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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의 약함을 사용하시는 하느님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9 조회수435 추천수2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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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우리의 약함을 사용하시는 하느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2코린 12,9).

하느님은 약한 사람들을 사용하기 좋아하신다. 모든 사람에게는 약점이 있다. 사실 우리에게도 육체적, 감정적, 지적 그리고 영적으로 부족하고 불완전한 점들이 아주 많다. 또한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을 수 있다. 재정적인 한계나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한계점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점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보통 우리들은 약점들을 부인하고, 방어하고, 핑계를 대고, 숨기고, 약점을 가진 사실에 대해 원망한다. 이러한 태도는 하느님이 그 약점들을 그분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사용하실 수 없게 한다. 고통과 위기를 당했을 때 하느님께서 예비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구하고 깨달아 인도하심에 응답하여야 한다.

하느님은 우리의 약점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신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이사야 55,9). 라고 그분은 말씀하신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일하신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의 강점만을 사용하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분은 우리의 약점까지도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 싶어 하신다. 성경은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1코린 1,27) 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약점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그 약점을 일부러 우리에게 허락하셨고, 이를 통해 하느님의 능력을 보여주려 하신다
. 하느님은 한 번도 강점이나 자기만족을 좋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사실 그분은 약하고 그 약점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셨다. 예수님은 이러한 우리의 필요에 대한 인식을 ‘마음이 가난하다’ (마태 5,3) 라고 부르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축복하시는 첫 번째 태도다. 성경에는 그들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불완전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엄청난 일들에 사용하기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보여주는 예들로 가득하다. 만일 하느님이 완벽한 사람들만 쓰셨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누구도 약점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불완전한 사람들을 들어 쓰신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격려를 주는 소식이다.

‘약점’은 우리가 가지고 태어났거나 바꿀 힘이 없는 한계점이다. 그것이 장애, 만성질환, 체력저하, 또는 능력저하와 같은 육체적 한계일 수도 있다. 또는 비극적인 상처, 나쁜 기억, 인격적인 결함, 또는 유전적인 성격과 같은 감정적인 한계일 수도 있다. 혹은 재능이나 지적인 면에서의 한계일 수도 있다. 삶에서의 이러한 한계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다. ‘나는 하느님께 절대 쓰임 받을 수 없을 거야.’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의 한계들로 제한되지 않으신다. 사실 하느님은 보통의 그릇에 당신의 위대한 능력을 담으시는 것을 좋아하신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2코린 4,7). 질그릇처럼 우리는 약하고 결점이 있으며 쉽게 깨진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이 우리의 약점을 통해 일하시게 한다면 하느님은 분명 우리를 사용하실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바오로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자.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체하지 말고 스스로에 대해 솔직해지자. 부인하거나 핑계 대는 대신에, 자신의 약점들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지자. 목록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이 우리를 사용하시기 원한다면, 하느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하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아야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특히 지도자들은 두 번째 사실을 잊는다. 우리는 사람일 뿐이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위기를 통해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다. 바오로는 우리의 천성적인 약점들에 대해 기뻐해야할 이유를 제시한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께 의존할 수 있게 한다. 하느님이 거두어가시기를 거부하는 자신의 약점들을 언급하면서 바오로는 말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2코린 12,10). 우리가 약하다고 느낄 때마다 하느님을 의지하라고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우리의 약점은 우리가 거만해지지 않게 막아준다. 겸손함을 잃지 않게 한다. 바오로는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코린 12,7). 고 말했다. 하느님은 때때로 우리의 자아를 제어하시기 위해 우리의 강점에 약점을 덧붙이신다. 약점은 우리가 하느님보다 앞서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기드온이 미디안 족속들과 싸우기 위해 32,000명의 군대를 모집했을 때, 하느님은 그 수를 300명으로 줄이셨다. 적군이 135,000명이었으므로 이는 450:1의 싸움이었다. 곧 재앙이 닥칠 것처럼 보였지만 하느님은 그렇게 하심으로서, 이스라엘이 그들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으로 구원 받았음을 알게 하셨다.

위대한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모든 하느님의 거인들은 약한 사람들 이었다.’라고 말했다.
모세의 약점은 그의 불같은 성질이었다. 이집트인을 살해했고, 말로 명해야 했던 반석을 지팡이로 쳤으며, 십계명이 쓰여진 판을 깨버렸다. 하지만 하느님은 모세를 ‘지구상의 가장 온유한 사람’(민수기 12,3)으로 변화시켰다.
기드온의 약점은 낮은 자존감과 뿌리 깊은 불안감이었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를 ‘힘센 용사’(판관기 6,12)’ 로 바꾸어 놓으셨다.
아브라함의 약점은 두려움이었다. 두 번이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내를 동생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믿는 모든 자의 조상’(루카 1,73)으로 바꾸셨다.
충동적이고 의지가 약한 베드로는 ‘반석’(마태 16,18)이 되었고,
간통했던 다윗은 ‘내 마음에 드는 사람’ (사도행전 13,22)이 되었다.
그리고 ‘천둥의 아들’ 가운데 하나였던 요한은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하느님은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데 전문가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을 취해 바꾸고 싶어 하신다.

한적한 곳에서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하느님께 고백하자. 그리고 그 약점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천하 만방에 공개하여 자랑하자. 그리하면 나를 속박했던 감옥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얻을 것이며, 하느님께서 ‘마음이 가난한 자’로 준비된 당신을 주님 안에서 우리의 ‘하나 됨’에 크게 쓰시리라.

(릭 워렌 / ‘목적이 이끄는 삶’ 참조)




[2월 20일] 지극히 거룩한 생명의 말씀 '복음' <루카 5,27-32>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밖에 나가셨다가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오늘의 묵상]
세리 ‘레위’는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마태오’입니다. 그는 제자가 된 뒤에 이름을 바꾸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세리 레위가 아니라 주님의 제자 ‘마태오’로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마태오’의 말뜻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리를 멸시했습니다. 그들과 어울리는 이들도 색안경을 끼고 봤습니다. 그러기에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따집니다. 세리와 함께 식사하시는 것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죄인들과 어울리러’ 오셨음을 천명하십니다. 그들에게 ‘천상 기운’을 주시려고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레위는 부르심에 선뜻 나섭니다. ‘모든 것을 버려둔 채’ 따라갑니다.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세리였지만, 안정된 직업이었습니다. 그런데 포기한 것입니다. 그만큼 레위는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한 잔치를 베풉니다. 레위의 예의입니다. 이제, 내 인생의 주인은 ‘예수님 당신’이시라는 고백입니다. 그는 자신의 재물도 예수님의 일행을 위해 내놓았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세리 레위’의 모습은 있었습니다. 주님 앞에서의 부족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일을 맡기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언제라도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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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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