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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진묵상 - 법정스님께서 열반하셨습니다.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13 조회수645 추천수3 반대(0) 신고
 
 
  사진묵상 - 법정스님께서 열반하셨습니다.
                                                                          이순의
 
 
 
스스로 거목이라는 부름을 거부하셨던 스님께서 선종하셨다.
글을 읽거나 쓸 줄 아는 거의 모든 백성은
스님의 글 한 줄을 대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고
주머니에 지폐 한 장이라도 있는 청춘이라면
스님의 책 한 권을 사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나라가 산업으로 달음박질을 하고 있을 때
가픈 숨을 잠시 멈추라고 하신 분이
스님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물질의 추구가 진보의 명답으로 작성되고 있을 때
<무소유> 라는 작은 소품 하나가
느린 자들의 숨통이 되었을 것이다.
콘크리트 성냥 곽 아파트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서 이 땅을 점령할 때
작은 암자였던 불일암은
맑은 공기 한 점으로 심장을 열었을 것이다.
 
나도 한 때는 스님의 글들을 읽으며 
쓰며
외우며
무슨 보석처럼 아꼈던 시절이 있었다.
벗님들에게 쓰는 편지 한 토막에 
반드시 
스님의 설법을 한 줄이라도 적지 않으면 
어딘가 허전함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단 한 번도
먼발치라도 
스님을 뵌 적이 없다.
그러나 무릇 생각하여보면
이 나라가 참 행복하였음은
어른들을 잘 두었음 같아서 
스승을 잘 모셨음 같아서
두고두고
고단한 숨결이 트이지 않았던가 싶다.
 
 
 
 
 
스님께서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사 오면서 풀지 않았던 상자를 풀어보았다.
1996년도에 섬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와서
은행에를 갔는데
들춰본 잡지에 저 사진이 실려 있었다.
창구에 문의하여 이 사진 한 장을 얻고
비싸지 않은 액자를 사서 담고
좁은 집 한 곁에 모셔두었었다.
그 때!
가정방문을 오셨던 본당 주임신부님께서
이런 사진은 어디서 구하느냐고 물으셨는데
은행에서 잡지 오렸다고 알려드렸었다.
기억은 가물 하지만
아마도 그 기사의 내용이
종교 간의 대화 내지는 화합!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저 좋았다.
가톨릭교회의 상징인 주교님과
내가 좋아하던 글쟁이 스님의 만남!
그 사실만으로도 단순히 좋았다.
그래서 이 사진 한 장이 욕심이 났을 것이다.
가사 한 장 덮고서
마지막 가시는 길목까지라도
우리 가톨릭교회도 함께 배웅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스님, 잘 가십시오.>
<부디 성불하십시오.> 
 
 
 
 
 
 
 
 
사진의 한 곁에는
<초파일을 맞아
  장익주교가 법정스님을 찾아왔다.
  법련사 뜰을 거닐며.> 라고 적혀있다.
 
두 분의 인연은 상당히 대비된다고 본다.
땅 끝 작은 고을 출생의 스님과 이 나라 부통령의 아들이셨던 신부님
스님께서는 무력이라는 힘에 눌린 민초들의 편에서 고뇌하셨고
신부님께서는 권력이라는 억압에 눌린 무상한 현장에서 고뇌하셨고 
그 걸어오신 발자취 또한 극과 극으로 대비 된다지만
구도의 길은 일치하지 않았던가?!
나는
이 사진을 상당히 오랫동안
곁에 두고 살았었다.
특별한 의미도 없었고,
짝꿍과 아들의 동의도 없었지만 반대도 없었으므로
그냥 무심결에라도
그저 모습이 좋아서
가족사진도 없는 내 집에 자리를 내어 드렸었다.
아마도
비싼 가족사진을 마련하지 못한 탓이었을 것이고
공으로 얻은 사진에게 만족한 탓도 내포하였을 것이다.
얼마 전에 장익주교님께서도 현역에서 은퇴하시고야 말았다.
한 시대의 종교를 대표했던 분들이라지만
이승과의 이별은 스님께서 먼저 하셨으니
어찌 아련한 추억이 애달프지 않겠는가?!
 
 
 
- 사진출처; 네이버, 연합뉴스-
 
해탈의 경지에 서면 죽고 삶에 연연하지 말라한다.
건불 한 올처럼 왔다가 먼지처럼 사라져 가야 옳다.
그러나 살아남은 중생들의 연민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스님께서 산에서 내려 온 이유가 어린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나 혼자만의 깨달음이 아니라
나 혼자만의 참선이 아니라
함께 구도의 맥을 이어갈 뜻 벗을 얻고자 하였음인가 보다.
어린친구들도 어느덧 홍색 가사를 걸치고
뜻을 따라보았지만
스승에게서 얻은 정은 가르침으로도 초월되지 않았나 보다.
수많은 중생들께서도 뚫린 숨통에 목이 메었나보다.
이제
누가
시대를 아우르는 숨통을 열어 주실까나?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성불하십시오. 스님.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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