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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상>-박준영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9 조회수539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상 聯想
[독자통문]
 
2010년 02월 16일 (화) 03:59:12 박준영 whyrich@naver.com
 

박준영은 늘 그리운 후배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서울대학교 나왔다지만, 문국주보다 더 가난한가 봐요.

한국천주교 대표급 논객에 속합니다.

 

   
▲ 김남주 시인
내 딸 박은소리가 중학교 졸업식을 했다. 
국어교사인 담임 선생이 학생들에게 시를 한 편 코팅해서 졸업선물로 나눠줬다. 

김남주의 <사랑 1>이었다. 사랑만이 인간을 구원한다나. 
박노해가 "인간만이---" 하고 떠든 것은 아마 김남주의 이 구절을 모방한 것이다. 

김남주의 시집 <나의 칼, 나의 피>가 내 사무실 책상 옆 서가에 꽂혀 있다. 나는 김남주와 김지하 등 모두 네 권을 릴케 시집과 함께 "고전으로서" 보관하고 있다. 좋은 시인들은 많지만 가난한 나는 더 이상 시집을 살 돈이 없다. 

김남주의 시는 하이네의 시들을 거의 번안한 것이나 다름 없다. 그의 시에서 번역투의 냄새가 나는 것은 그 탓이다.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는 폴 엘뤼아르의 "자유"를 본뜬 것이다. 독일 점령하 프랑스에서 쓴 이 레지스탕스 시로 엘뤼아르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엘뤼아르는 레지스탕스 북부지역 책임자로 활동 중이던 1942년에 공산당에 입당했다. 중앙정보부원들이 시를 좀 좋아했더라면, 김지하의 시는 "공산주의" 혐의를 충분히 받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 말씀대로 어리석음은 죄이지만, 무지는 선일 수도 있다. 

하이네의 시처럼 아름다운

내 친구 남기학은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라면 꼭 "하이네의 시처럼 아름다운"이라는 가사가 들어간 소녀풍의 노래를 불렀다. 하이네는 연애시의 대명사로, 연애 편지에 베껴쓰는 사람이 많았다. 

남한 반공주의는 우리에게 반공 매트릭스 세상을 강요했다. 우리에게 하이네는 "노래의 날개 위에"만 사는 사람이었다. 

하이네는 마르크스와 나이차를 넘은 망년지우였다. 그는 급진적 민주주의자로서,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마르크스가 내던 잡지에 오랫동안 정치시를 권두시로 게재했다.

참고, 생시몬주의에 매료된 마르크스 친구 하이네 (한겨레, 2003. 12.29)
http://www.hani.co.kr/section-001065000/2003/12/001065000200312292042287.html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매트릭스일 뿐이다. 명징한 명상으로 이 허상을 벗어날 수 있을까? 

딸이 입학한 풀무농업고에서 입학 전 숙제로 독후감을 내 줬다. 동인천 경인문고에서 책을 고르는데, 중학교 때 독서반과 연극반을 한 딸은 좀체로 고르지 못한다. 요즘에는 좋은 책이 너무 많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종로문고를 반나절 동안 다 뒤져도 겨우 한 권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는데...

섣달 그믐날 10시가 되도록 퇴근하지 못하는 서점 직원들에게 미안해서, 나는 눈 앞에 보이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뽑아낸다. 이 명상록이 고교 국어교과서에 나온다는 설득력있는 설명과 함께. 

그런데 이 책 번역자 이름이 강영희네! 

뒤져봐도 역자 소개는 없다. 아마도 강영희가 고른 듯, 뒷표지에는 제2절 "나는 누구인가"가 소개돼 있다. 

내가 누구냐고? 나는 장발장! 죄수번호 24601! 
Who Am I (뮤지컬 레미제라블, 10주년 콘서트 형식 간이 공연)
http://www.youtube.com/watch?v=6PXZ1nLiUZo  

어제 본 티비에서 수전 보일이 부른 곡이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나는 꿈을 꾸었네", I dreamed a dream. 마리우스에 대한 에포닌의 애절한 짝사랑.

