람들의 내면의 정체성도 그렇다고 볼 수는

없어! 사회구조가 추구지향만 해왔기 때문이야.

잠시 머물러 나를 위해 사는 것! 정말로 내가 나를 위해 사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할 시대가 왔어. 집에 쌀이 있는데 쌀은 도외시 되고, 거리낌 없이 피자를 사 먹을 수

있는 수준을 위해서 일을 하는 시대! 집에 집이 있는데 집은 도외시 되고, 더 큰 집을

사기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시대! 지금 내가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학교는 의무니까

그냥 다니고, 공부는 딴 곳에 가서 비싼 과외비 들여서 배워야만 하는 시대!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지금 내가 여기 있는 모든 환경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 없는 저

기 저것들이 갖고 싶은 세상이라는 말이지! 그만큼 뿌리가 고갈된 정신세계를 습득 받

고 사는 세대가 미안하지만 너희들 세대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엄마는 대학조차 특수계급이 보장되는 대학은 경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러

나 모든 선택은 너의 자율이야. 또 성적이 되어서 갈 수만 있다면 결코 반대는 안 해.

그러나 엄마의 이런 말들이 너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등불은 되어 지기를 바란다.>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생각은 좀 해 보았는지 아들의 소리가 들린다.

"엄마야. 뱃살 엄마야. 뚱 돼지표 엄마야. 엄마 엄마야. 이리와 봐야."

장난이 몽땅 실린 아들의 옆에 앉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처다 보지도 않고 제 할 말

만 한다. 불러들일 때는 언제고 무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

 

<"나 혼자 살으까?">

던져 놓은 질문은 짧고 간단하다. 그러나 또 대답은 길고.......

<그것도 네 맘이야. 혼자를 살든 누구랑 같이 살든 네 맘이야. 엄마가 너를 키워주려

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네가 네 길을 가야하는거야. 엄마가 대신 공부해 줄 수 없는 나

이가 되었잖아. 그건 네 스스로의 길을 너 홀로 가야 할 때가 되었다는 거야.

그러나 엄마의 의견은 독신을 살을 거라면 혼인하기를 바라고, 꼭 독신을 살아야 한다

면 성직이나 수도직을 선택해서 살기를 바란다. 두 가지 모두 상반된 장단점이 있어.

그게 인간에게 주어진! 신께서 부여한 숙제인 걸 어떻게 하니?!

혼인을 해서 살려거든 지금부터 네 자신이 끊임없이 너의 일거리 창출을 위해 자기개

발에 전심전력투구를 해야 하고,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양이라는 삶의 굴레를

절대로 가볍게 보면 안 되는 거야. 세상이 맞벌이라는 지극히 불합리한 명제를 제시하

고 있지만 경제적 해결만이 가정의 온전한 유지를 결코 보장해주지 않거든! 또한 인간

관계의 다양성에는 그만큼 복잡한 감정의 교류를 동반하고 있지. 엄마는 이런 현대사

회가 몹시 위태롭고 싫지만 현실은 현실로 인정을 하고 네 스스로 꾸려나가야 할 몫

인 것만은 분명해.

자기개발! 자기능력! 누구를 위해서이지? 사회를 위해서? 명예를 위해서? 출세를 위

해서? 부를 축적하려고......?

옛날의 부모네 세대는 자기개발이든 자기능력이든 사회든 명예든 출세든 무엇이든

지 간에 목적은 하나였어. 수단은 다양했으나 목적은 하나였어!

자식을 위해서!

말이 자식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깊이 분석해 보면 엄마는 생명관이라고 봐. 그만큼 모

든 존재의 의미, 노동의 의미, 삶의 존속 자체가 생명을 위해서 존재했던 거야. 생명을

키워내야 하는 그 단순한 이유 하나로 삶이라는 복잡한 이유를 수용했었지! 거치른 벌

판에 함지박을 이고 행상을 하는 이유도 키워내야 할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 했

었다.

