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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죄의 문에 넘어지는 인생들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2 조회수431 추천수1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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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죄의 문에 넘어지는 인생들


이 세상에 “의로운 이가 없다. 하나도 없다. 깨닫는 이 없고 하느님을 찾는 이 없다. 모두 빗나가 다 함께 쓸모없이 되어 버렸다. 호의를 베푸는 이가 없다. 하나도 없다.”(로마 3,10-12절)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의를 행하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더럽고 추악한 죄악들을 감추려고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이용하여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고 감추고 있습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주님 앞에 범죄하고 무화과 잎으로 자신들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감추고 숨었듯이.......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마음속의 깊은 것까지도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말씀대로 살고 싶었고, 주님 뜻대로 살고 싶었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자 했지만 그럴수록 나에게는 고난만 더욱 클 뿐입니다. 그러므로 어쩔 수가 없어서 적당히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마치 아담이 범죄하고 자신의 아내 하와에게 책임전가 하고 여자는 뱀에게 책임전가 하듯이 우리 역시 나의 범죄를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주님께서는 내가 행한 그 일에 대해서 분명이 지불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아담이 주님 앞에 죄를 범한 결과 어떤 결과가 일어났나요?
모든 인류에게 죄인이 되게 하였고 죄의 결과는 사망 죽음이라는 결과를 낳게 하였습니다
. 지금 내가 짓고 있는 죄로 말미암아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에 대해서 한번 쯤 생각해 보셨나요?

술과 담배로 인하여 맞이하는 것은 육신의 질병,
음란과 간음으로 인하여 맞이하는 가정 파탄,
하느님을 외면하고 우상숭배로 인하여 영원한 멸망의 길,
악한 영들은 최고의 절정을 이루며 인간들에게 쾌락의 인생을 살게 만듭니다.
노소를 막론하고 이성이 만나기만 하면 섹스의 대상이 되어 온통 마음과 몸이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욕구대로 되지 않는다고 마구잡이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

신자들이여!
날마다 순간마다 맑은 정신과 온전한 마음으로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언제 죄의 문에 넘어질지 모릅니다. 죄에 넘어지게 되면 밝은 진리의 빛을 잃어버리게 되고, 어둠속에서 헤매다가 결국 깊은 수렁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주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서게 됩니다.

혹시 죄의 문에 넘어져서 일어서지 못하셨나요?
주님께 손을 내밀어 보세요. 주님께서 그 손을 외면하지 않고 잡아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

내가 죄는 죄가 너무 크고 더러워서 혹시 주님 앞에 다가서지 못하고 계십니까?
주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주님은  온통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나올지라도 우리를 품에 안아 주십니다
. 그래야만이 우리는 죄에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저 죄에 문에 넘어진 상태로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걸림돌이 되어 그들에게도 넘어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혹시 내가 죄에 문에 넘어져 있으므로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도 넘어지게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시는 삶이 되세요.

(아비가일님)





[2월 13일] 지극히 거룩한 생명의 말씀 '복음' 
<마르 8,1-10>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오늘의 묵상]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었던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전승 과정에서 숫자가 바뀌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또 다른 기적이었을 것입니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기적의 빵을 주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건 그분의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도 숫자를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신자 수가 얼마이며, 헌금이 얼마고, 서열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많다고 은총도 많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라도 정성이 중요합니다. 은총은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얼마만큼의 ‘정성’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숫자에 매이지 않는 것도 기적입니다. 숫자에 매달릴수록 삶은 초라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홉’이 되면 ‘열’을 바라고, ‘열’이 되면 ‘백’에 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백’ 뒤에는 ‘천’이 있고, ‘만’과 ‘억’이 있습니다.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는지요? 생각하면 숨이 가빠집니다.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면 숫자는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이미 주어진 것에 감사드리면, 더 큰 숫자는 자연스레 따라옵니다. 우리는 말씀 한마디로 ‘사천 명’을 먹이신 분을 믿고 있습니다. 어떤 걱정이든 한 발자국 ‘물러나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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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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