이 곡은 같은 극 중에서 "Who I was born to be"라는 다른 제목과 가사로도 불린다. 나는 무엇이 되려 태어났을까.

이 혁명가극의 가사를 번역해서 유투브에 올리겠다고 생각한 지 다섯 달이 되어 가는데, 나는 아직 손도 못 댔다.

레미제라블, 비참한 사람들 

   
▲ 뮤지컬 레미제라블
처와 함께 레미제라블 서울 공연을 본 것은 딸이 갓난 아기였을 때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장발장의 수양딸 코제트의 이미지는 딸 은소리에게 투영된다. 그때 산 레미제라블 CD를 우리 식구는 모두 즐겨 듣는다.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One More Day 합창이다. Who I was born to be 곡에 One more day, one day more라는, 인간들의 온갖 바람과 절망이 어우러지는 혁명 전야, 바리케이드 뒤에서의 합창이다. 

하이네는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와도 절친했다. 하이네의 장례식에 몇 안 되는 프랑스인 조문객 가운데 하나가 위고였다. 

왜 우리는 어린이 소설 장발장만 알지 레미제라블은 못 배웠을까? 일제시대 출판사들은 -일본에서- 치안유지법을 피하면서도 책을 내 이윤을 얻기 위해, 책의 사회적 성격은 빼고 동화적이고 교훈적인 어린이 소설을 양산했다. 그래서 "장발장"이라는 새 제목의 책이 나온 것이고, 헬렌켈러 전기는 "장애를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끝나고, 하이네의 시는 연애시만 출판됐다. 우리는 해방 뒤에도 일본 천황제 국가가 만들어 놓은 매트릭스 안에서 교육받고 훌륭한 황국 신민으로 성장했다. 

레미제라블은 Les Miserables, 그러니까 "비참한 사람들"이다. 나는 레미제라블이라는 대부분 뜻모를, 그리고 낭만적 이름인 이름보다는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실제 이름으로 번역돼야 한다고, 그때마다 생각한다. 곡학아세는 지배자와 지식인들이 어려운 말, 완곡어를 즐겨쓸 때 가장 효과적이다. 그들은 현실을 감추면서도, 자신들은 거짓말은 안 했다고 안도할 수 있다. 

북한의 선전문구가 때로는 섬뜩한 이유는 바로 현실의 입말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도 자신의 가장 중요한 통치 이념 자체는 구존동이 같은 다 죽어버린 한자어를 억지로 되살려 쓴다. 북한 정치의 모순은 여기에 있다. 민족주의를 내세우지만, 그 실제는 단지 "지배"일 뿐이다.   

"매트릭스"를 우리 입말로 어떻게 번역할까

나는 오늘도 "매트릭스"를 우리 입말로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한다. 매트릭스라는 단어는 상당한 지식인들은 그 단어 자체로 불교의 연기처럼 거의 즉각 머리로 이해되지만, 대중과의 대화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다. 

당나라의 현장 법사가 경전을 중국말로 번역하면서, 때로는 20번이나 번역말을 고쳤다고 한다. 

현장이 죽자, 경전 번역을 계속할 후임 주지로 측천무후는 2명을 거론하는데, 1명은 신라인이었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태종의 아들 고종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황후인 측천무후 무씨의 장기전 전략의 결과였다. 고구려 멸망의 원인을 연개소문의 아들 삼형제의 내분으로 보는 것은, 역사를 궁정 정치로만 보는 사극들과 궤를 같이하는데, 이는 곧 일제가 조선사를 설명하던 사관이다. 측천무후는 장기전을 통해 고구려의 지속적 전쟁 수행능력을 고갈시키고 최후의 궁지에 몰아 넣었는데, 이 지경에 이르면 대개의 지도부는 국가 생존전략을 두고 항복이냐 옥쇄냐를 두고 분열하게 된다. 중국인들은 사극을 통해 국가 경영과 외교 전략을 배우는데, 우리는 여전히 자아도취적 민족주의에 빠져 있다.

하이네는 민족주의를 무지하게 싫어했다.

