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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의 기도에서 나타난 빵의 간구 정신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23 조회수416 추천수7 반대(0) 신고
 
 
 

 

주의 기도에서 나타난 빵의 간구 정신 - 윤경재

 

주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특별히 가르쳐주신 기도로서 당시 한 집단의 고유한 암호문 같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당시 각 종파는 나름대로 고유한 기도문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사이나 에쎄네파, 요한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이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신들에게도 고유한 기도문을 가르쳐 달라고 스승님께 요구하자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의 기도는 당시로써는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을 담았습니다. 먼저 하느님을 아빠라고 직접 부른 것이 그 어느 종파와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하느님 상이 바뀌었습니다. 하느님을 명령과 요구, 징벌을 내리시는 분에서 피를 나눈 가족관계의 친밀한 사랑을 나타내었습니다. 

인간의 아버지도 무엇이든지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자식이 잘되고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자식이 지닌 고유한 품성대로 자라 제 몫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열 손가락이 서로 모양과 기능이 다르지만 하나로 여겨 아끼고 사랑하듯 아버지는 자식들을 생각합니다.

주의 기도문은 이어서 두 개(혹은 세 개)의 아버지 간구가 나오고 후반부에는 세 개의 우리 간구가 나옵니다.

우리 간구 중에서 첫 번째로 빵의 간구가 나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말로 양식이라 번역된 단어는 빵을 뜻합니다. 여기서 이 빵을 구체적인 빵으로 볼 것인지, 정신적이고 미래적인 의미를 지닌 빵으로 볼 것인지 생각해 보려합니다.

예수께서는 평소에 제자들에게 가난을 요구하였습니다. 실제로 예수 일행이 배곯는 일이 자주 있었을 것입니다. 하도 배가 고파 제자들이 무심결에 밀 이삭을 손으로 베어 비벼서 먹을 정도였습니다. 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며 보낼 때에도 여분의 빵을 들고 다니지 말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 의미는 무엇인가 자신을 위한 재산을 소유하지 말라는 정신적인 요구임과 동시에 실제적 가난을 당부한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일행은 하루 먹을 빵이 늘 필요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에수님게서는 내일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하고 광야에서 만나를 거두어 먹을 때 내일 먹을 것을 미리 거두어 준비하지 못하도록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정신을 아드님 예수께서는 철저히 지키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마련하신다는 정신을 제자들이 새겨듣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하느님께서 준비하시고 공짜로 주신다는 개념은 감사와 찬미를 아버지께 바쳐야 하는 당위성을 이끌어 냅니다. 

그러므로 이 빵은 아주 구체적이고 눈에 보이며 우리 생명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적인 빵입니다.

 

또한 이 빵은 또 다른 의미가 담겼습니다. 세례 받고 광야에 나가시어 겪은 유혹 사화에서 악마에게 예수님은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4장 31-34절 내용을 보면 또 다른 의미가 담겼습니다.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일을 수행할 때 빵이 저절로 생겨 그 일을 할 힘과 능력이 나온다는 가르침입니다. 

나아가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6장에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빵의 내용이 어떻게 확장되는지 알려주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시면서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4)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행위는 천상의 잔치에서 먹을 양식을 지상에서 미리 맛보는 일입니다. 그 생명의 빵을 먹음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 빵을 먹는 자는 저절로 하느님의 일을 수행할 원력이 생기고 또 그분의 뜻에 순명할 각오가 생기는 것입니다. 빵을 먹었으니 일을 해야 하겠다는 의지가 샘솟게 될 것입니다. 

그 빵을 먹은 효과는 바로 주의 기도 다음 간구에서 나타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용서를 받은 만큼 이웃을 용서하는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용서하겠다고 기도하게 됩니다. 하느님께 용서를 바라며 이웃을 용서하는 행위의 동시성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일용할’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에피우시오스)는 다른 그리스어 문헌 중에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성경에만 나오는 단어라서 그 뜻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그 참뜻을 설명하려고 애썼습니다. 우리말로는 ‘매일 같이 필요한’ 의미가 강하게 풍깁니다. 

교부들은 이 단어에서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물질적인 의미와 아울러 인간이 피조물로서 하느님 아버지의 창조 본질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필수 요소로 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회복하여 지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빵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종말의 잔치에 베풀어지는 빵, 천상의 빵을 일용할 양식으로 보았습니다. 그 양식을 놓치지 않고 먹게 해달라는 간구가 담겼다고 보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오늘’이라는 단어를 삽입하여 하느님의 뜻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오늘의 의미도 잘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그 뜻을 흘려서 듣습니다. 빵을 구하는 기도를 하되 이틀 치나 사나흘 치 방을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치 필요한 빵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여 여러 날 필요한 빵을 미리 챙겨 놓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근심 걱정은 내일을 확신하지 못하여 미래의 안전을 대비하여 둡니다. 그것은 자칫 욕심이 될 우려가 있습니다. 주님께 향한 믿음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탈출기에서 만나를 하루치만 거두어들이라는 하느님의 명령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은 하느님을 참으로 믿지 못하고 인간의 얄팍한 욕심을 앞세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마태오 복음 20장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한 포도밭 주인은 아침부터 일한 사람이나 오후 다섯 시에 일을 시작한 일꾼이나 같은 한 데나리온의 삯을 지급하였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그 당시 한 가족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하루치 품삯으로 바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데 소용되는 돈이었습니다. 

나중에 온 일꾼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을 본 첫 번째 일꾼은 마음속으로 더 받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자신은 그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였으니 몇 배는 더 받을 줄 알았습니다. 즉, 이틀 치나 사흘 치를 받으려니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주인은 그의 기대와 달리 이틀 치나 사흘 치에 해당하는 삯을 얹어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만나를 하루치만 베풀어 주신 것과 같습니다. ‘오늘’에 필요한 빵만을 구하는 주의 기도 뜻이 어디에 있는지 읽을 수 있는 예입니다. 

그러나 마태오 본문을 잘 읽어보면 더 풍부한 뜻이 숨어있습니다. 일찍 나와 뽑힌 부지런한 이에게는 특별한 상을 주었습니다. 주인은 그를 그저 일꾼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여!’라고 특별히 불렀습니다. 친구는 애정 어린 호칭이며 동류로 여긴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과분한 칭찬입니까?

 

오늘에 필요한 빵만을 구하는 기도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무한 신뢰를 지니라는 요구입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정신은 바로 무소유의 정신입니다. 인간적 근심 걱정이 낳은 죄의 근원이 소유의 욕심입니다. 과도한 소유욕이 피조물인 인간의 본질을 잃게 하는 근본 원인입니다. 

주의 기도에서 ‘빵의 간구’ 정신은 소유에서 떠나라는 요구입니다. 가난의 정신이 빵과 같은 실제적 필요에서도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탈출기의 정신은 소유에서 떠나라는 요구였습니다. 이집트에서 소유와 집착 때문에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에게 그 집착의 땅을 떠나 새로운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 새 공동체, 하느님의 공동체를 형성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펴는 공동체는 ‘주의 기도’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그대로 지상에서 펴려는 주님의 의지를 늘 회상하고 그대로 실천하겠다는 믿음과 의지를 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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