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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안에서의 외로움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01 조회수476 추천수1 반대(0) 신고
나는 요즘 정말 힘든 고독을 느끼고 있네. 86년 동안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절대고독이라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는데도 모두가 다 떨어져 나가는 듯하고, 하느님마저 의심되는 고독말일세. 모든 것이 끊어져 나가고 나는 아주 깜깜한 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느낌일세.
 
세상의 모든 것이 끊어지면 오직 하느님만이 남는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시려고 그러시나 봐. 하느님 당신을 더 사랑하게 하려고 그러시겠지? 작년에 돌아간 정명조 주교가 요즘 더 많이 생각나는구먼. 아마, 죽고 나면 자네나 나나 모두 하나일거야. 내가 죽으면 자네 꿈에 나타나서 꼭 가르쳐 주겠네.”

 고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이 병상에 있던 2008년 5월 23일 서울 혜화동주교관으로 자신을 찾아 온 고찬근(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신부에게 한 말이다. 자신의 죽음을 앞둔 심정을 ‘대학입시를 앞둔 고교 3년생 같다’면서 진지하게 하느님 곁으로 갈 준비를 했던 추기경이지만 그 또한 한 인간으로서 죽음 앞에 ‘절대고독’은 피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김 추기경은 “세상의 모든 것이 끊어지면 오직 하느님만이 남는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시려고 그러시나 봐. 하느님 당신을 더 사랑하게 하려고 그러시겠지?”라며 하느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자세로 돌아갔다.
 
김수환 추기경은 선종 시에 “절대고독”을 털어놓으셨다. 왜 그토록 고독을 느끼셨을까?
나는 최근 이런 절대고독을 느끼고 있다. 혼자라는 생각 때문이다. 문득 세상에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설명도 되지 않고 설명하려고 해도 설명할 수 없는 이 심정을 고스란히 혼자 안고 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보나 수사님이 말했다.
상대방이 나에게 바라는 사랑을 상대방이 원하는 만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상대방에게 흡족하게 해주었는가?  그것이 가능할까? 내가 상대방에게 바라는 사랑을 상대방으로부터 여한이 없을 만큼 늘 흡족하게 받고 있는가? 그것이 가능할까?
어차피 미흡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미흡한 부분이 너무 크다.
이 미흡한 부분은 왜 있을까?
이 미흡한 부분은 신비이신 하느님과 직통으로 뚫린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길, 미흡한 부분을 관상하자. 안개가 걷힐 것이다.”
 
이 미흡한 사랑은 하늘나라의 사랑이 부족함을 말한다. 이 땅에서 하늘나라의 사랑을 한다는 것은 고독을 자초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개가 걷히자 외로움이 걷잡을 수 없이 몰려들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 들고 말았다. 인연(人緣)도 없어져 버렸다. 우울하다. 먹구름이 다가 온다. 키츠는 영혼을 슬프게 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이 슬픔은 하느님밖에 어루만져주실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이 생각 저 생각 다 버리고 “지금”만 생각하면서 하느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기는 수 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어느 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벌거벗은 잘 생긴 아이를 만나서 묻는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나는 하느님에게서 왔어요.”
어디에서 하느님과 헤어졌느냐?
순수한 마음 안에서요.”
어디로 가는 길이냐?
“하느님에게로요.”
어디에서 하느님을 만나느냐?
내가 모든 피조물을 버리는 곳에서요.”
너는 누구냐?
“왕이에요.”
네 왕국은 어디 있느냐?
내 마음 안에요.”
누군가 그것을 빼앗아 가지 않도록 조심해라.
“그러겠어요.”
그러고 나서 에크하르트는 그 아이를 방으로 데려가서 말했다.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어라.
“그러면 나는 왕이 아니에요.”
그리고 아이는 홀연히 사라졌다.
장난기 있던 그 아이는 하느님 자신이었기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중에서)
 
자식이 아프면 부모는 더 아파한다. 자식은 부모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프면 주님은 더 아파하신다. 우리는 주님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우울할 때면>
                    키츠(Keats)
절대로 망각(妄却)의 강(江)으로 가지 말고,
독주(毒酒)를 얻으려고 깊이 뿌리 박힌 투구꽃을 비틀지도 말아라.
그대 창백한 이마에
저승의 여왕 프로세르피나(Proserpine)의 검붉은 루비 빛 독초(毒草)를 문지르지 말아라.
그대 주목 열매로 묵주를 만들지 말고,
눈이 침침해지거나 죽음을 생각하여 그대 영혼을 슬프게 하지 말아라.
솜털 덮인 올빼미가 은밀한 그대 슬픔과 함께 하게 하지도 말아라.
왜냐면 어두움이 몰려와 영혼을 깨워서 고통에 빠져들게 할 것이기에.
  
그러나 고개 수그린 온갖 꽃들을 키우고,
잔인한 사월(四月)의 수의(壽衣)로 푸른 언덕을 덮고 울부짖는 구름처럼
우울증이 발작하여 하늘에서 별안간 떨어질 때면 그땐 실컷 슬퍼하여라.
싱그러운 아침 장미를 보고, 소금기 있는 모래 언덕 위로 떠 있는 무지개를 보고,
또는 탐스럽게 피어 있는 모란을 보고도 그대 연인이 몹시 화를 낸다면,
그녀의 고운 손을 잡고, 그녀를 미친 듯 소리지르게 하라.
그리고 나서 그녀의 비길 데 없는 심연(深淵)의 눈을 보고 위안을 받아라.
 
우울은 언젠가는 사라질 아름다움과 함께 있다.
작별을 고하느라 늘 입술에 손을 대고 있는 기쁨과 함께 있다.
달콤한 입술을 빨고 있는 동안 독으로 변해버리는 아픈 즐거움 가까이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 얼굴을 가리운 우울은 기쁨의 성전(聖殿) 바로 그 속에
최상의 성소(聖所)를 가지고 있다.
가냘픈 입천장에 강건한 혀로 기쁨의 포도를 터뜨릴 수 있는 이가 아니면
아무도 우울을 맛볼 수가 없다.
그의 영혼은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맛보게 되고
수많은 영광 속에서 고통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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