하이네는 민족주의를 무지하게 싫어했다. 그래서 히틀러는 하이네의 시를 출판 금지시켰지만, 시집 "로렐라이"는 어쩔 수 없이 허용했다. 

훗날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는 고려와 장기전 끝에 굴복시키고 나서, "당 태종도 못한 일을 내가 처음 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조선을 굴복시킨 청 태종도 비슷한 소회를 느꼈다. 북방 민족들에게 영웅의 기준은 징기스칸이 아니고 당 태종이었고, 고려는 그 지표였다. 그러나 이들은 의도적으로 측천무후를 무시했다. 여자였기 때문이다.

당 태종 집안은 원래 돌궐족 땅에서 살았고, 돌궐족은 그를 형제로 여겼다. 수, 당 시기에는 이민족 출신의 복성을 가진 이들이 많은데, 중국사에서 현모양처의 대명사인 태종 부인 장손 황후와 그의 오빠 장손무기가 대표적이다. 장손무기는 태종 사후 어린 조카 고종을 옹립하지만, 나중에 측천무후에게 죽임을 당한다. 측천무후도 외가쪽은 "하란" 복성이다.

여진족도 이성계를 형제로 여겼는데, 당 태종과 같은 연유다. 일부 한민족 우월주의자들은 이런 배경을 들어, 당나라가 한족 왕조가 아니라 북방민족 왕조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조선은 한민족 왕조가 아니라 여진족 왕조다. 또 여진족의 선조는 신라인 김함보인데, 청나라 황실의 성 아이신교로(愛新覺羅)는 여진말로 아이신(金, 쇠)과 교로(氏, 한국말 겨레, 부족, 마을)로 이뤄진 말이니, 金氏라는 뜻이다.

만주족은 여진족이 중심이 돼서 형성된 신흥 집단 이름이다. 청 태조 누루하치는 현재의 만주에 살던 여진족, 몽고족, 한족, 고려인 등을 다 규합하면서 "이제 우리는 각기 다른 여진, 몽고, 한족이 아니라 한 집단인 만주족이다"고 선언한다. 이후 청 왕조는 스스로를 여진이라 부르는 것을 피한다. 타이완의 진순신은 이 만주(滿州)라는 단어는 불교의 문수 보살의 문수(文殊)의 여진어식 발음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곧 문수 보살의 구원관을 바탕으로 하는 이념 중심 공동체의 출현이다.

만약 지옥에 한 중생이라도 남아 있다면

문수보살은 "'만약 지옥에 한 중생이라도 남아 있다면 나는 그 중생을 구하기 위하여 지옥에 가겠다"고 서원한, 대승불교의 대표다.

중세 이슬람의 한 성녀도 이 문수보살과 똑같은 서원을 하며, 그리스도교에서도 볼 수 있다. (천주의 성 요한?) 

중국의 왕조 교체는 많은 경우 새로운 이념의 등장이었다. 예를 들어 한나라는 오행사상, 명나라는 明敎라는 신흥종교와 관련이 있다.

명교는 조로아스터교로서 배화교라고도 한다. 김용의 무협지에 많이 등장하며, 마교(魔敎)로 규정된다.  이런 중국의 전통에서 공산주의를 이상으로 내건 이념 공동체로서 인민공화국 출현은 별로 특이한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성경의 히브리 민족, 모세와 여호수아에 의한 이집트 탈출과 해방을 두고, 히브리인은 원래부터 한 민족이 아니라 이집트에 노예 생활을 하던 여러 피압박민족과 하층계급이 어우러져 형성된 집단이라는 해석이 있다. 누루하치에 의한 만주족 선언은 히브리인 해방공동체의 구약 계약과 같은 것이다. 

만주인, 몽고인, 한인, 조선인, 일본인의 5족협화(五族協和)

청 태종의 부인 효장 황후는 몽고족이다. 효장 황후는 태종이 젊어 죽자 시동생인 섭정공 도르곤과 더불어 중국 정복을 이루며, 아들 순치제와 손자 강희제를 길러낸다.