그러나 이미 이 시대는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재의 의무를 인정하는 사람은 줄어

들고 있다. 네가 장가를 든다면, 또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든지, 누군가의 생명을 위

해 무조건적인 헌신을 요구한다면 삶 자체를 실패 할지도 몰라. 어쩌면 이 시대는 감

정이 분산되어버린 시대이기도 해.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어려서부

터 이성교제가 구체화되고, 청소년기만 되면 어지간한 포르노는 간도 안 떨리는 세상

에 성 경험까지, 거기다가 한 번의 경험이 아니라 수시로 감정이 바뀌는 시대의 젊은

이들! 그러니 대학을 가게 되어서 더 복잡하게 얽히는 인간관계는 사랑이라고 말하기

에는 사랑이라는 단어에게조차 죄송한 시대가 아닐까?!

 

결혼에 성공을 한다 해도 그 결혼생활을 끝까지 일심으로 지탱하기에는 부부 양쪽이

너무나 노출이 심한 시대를 살아갈게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서로가 이미 경험해온 관

계들이 많다는 점도 상대방 배우자에 대한 노력이 소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행복을 꾸려나가는 가치관 자체가 변형되어지는 거지. 그것이 지금 현실로

들어나고 있기도 하고! 자식 때문에 난 더 이상 참지 않아! 난 이미 당신이 싫어졌어!

대학 때 사귀던 사람이 이혼했다는데 나는 그 사람한테 돌아갈 거야! 집에서 아이나

키우려고 비싼 돈 들여서 공부한줄 알아? 김치도 사야하고, 밥도 사야하고, 빨래방에

서 팬티 양말 빨은 것도 찾아와야 하는데 왜 이렇게 월급은 적지? 밤에라도 아르바이

트 자리를 알아봐야겠네.

삶을 위해서 노동이 제공되는 필요의 상태가 아니라, 소비를 위해서 또는 축적을 위해

서 더 많은 일거리를 쫓아 살아야 하는 인간성의 노예상태, 이런 세상! 그렇다면 네 스

스로가 더 많은 노력을 해야만 하는 시대를 맞은 것은 분명해.

옛날처럼 가정이 편안하면 마음 놓고 나가서 일만 하면 되었던 가장은 더 이상 존재하

지 않아. 그러나 그 가정을 꾸려나가는 목적으로 보장받는 것은 있어.

자기 정체성! 기 소속감!

자기가 무엇인가를 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 진다는 것은 네 자신이 전력투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발생시켜 주는 거야. 그것이 사는 의미이고, 그 대가로 보장된 모양의 행

복이 가꾸어 지겠지. 그래서 엄마는 독신 보다는 혼인을 원한단다. 어떤 방법으로든

네게 삶의 목적이 주어지기 때문이야. 누구랑 함께! 이것은 사랑의 시발점이니까. 한

번 살아봐. 그래서 행복을 꾸려봐!

혼인하지 않은 독신 남성의 성공? 그건 결코 오래가지 못해. 엄마 말이 맞을 걸?!

 

다음은 독신은 안 되고 성직이나 수도직을 산다면.....!<이하 성직으로만 명명>

이 신분이 특수하지만 분명한 것은 혼인과는 달리 평생 너에게 일거리는 보장 된다는

사실이야. 너가 일거리를 찾아 목숨을 걸고 전력투구하지 않아도, 건강에 이상이 발생

하지 않는 이상, 성직은 어떤 일이든지 일거리가 창출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성직은

항상 혼자라는 점과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목숨을 걸고 사력을 다해서 존재할 의미가

미약하기 때문에 평생 동안 자기 정체성과 자기 소속감을 스스로 붙잡지 않으면 차라

리 가지 않음직 만 못 한 길이 되어버리지!

