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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75) 설 & 재의 수요일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7 조회수1,126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0년2월17일 재의 수요일 (성모의 종 수도회 창설자 7성인 기념 없음) -요엘2,12-18;코린도2서5,20-6,2;마태오6,1-6.16-18-
 
 
 
          (475) 설& 재의 수요일
 
                                                이순의
 
 
 
 
설 명절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여인들에게는 의무가 주어지는 역할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죽은 사람에게 잘하지 말고 산 부모한테 잘하라는 말을 사심 없이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그러나 맏며느리들의 입장은 그 말처럼 뼈아픈 말도 없다. 부모한테 아무리 잘 한들 제 자식에게 한 것만 하겠으며, 살다가보면 부모네 또한 열 손가락을 깨물면 아프다는 것만 아시지 열 손가락의 모양이 길고 짧다는 것은 망각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세월이 산 부모한테 잘 했으니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된다면 명절증후군이란 말은 왜 생길 것이며, 오랜만에 만난 일가친척 간에 소란은 왜 일어나겠는가?! 그렇다고 인생이라는 것이 누구도 옳은 사람이 없는가 하면 각각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옳기 때문이다. 다만, 두 부류로 나뉠 뿐이다. 자라에게 물려 본 사람과 자라에게 물려보지 않은 사람의 차이! 솥뚜껑을 보고 놀랄 사람과 솥뚜껑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사람의 차이! 그리고 그것을 사무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과 까맣게 지워 잊은 사람의 차이!
 
이런 두 입장으로 나뉘어서 사람들은 자기편에 서서 상대를 보기도 하고, 상대를 가르기도 하며, 상대를 끌어오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정말로 백지 한 장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백지 한 장이라는 말은 목숨 끊어질 때나 하는 말이고 목숨 붙어 있을 때는 백지 한 장 차이가 아니라 하늘과 땅 차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누군가는 또 죽은 부모한테 잘 하지 말고 산 부모한테 잘 하라고 두고두고 써 먹는다. 