한족은 청나라의 이민족 지배를 부끄러워하면서도 강희, 옹정, 건륭제에 이르는 160년간의 태평시대를 중국 최고의 전성기로 인정한다. 건륭제는 할아버지인 강희제를 크게 존경하고 모범으로 삼았는데, 강희제는 바로 이 효장황후가 직접 황제 교육을 시켰다. 따라서 효장황후가 제국을 이룬 것이다. 요즘 중국 드라마에서 효장황후는 절세미인으로 그려진다. 원래 절세급 미인이었다고 한다.

영국인들이 엘리자세스 1세 여왕을 그렇게 자랑하는데 효장황후에 비하면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마지막 황제", 아이신교로 부이가 일본의 지원 아래 만든 만주국(1932-45)은 "만주인, 몽고인, 한인, 조선인, 일본인"의 5족협화(五族協和)를 건국 이념으로 내세운다. 선조의 만주족 선언을 재현하고자 한 것이나, 실제로 그만한 혁명적 열기나 역량은 없었다.

일본 식민지 조선의 박정희가 만주국 군관학교에 입학하고, 조선인 최남선이 만주국 건국대학 교수가 된 것은 이러한 흐름과 연관이 있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이상과 이념은 추구하는 자 본인에게는 선이겠지만, 완전한 것은 없다. 나의 이상이 타인에게는 허위이고 억압인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절대자는 신의 본질을 표현하는 단어이고, 또 신을 가리키는 또다른 표현이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이것은 액튼 경의 유명한 경고다. 여기에서 절대권력은 교황 무류설을 교리로 선포한 교황 비오 9세의 가톨릭교회를 가리킨 것이다.

액튼은 19세기 중반 영국의 가톨릭 집안 귀족으로서, 19세기 가톨릭 자유주의와 개혁론의 대표격이었다. 그는 비오 9세에 저항해 격렬히 싸웠다.

전임 교황 요한바오로 2세, 그리고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비오 9세를 성인으로 선포하는 시성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그때마다 유럽의 자유주의 전통은 격렬하게 비난한다. 비오 9세는 19세기 유럽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공화정 운동을 격렬히 반대했다. 비오 9세는 또한 유대인 아이 납치 문제 때문에도 비난을 받는다.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사상계>는 이를 조건부로 불가피했다고 지지하면서도,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경구를 인용하며 군사정권이 공약대로 곧 민정 이양을 할 것을 요구했다. 이 논설은 장준하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이 경구는 장준하의 말처럼 아는 이도 많다.  

   
▲ 장준하, 돌베개

장준하와 김준엽의 동반탈출

장준하의 책 <돌베개>는 그가 중국에서 일본군에서 광복군으로 탈출한 때의 이야기인데, 같이 탈출했던 김준엽은 <장정>이라는 책으로 남겼다.

돌베개 출판사의 한철희 선배(철학과)가 2009년에는 한국출판인협회장이 됐고, 연말에는 가톨릭매스컴상 출판부문상을 탔다. 나는 기사를 썼다. 

장준하와 김준엽의 동반 탈출... 나도 1981년 4월 4일 새벽 4시 4분전에 남부서 3층에서 아무개하고 같이 뛰어내린 일이 생각난다. 그 친구는 이제 한나라당 의원이 됐지.

그때 경찰 교란용으로 "대한극장에서 영화 콰이강의 다리 보고 싶어 나간다"고 하는 메모를 남겼는데, 서장이 잘리게 된 남부서 형사 100명이 총동원돼서 벗들이 많이 고생했다지? 이제야 고맙고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네. 사흘 만에 잡혀 와보니, 서장이 직접 대한극장 들어가는 문 앞에서 내가 나오는지 지켜봤다고 하더라고.

남부서는 이 골치덩이들 어차피 군대보낼 것 각자 고향으로 보내자 해서, 나는 정읍서로 넘겼는데, 경찰서장인 강 서장이 "원래는 유치장에 넣어야 하는데, 그러면 나중에 경력에 금가니까 집에 연금시켜라"해서 형사 두 명이 처음에는 대문 앞에서 9시-5시까지 출근하다가 나중에는 동네 사람 항의 때문에 안방에 들어와서 하루종일 같이 지냈지.

