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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31 조회수778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1월 31일 연중 제4주일
 
 
 Amen, I say to you,
no prophet is accepted in his own native place.
When the people in the synagogue heard this,
they were all filled with fury.
They rose up, drove him out of the town,
(Lk.4.24,28-29)
 
 
 
제1독서 예레미야 1,4-5.17-19
제2독서 1코린 12,31ㅡ13,13
복음 루카 4,21-30
 
 
제가 30대 초반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허리가 좀 좋지 않았었지요. 병원에 가면 별다른 증세는 없다고 하는데, 허리의 통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의사는 아니지만, 진맥을 잘 보신다는 어떤 형제님을 만나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형제님께서는 저의 진맥을 봐주신 뒤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부님, 이 상태라면 나이 40이 채 되기 전에 풍(중풍(中風)) 맞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 형제님께서는 저의 증세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하시면서 풍을 맞는다고 말씀하셨지만,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저의 집안 중에서 풍 맞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거든요. 더군다나 나이 들어서도 아니라 이렇게 젊은 나이에 풍을 맞는다고 하니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이 형제님의 직업도 의학과는 상관없는 태권도 관장이라는 점도 저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말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계속해서 몸에 이상한 징조가 보이면 ‘혹시 풍이 오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나이 40이 넘어간 상태에서도 아주 튼튼한 것을 보면, 그 형제님의 말씀이 확실히 틀린 말이 되었지요. 하지만 그 형제님의 말을 잊지 못하고 몇 년 동안 신경 쓰며 살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말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심지어 눈에 확 들어오는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다른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말을 해야 할 지는 분명해집니다.

다른 이들에게 힘을 빼는 말이 아니라 힘이 되어주는 말을,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끔 만드는 말이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미움과 질투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말을 해야 하며, 슬픔과 절망의 말이 아닌 기쁨과 희망의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힘이 되어주고, 긍정적이며, 기쁨과 희망이 가득한 사랑의 말만을 하셨습니다. 그에 반해서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어떻게든 흠집 내는 말에만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오늘 복음만 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렇게 잘못된 말을 하는 사람들의 결과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시지요. 즉, 부정적인 말로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과 함께 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사랑이 가장 으뜸이며,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함을 말씀하십니다. 이 사랑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이 사랑을 말하고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 때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지혜는 지식을 능가한다(파스칼).





덤벙덤벙 살아가기(박윤수, ‘불혹, 동화에 혹하다’ 중에서)

어느 날, 오랜만에 내 얼굴을 본 할머니가 물으셨다. “얼굴이 왜 그렇게 어둡냐?” 할머니는 한쪽 눈을 실명하셨고, 목소리를 통해 사람을 분간하실 정도로 다른 쪽 시련도 안 좋은 상태였다. 그런 할머니의 눈에 손자의 힘든 얼굴이 비친 모양이다. “너무 걱정 마라. 때가 되면 다 잘 풀릴 거니께, 세상은 덤벙덤벙 사는 거니라.”

어떤 위로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지치고 힘든 나였다. 하지만 덤벙덤벙 살라는 말은 꽤 인상적으로 마음에 꽂혔다. 물론 그게 어떤 삶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몇 년이 흘렀다. 책을 읽다가 우연히 ‘덤벙 주초’란 것을 알았다. 강원도 삼척에 죽서루라는 누각이 있다. 특이한 것은 누각의 기둥이다. 터를 반반하게 고르는 대신 터에 맞게 기둥의 길이를 달리한 것이다. 길이가 다른 17개의 기둥이 만들어졌다. 숏다리도 있고 롱다리도 있다. 초석을 덤벙덤벙 놓았다 해서 덤벙 주초라 불린다. 순간 할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세상은 덤벙덤벙 사는 거야.”

터를 반반하게 고르는 대신 터에 맞게 기둥의 길이를 달리 놓을 줄 아는 여유가 놀랍다. 그렇다면 할머니의 말뜻을 이렇게 풀 수도 있겠다. 세상은 평탄하지 않다. 반반하게 고르려고만 하지 마라. 덤벙 주초처럼 그때그때 네 기둥을 똑바로 세우면 그만이다.

그렇다. 세상은 언제나 흔들거린다. 흔들거리는 세상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마음의 기둥을 잘 세워야 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Beloved - Michael Hop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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