나는 산 부모한테 잘 해 드렸더니 산 부모가 혀끝이 여문 자식한테 넘어가서 나에게 등을 돌렸다. 그래서 남은 것은 죽은 부모만 남았는데........ 명절마다 그 말이 가슴을 후빈다. 죽은 부모한테 잘 하지 말라는! 그런데 산 부모가 나를 도둑년을 만들고 갈 때 죽은 부모도 가져간다고 하셨으면 좋으련만 죽은 부모는 따라간다는 말을 못하시니 고스란히 내게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명절마다 죽은 부모한테라도 잘 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말대로라면 죽은 부모한테 잘하는 제사 따위를 없애버렸어야 하는데, 의무 조항은 그대로 다 남겨놓고, 말은 제 입장에 유리하게 만들어 놓은 게 태초인간의 습성이 아니던가?! 그래서 명절도 다가오고, 또 사순시기도 시작되고, 죽은 목숨이면 인생사 백지 한 장 차이라고 여겨지겠지만 아직도 살은 목숨이라서 백지가 아닌 하늘과 땅 차이로 느껴져서 여러 날 가슴이 얼얼한 날들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명절도 지났고, 그러다 보니 사순시기도 시작 되었다. 아! 쪼꼼 숨통 트이는 일도 있기는 하다. 내 짝꿍이면서도 내 편에서 이해가 불가능했던 사람이 내 편이 되어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랑 시동생들이랑 다 함께 앉아서 손아래 동서가 맏며느리인 나에게 능멸을 했어도 입 봉하고 앉았던 짝꿍이, 당하기는 내가 당하는데 독하기도 나더러 독하다던 짝꿍이 쪼꼼 아주 쪼꼼 나를 이해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느낌이 든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나는 맏며느리라서 또 죽은 부모들을 위해 정성스런 명절을 보냈다. 설날 아침에는 떡국 끓여놓고 기도를 드리고, 제사를 모셨고, 미사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설 날 저녁에는 밥 지어서 또 기도를 드렸고, 제사를 모셨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게 주어진 역할이며 의무다. 한 치의 허튼 마음도 없이 다 했다. 때로는 이런 생각도 한다. 이 또한 하늘이 놓은 갈림이라고! 여인이 시집와서 사는 게 내 뜻이 한 가지라도 있더란 말인가?! 내 뜻대로 사는 사람이 들으면 미친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는 내 뜻대로 살아지는 게 없더라. 
그러니 가장 합당한 쪽으로 아버지께서는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선다. 악을 인도하시는 것도 하느님의 뜻이라 하지 않았던가?! 만민의 아버지시니 그러셔야 했으니 그러셨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내 자리에서 이것이 나의 최선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커다란 위안이 있다. 주어인 의무를 행하는 것 말고 더 큰 위안! 그것은 미사성제의 합당함이다. 무거운 마음이 안쓰럽다고 스스로를 불쌍히 여길 때면 어찌 그렇게도 잘 아시고 위로께서 오신다. 그 위로를 얻으려고 성당에 가고, 미사성제에 동참한다. 여러 날을 발품을 팔다가 보면 반드시 위로께서 오신다. 세상의 어디를 가서 그토록 속 깊은 위로를 받을 것인가?!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태중으로 들어간다 해도 어려울 위로고, 내가 낳은 자식이 허한 내 가슴을 안아준다 한들 그만한 위로를 얻을 것인가?! 그래서 나는 성당에 가고 예수님을 믿으며 성체를 모신다. 그리고 나로 인하여 나만큼 아픈 자 있다면 내가 너를 위로할 수도 없고, 내가 너의 아픔도 알지 못하니, 너도 성당에 가고, 예수님을 믿고, 성체를 모시라고 간구할 뿐이다. 그리고 설! 설날에는 거지 시작은 아버지까지 한 분 더 늘어서 미사 봉헌 드리고! 새 마음과 새 의미로 새 날을 맞았다. 
 