강 서장은 정읍 출신인데 전주에 있을 때부터 범죄자들에게 인자하게 대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어. 당시 세평은 "저 사람 나중에 국회의원 나오려는 것이다"고 했는데, 십몇년 뒤에 국회의원 나왔는데 안 되고, 결국 시장 선거에 됐지.

3년 전에 어머니 장례를 치르러 운구차를 모시고 갔는데, 동네 사람이 경운기로 막더라고. 미리 얘기 안했다고. 그런데 그 폭설내린 휴일에 강 시장이 그 분쟁을 해결하려고 나왔어. 상주가 옛날의 그 학생인지는 몰랐을 거야. 나로서는 두 번이나 은혜를 입은 것이지. 

왜 가서 인사 안 해? ..... 당이 다르거든

역곡 나 살던 동네를 딸과 함께 지나다가 그 임 아무개가 시장 입구에서 선거 유세를 하는 것을 멀리서 봤다. "저기 뭐하는 거야?" 응, 선거운동이다. "누구야?" 내 친구다. "그래? 왜 가서 인사 안 해?" ..... 당이 다르거든, 저 사람은 한나라당이야. 저 사람을 도와줄 수는 없단다...

중국에 간 학도병 가운데 탈출한 이들의 운명은 탈출해서 국민당군을 만났느냐 공산군을 만났느냐에 따라 갈렸다.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로... 6.25 때도 서로 총부리를 맞댔지. 

운동권에서는 신입생 환영식에서 어떤 파의 선배가 처음 옆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NL과 PD로 인생이 갈렸다고 하지. 나는 그런 파가 생기기 전에..., 그래서 좀 더 자유롭게 내 운명을 결정했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청소년 시절에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해서 고사포병 부대에 배치됐지. 교황이 된 뒤에 알려지자, 교황청 공식 입장은 "교황께서는 강제로 입단했으며, 연합군 비행기를 향해 한 발로 발포하지 않았다"는 해명이었지. 사수는 아니고 포탄만 날랐는지도 모르지. 인간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그가 설사 히틀러 유겐트 이념에 동의했다고 해도 나는 그를 용서할 것이다. 단지 그가 18세 미만의 청소년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러나 나는 성인이면서도, 10년, 20년이 지난 뒤에까지도 "선배 잘못 만나서" 탓을 하는 자들을 용서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한국판 히틀러 유겐트라는 비판을 받았던 청소년연맹은 5공화국 허문도의 작품이었지. 지금이야 이빨이 빠졌지만, 당시에 나는 자원봉사활동과 참여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새로운 운동 영역을 개척해 보려고 여러 단체를 찾아 방문하다가, 용산에 있던 청소년 연맹 본부까지 찾아갔지. 나에게 열띠게 "이념"을 말하며 설명하던 남자의 눈에서 순수한 확신의 광기와 정보요원의 날카로운 눈길을 느끼며, 파시즘이 그 시대의 당사자들, 특히 주창자들에게 어떤 것이었을지 두고두고 생각하게 됐다. 내 보기에 허문도는 진짜로 5공화국을 이념적인 "새세상"으로 만들려고 했어. 그러기에는 전두환은 너무도 세속적이었지만. 지금도 아람단, 보람단 다 있지...

보이스카웃...정찰대

국민학교 때 보이스카웃을 잠시 했는데, 스카웃이란 단어의 뜻이 커서 알고보니 "정찰대". 1920년대는 독일 파시즘이 아니라도 군사활동에 대한 관심과 찬양이 넘치던 때였고, 그래서 보이스카웃은 미국에서 한 전직 장교가 만들었지. 지금이야 소년병의 인권침해가 국제 문제지만, 당시에는 소년 정찰병은 애국주의의 대표적 표상이었고, 당연히 스카웃 복장은 당시 군복을 본뜬 것이고. 지금도 미국에는 청소년 군사학교가 있지... 사립으로... 