삶에 절박함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자신을 나약하게 하는 거야. 엄밀히 말하자면

성직이라는 삶은 그만큼 나약한 심성의 기반을 두고 살아가는 불안한 존재이지! 진짜

로 신의 선택이 지탱해 주는 삶이라고 해도 절대 과언은 아니란다. 역시 성직도 사회의

현실이 종교의 현실이야. 성직을 가는 사람이라고 해서 태어날 때부터 다른 교육이나

성장을 하진 않아. 똑같은 사회에서 똑같은 생각을 하며 교육받고 생활하는 거야.

곧, 이 말은 성직자들의 정신세계도 옛날과 다르다는 것이지! 어머니께서 신부님만 오

시면 귀한계란을 쪄주시는 걸 추억하며 성직의 길을 가시는 신부님들 세대와 지금의

젊은 보좌 신부님들의 정신세계는 용량부터가 다르다는 거야. 경험도 다르고, 감정도

다르고, 이성(理性)에 대한 생각자체가 달라있고! 그래서 엄마는 성직을 가려면 일반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가기를 바란단다. 고등학교만 다녀도 주변이 이렇게 어수선

한데 대학은 또 얼마나 자유와 방종이 난무한 세상인지?! 학문이 발달 된 이유로 대학

의 정체성조차 최상등급을 달라고 한다면 그건 반역이다.

그러므로 성직을 결심한다면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직행하기를 원한다. 그 이유는

네가 살아가면서 고민해야 할 사람의 살 냄새를 조금이라도 덜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요즈음은 의외로 수녀님들과 환속하는 신부님들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그 이유는

성직자들이 같은 길을 걷는 수녀님들에게 평신도 보다 더 열려버리는 마음자세로 인한

원인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성직자 보다는 수도자들이 일반적인 사회를 더 많이 경험

했다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즉 일반대학이나 직장생활을 거쳐서 수도회에 입회하는 특성상 사람의 살맛이나 냄

새에 수도자들이 더 익숙하다는 가정이며, 성직자보다 훨씬 짧은 단기교육으로 허원

이 허락되는 수도자들이 세상을 헤쳐 가는데 더 세속적 자존감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그 말은 전쟁 때, 어느 공소 회장님께서 수녀님을 피신시키는 과정에서 밤중에 군인들

몰래 위험한 강을 건너 줘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 수녀님께서는 공소회장님에게 도무

지 손목을 허락하시지 않아서 수건으로 수녀님의 손목을 묶게 하여 수건을 붙들고 강

을 건너서 피신을 시켜드렸다는 교회신문의 증언이 있다. 요즈음 수녀님들께 그걸 요

구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이 등장 할지는 엄마도 모른다. 그 만큼 성직이든 수도직이든

성장과정에서 겪은 시대적 경험들이 관점에 차이를 두게 되지! 손목하나의 융통성이

라고 보기에는 나약한 심성의 기반을 송두리째 일순간에 흔들어 달리하는 상황에 노

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엄마는 아들만 있으니까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반대학을 거처서 신학교에 오시는

신부님들은 잘 모르겠고, 그래도 고등학교를 거처 바로 신학교에 가는 신부님들 중에

는 진짜 동정이 있다고 믿는다. 그 동정성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묻겠지만 중

요하다. 세계적으로 종교가 피폐해 지고, 종교는 무성하나 지구는 그 오염도가 심각

하다. 거기다 사람의 육신을 놓고 벌어지는! 낙태라든지, 에이즈라든지, 창조질서를

깨부수는 동성애의 법제화라든지, 복제인간과 우성인간만을 선별하려는 신에 대한

반역, 끊이지 않는 전쟁과 민족적 갈등, 그리고 테러와 보복 등등!

이런 난무한 반생명적인 흐름에서 참 생명성을 선포해야 하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파

견자의 동정성은 절대로 중요하다고 본다.

이 시대가 동정을 지키기에는 너무 고단하여서도, 지켜진 동정은 그만큼 보배로울 수

있다. 그 가치는 감히 누가 입으로 평가 할 수 없을 만큼의 높은 세상이 되었다. 그러

나 다시 또 한 번 말하지만 성직자에게는 그 기반이 너무 나약한 자기 정체성의 부재

라는 점이다.

