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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설 명절 2010년 2월 14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2 조회수534 추천수2 반대(0) 신고

설 명절    2010년 2월 14일 


루가 12, 35-40.


오늘은 설 명절입니다. 옛날 음력을 사용할 때는 오늘이 새해의 첫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모든 나라들이 양력을 사용하고 있으며, 온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만 음력으로 과세할 수는 없습니다. 2010년은 지난 1월 1일에 이미 시작하였습니다. 오늘은 음력을 사용하던 옛날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기념하였던 설날일 뿐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가신 어른들을 오늘 기억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설 명절에 조상들에게 차례를 올립니다. 가톨릭 신자라서 차례를 올리지 않는 사람들은 돌아가신 어른들을 기억하는 미사를 봉헌하며 함께 기도합니다. 부모님 혹은 우리의 조상들은 우리 곁을 떠나가셨지만, 그분들은 우리 삶 안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계십니다. 그분들도 우리와 같이, 많은 애환을 지니고 어렵사리 세상을 살고 가셨습니다. 그분들과의 인연이 있어, 오늘 우리가 있습니다. 그분들은 떠나가셨지만, 그리스도 신앙은 그분들이 하느님 안에 살아계신다고 말합니다. 그분들과 맺었던 우리의 인연은 소중하고 은혜로운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분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면서 그분들과 우리의 인연을 마음에 다시 새깁니다.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 교통대란을 겪으면서도 귀성하고,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모여 반가워하는 것도, 돌아가신 어른들로 말미암은 우리의 인연들을 은혜롭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 일어나는 일입니다. 부모님과 조상들을 생각하면, 그분들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안에 흐르는 사랑과 헌신의 삶을 다시 느낍니다. 그것은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그분들도 인간의 연약함을 지니고, 비정하고 힘든 세상을 각자 온몸으로 체험하며 사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분들은 각자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고 봉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분들을 기억하는 것은 그분들이 살고 가신 사랑과 봉사를 기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사랑과 봉사를 가슴에 품고,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오늘 다시 바라봅니다.


오늘 복음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라’고 말합니다. 섬기는 사람의 자세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등불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촛불 하나를 받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빛이라고 고백하면서 우리는 그 촛불을 받아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이 선하고 자비하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밝히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종과 같은 모습으로 살라는 말씀은 겸손하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종은 자기 위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는 중요한 일들 중에는 우리 위주로 행동하지 않아서 이루어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자기 위주로 살지 않아서 자녀의 생명이 자랍니다. 노쇠한 부모를 모시는 자녀가 자기 자신만을 소중히 생각하며 살지 않습니다.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이 자기 편한 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가 또한 그러합니다. 예술가의 작품 활동도 그렇고, 우리가 하는 공부나 노동도 그것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그것에 전념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중요한 일들은 모두 자기 한 몸 편하게 살아서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그것들은 모두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마음가짐이 있어 가능하였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잊어버리고, 헌신하여 이루어낸 일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런 헌신과 섬김을 실천하라고 권합니다.


예수님도 당신 스스로를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르 10,45)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높이거나 과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어떤 일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보여 달라.”(마르 8,11)는 바리사이들의 요구를 예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일을 단순히 실천하셨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의 적의(敵意)나 그 사회가 보내는 따가운 시선도 그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의 일을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잘 지켜서 당신 스스로 잘 되는 길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사람들에게 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분으로 처신하면서 제자들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요 선생인 내가 그대들의 발을 씻었다면 그대들도 마땅히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내가 행한 대로 그대들도 행하도록 나는 본을 보였습니다.” 요한복음서(13,14-15)의 말씀입니다..


초기 교회가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른 것은 그분의 섬김을 우리가 배워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섬김은 하느님이 선하고 자비하셔서 그 선하심과 자비를 실천하는 몸짓입니다. 우리가 온 세상에 흩어져 다양한 모습으로 살듯이,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도 세상 곳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실천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각자 허리에 띠를 띠고, 복음의 등불을 밝히고 나서야 합니다.


이 세상을 떠나가신 부모님을 비롯한 조상들을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그분들의 사랑과 헌신이 우리 안에 살아있게 하겠다는 마음은 선하고 자비하신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시게 하겠다는 마음과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분이라 부모들은 역경을 딛고도, 자녀를 키웠고, 자녀들은 노쇠한 부모들을 정성껏 모셨습니다. 또한 스승들은 제자들을 헌신적으로 가르쳤고, 선배들은 후배들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각자가 원하였던, 원치 않았던, 모두 선하고 자비하신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사랑과 자비를 실천한 것입니다.


오늘 부모님과 조상들을 생각하고, 그분들의 정성을 은혜로운 것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의 흐름에 우리가 합류하는 일입니다. 부모님과 조상들이 실천하신 선과 자비는 모두 하느님의 것이었습니다. 그 선과 자비가 세상에 있어 하느님이 역사 안에 살아계셨습니다. 우리도 같은 실천으로 하느님이 세상 안에 살아 계시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체면치례나 허세와 관계없이 진솔한 마음이 하는 일입니다. 허리에 띠를 띤 종은 체면치레나 허세를 나타내는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베풀고, 나누고, 사랑하여 주변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명절이 되게 합시다.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우리 안에 흘러들어 주변으로 넘쳐흐르게 하는 오늘의 명절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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