 
 
 
 

 
 시작이 좋아야 끝이 좋습니다. 새해 차례는 조상께 비는 것이 아닙니다. 조상님은 물론 일가친척 까지도 초대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드신다가 아니라 냄새를 맡으신다가 옳습니다. 우상숭배가 아니라 전통 안에서  전례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영혼에게 술과 밥이 아니라 영혼을 위한 기도를 받치므로 가장 좋은 날이라고 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신부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교형자매님들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 새 날에는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1년 중 모든 날을 오늘과 같은 마음으로 삼가하고 조심하며 삽시다.  오늘 미사는 조상님들과 일가친척들을 위해 위령미사로 봉헌하며 서로 함께 교우들과 새해인사를 서로 나눕시다. -아멘- 
 
 
 
 
 
여러 날 동안 앓았던 멍에가 눈 녹듯이 녹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려 풀어 감을 수 있겠는가?! 그 수만 가닥의 희비를 그 수 천 길이의 심연을 사람이 잴 수 있더란 말인가?! 나도 내 마음을 모르는데 네가 너의 마음을 알 수 있더란 말인가?! 죽은 부모를 기억하는 제사상이라도 거역할 수 있는 용기라면 마음고생이야 하겠는가마는 그럴 용기도 없으니 죽은 부모의 제사상을 놓고 살은 부모가 박은 내 가슴의 못을 빼지 못해서 죄책감에 시달린다. 용서하라?! 용서하라?! 용서하라?! 말이 용서지 않던가?! 인간이 인간에게 씌운 굴레 앞에 얼마나 많은 여인의 눈물이 강물이 되었더란 말인가?! 그 일이 어찌 내 일만 되고 네 일만 되더란 말인가?! 알고 보면 마음이 있는 사람의 입장은 다 같은 것을! 아무리 내 것이 크다 한들 다 같을 것을! 그러면서도 서로를 다독이지 못하고 제 입장만 있으니 이것이 굴레가 아니던가?! 이 굴레를 벗겨주시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던가?! 설 명절에 이어 재의 수요일이 시작 되었다. 새로운 보속이 기다리고 있다.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 부터 성 목요일 만찬 미사까지입니다. 사순 시기는 어떤 시기입니까? 사순 시기는 자기 생활을 개선하는 시기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기준을 두고 우리의 생활을 개선할 것입니까? 그 기준점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기준에 두고 우리의 삶을 개선해야합니다. 아리수를 정화해서 마실 때는 필터가 있습니다. 내 안에 들어 온 것은 무엇으로 걸러낼 것입니까? 그 기준은 사랑과 관용에 있습니다. 그리고 죄를 짓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 안으로 들어 온 것이 별것도 아닌 것으로 언성을 높이고 욕하고 화를 냅니다. 이는 내 몸에서 정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내 보내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그대로 다 내보내면 받아들이는 사람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전염성이 있습니다. 내 안의 수많은 것들을 걸러내서 내 안의 죄를 그대로 지울 것입니다. 또 죄는 전염성이 커서 내 영혼에 들어오는 경륜에 대해서는 무방비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을 정화하는 길은 십자가의 사랑뿐입니다. 내 안의 필터는 십자가의 침묵입니다. 과거에는 고해성사를 볼 때 나로 인해서 남이 죄 지은 것 까지도 용서해 달라고 고백을 했었습니다. 사순 시기는 나를 정화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아무런 준비 없이 오늘 여기 이 미사에 왔다면?

지금 밴쿠버의 동계올림픽 현장에서는 많은 선수들이 겨루고 있습니다. 그 선수들은 이 날을 위하여 노력과 준비를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사순시기를 맞을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이 사순시기 동안에 우리 자신들이 목표를 정해 놓고 실천할 때, 자기가 유혹 받는다는 것을 아는지? 가늠해 보시기 바랍니다. 유혹은 이루지도 못할 결심을 하도록 꼬드깁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이루지도 못하고 좌절합니다. 첫째로 결심할 때는 겸손해야 합니다.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내가 겸손하고 자선하는 행위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과시하기 위해서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과시가 아닌 실현 가능한 것! 일어서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둘째로 언제나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주님께서 세 번이나 넘어지시는 모습은 좌절하지 않고 언제든지 다시 일어나 시작하라는 암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사순 시기 동안에 결심한 것들에서 넘어질 때마다 다시 시작하며 정화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이런 결심을 통해 내가 이렇게 살았을 때 하느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 결심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것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기쁨을 생각하시다 보면 정화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재의 수요일 입니다. 집 안의 십자가에 걸어 둔 성지가지는 그냥 나뭇잎으로 마른 것이 아닙니다. 1년 동안 나의 삶을 다 보고 있었습니다. 나의 생활과 나의 생각과 죄까지도 십자가 위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것을 태워 오늘 우리 이마에 뿌립니다. 우리 모두의 삶을 정화하고 새로운 결심과 변화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때는 지옥을 삽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때는 천국을 삽니다. 우리는 천국과 지옥을 살고 있습니다. 사순시기 동안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기를 빕니다. 아멘. -서울교구 잠실7동 성당 김범연 미카엘 신부님의 재의 수요일 강론요약->

 

 

몇 가지 실천사항을 결심하기는 했다. 내 자신을 위해서 내가 기도해 본 적이 없었으니 올 해는 내 자신을 위로해 주고 풀어주는 해로 삼았었다. 그런데 미사에서 신부님의 권고가 내 자신의 정화에 대하여 알리고 계시니 이 강론이 살이 되고 피가 될 수밖에! 

1, 침묵으로 버틴 응어리들을 글로 승화해서 풀어낸다.

1, 내 자신을 평온케 한다.

1, 2010년은 내 자신의 신앙을 업그레이드 한다.  

1, 성가정을 성스럽게 보존 유지한다.

1, 음식을 절제하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한다.

 

-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된다. 마태오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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