자기를 지탱해 주는 소속감이 분명한, 가정을 지키는데 끊임없이 노력을 창출해 내야

하는 기혼자에 비해서, 어쩌면 그렇게 간단한 자기몸 하나 지탱하면 될 것 같은 성직

자의 정체성은 지금의 어린 너에게는 쉬워 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더 쉽다는 말이

타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어려운 이유는 소수정예 집단이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 남의 집에서 논에 모내기를 하면 내 논에 모내기가 늦을까봐

서 다투어 이집 저집 모내기를 한다. 금세 어마어마한 땅덩이의 들판은 중노동의 대가

로 초록 때때옷을 입게 되지! 그러나 집에서 겨우 밭 한마지기 분량의 콩을 혼자서 까

라고 한다면 지루하고 답답하고 따분해서 끝까지 않아서 그 콩을 다 까지 못 한다. 비

유가 맞을지는 모르지만 타당한 비유 같다.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일구어 가는 혼인의 삶은 아무리 힘들어도 너도 살고 나도 살

기 때문에 당연시 되어 살아간다. 그러나 콩을 까야 하는 사람처럼 그 외로움과 의지

력을 대등하게 동행시켜야만 가능한 성직의 삶은 그만큼 결실을 보기가 어렵다는 얘

기다.

아들아!

갑돌이가 장가 간 날에 눈물 흘리던 갑순이도 없고, 갑순이가 시집 간 날에 한 숨 짓는

갑돌이도 없는 세상이지만, 성직자를 하늘처럼 보고 그 그림자에 흠을 남길까봐 걸음

걸이도 조심하는 수녀님도 드물어졌고, 먼발치에서 수녀님께서 하시는 일에 방해 되

지 않으려고 조심하시는 신부님도 드문 세상이 되었다. 그만큼 성직과 수도직에는 격

이 없어졌다는 표현이기도 하고 평등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는 더 할 나위없지 않겠느냐?

그러나 걱정도 하지 말아라. 모든 이루심은 아버지 하느님의 이끄심대로 이루어 질 것

이다. 그것이 신비란다. 이루심이 인간의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것이라

는 것!

단지 엄마가 항상 권하는 말은 있다. 네 삶의 표본을 아빠로 삼으라고!

장가를 가서 아내를 맞으면 어떠한 상황이 와도 다툼이 와도 오늘 이 시간까지 자식이

보는데서 아내에게 손찌검은커녕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살아오신 아빠처럼 아내를

감싸고 이해하고 사랑하면 되고, 성직자가 되면 그렇게 힘든 질곡의 운명 앞에서도 자

식이 보는 앞에서 단 한번 취하지 않은 아빠처럼 신자들 앞에서 취하지 않으면 된다

고 생각한다.

엄마가 나이가 들고 세월을 돌아보며 느끼는 것이다.

물질의 이룸은 부족하나 자식 앞에서 참으로 떳떳한 삶을 꾸려 왔다는 것을!

엄마의 말이 아직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빠의 큰소리나 폭력까지도 단 한 번

을 보지 않고 자란 아이들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까? 술을 마실 줄 아는 아빠 중에

단 한 번도 자식에게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아빠가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까? 그

건 비단 아빠들뿐만 아니라 성직자 중에서도 아마 존재불가로 판정하고 싶다.

이 모든 것이 너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새록새록 등대가 되어 너를 비추리라고 믿

는다.>

 

<그러나 지금의 성적으로는 어느 길도 보이지를 않네요. 공연한 말만 시켜서 엄마 입

이 너무 아프네요. 컴퓨터 고만 하시고 책상으로 이동하시지요. 사랑하는 아드님!>

 

분명히 아들의 마음은 뭔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 많은 말들을 토도 달

지 않고 듣는다.

도대체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걸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엄마이기 때문에 거침없이 해 주는 말들이다. 아들에게!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마태오7,5ㅡ

 

<진짜 폭 넓은 대화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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