김일성 빨치산 부대의 소년 정찰병이 이인모. 김일성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에도 나오는 인물이 남한의 장기수로 감방에 있었으니...

이인모가 송환된 뒤, 자청해서 북한의 감옥들을 돌아보고서는 "이런 대우를 하면 나도 몇년 못 살았을 것"이라면서 김정일에게 개선을 청원해서 그 뒤로 북한 감옥의 인권상황이 조금은 나아졌다는 설도 있지. 아마 장기수를 지원하던 남한 인권단체들과의 접촉이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

천주교 장기수 후원회를 운영하던 최 아무개는 장기수들과 그렇게 오래 지내면서도 주체사상 때문에 많이 다퉜다고..... 지금은 진보신당에서 여성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을 열심히...

기록을 다 바꿔버린

김일성 회고록의 많은 부분은 말 그대로 "소설"이지. 그 자신도 작가들이 써준 원고를 보고 겸연쩍었을 것인데...

원래 공산당이 기록에는 매우 열심이고 엄격하지. 그 기록을 다 바꿔버린 김정일은 참...

한 무제가 말년에 사마천을 불러 책을 다 썼냐고 묻고는, 자기에 대한 부분을 보자고 하지. 강요해서 받아낸 뒤에 읽고는 자기를 나쁘게 쓴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무척 화를 내는데.... 결국은 "공식 역사가 아니라 비공식 사서니까..." 하면서 고치지 말고 놔두라고 하지. 무제가 말년에는 좀 변하는데, 그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읽는 사기가 남아 있는 것이고. 당 태종은 자기 기록을 보려다가 위징이 "그것은 폭군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려서 결국 성군으로 역사에 남고자 안 보고.

기학이하고 청죽학사 써클을 만들 때, 공부 잘하는 기학이는 학사(學舍)를 내놓고 나는 종이가 없던 당시에 문서 기록하는 죽간을 말하는 청죽(靑竹)을 내놓아서 합체했지.

염철론은 한무제 시절을 정리하고 다시 문치로 넘어가는 국가경영에 관한 황제앞 논쟁을 유가 입장에서 기록한 것이고. 화양이가 이성규 선생하고 염철론 강독하면서 유물론과 잉여가치 생산 논쟁했다고 하던 기억이 나는데, 나는 그때 휴학 중이어서인지 기억에 없어서 부러웠을 따름인데... 몇년 전에 홍동 풀무농업학교 전공부 도서실에서 염철론을 발견하고 빌려 읽었더니, 장 선생이 "이 책을 학교돈으로 구입할 때,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 없을 것이니 낭비라고 하던 비판이 드디어 반박됐다"고 기뻐하더구만. 국가 경영과 경제에 관한 필독서인데... 읽는 사람은 드물지.

회남자는 한무제와 황위를 두고 다투던 회남왕 유안이 쓴 책인데, 드라마 한무제에는 유가에 대립한 도가로 나오지만, 위키에는 잡가에 속한다고 정리했고. 후즈는 잡가=도가라고 정리했고. 결국 자칭 좝파인 나는 도가에 속하게 되네... 

한무제가 중용해서 중국 유교 통치를 확립한 동중서가 왕국 도서관 책장 사이에 벌렁 누워 낮잠을 자는 자유분방한 인물이었고... 다 후손들이 자기 필요와 희망에 따라 자기 좋은 색깔을 입힌 동상을 만드는 것이고...

학문과 낮잠 가운데 택일하라면 나는 당연히 낮잠.

인연은 맺음이 없고 연상은 끝이 없어도, 잠은 때가 오면 졸리는 법. 오늘 저녁 초대한 곳에서는 어느 술을 내놓을까? 

연상은 정신분석과 정신과 치료에서 자주 쓰이는 기법인데, 아차, 정신병원 나온 양운기 수사가 얼마 전에 발렌타인 7년산을 보내줘서 고맙다고 해야겠네. 몇년 전에 수녀들이 만든 그 술은 세계 최고 꼬냑이었고. 그걸 두 병이나 먹어봤으니 더 욕심은 내지 말아야지.

2010. 02. 15.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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