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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의 자녀답게" - 3.1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14 조회수402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3.14. 사순 제4주일

여호5,9ㄱ.10-12 2코린5,17-21 루카15,1-3.11ㄴ-32

 

 

 

 

 

"아버지의 자녀답게"

 

 

 

난생 처음 어제 솔뫼 베네딕도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정갈하고 정성가득 담긴 음식과 더불어

저녁 식사 때의 분위기도

고향 집에 온 듯이 참 편안하고 따뜻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온 것 같습니다.”

 

저절로 식사도중 나온 말입니다.

 

마침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잠시 다녀온

육신의 아버지의 집인 고향 집과 극명한 대조가 되었습니다.

 

거의 15년 만에 방문했던 육신의 고향집은

서서히 폐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고향집을 방문한

여동생 부부도 만나 참 반가웠습니다.

 

여동생 부부 덕분에 목적지인 수녀원에도

늦지 않게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고향집에서 잠시 비감에 잠겼었지만

어제 읽은 오늘 복음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영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이요,

영혼의 고향집인 수도원입니다.

 

언젠가 사라질 육신의 아버지, 육신의 고향 집이지만

영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영혼의 고향집, 하느님의 집 수도원은 영원할 것입니다.

 

하여 저는 어디를 방문하든 우선 성전을 찾습니다.

거룩한 미사가 거행되는 성전은

바로 하느님이 계신 영혼의 고향집이요,

세상 끝날 까지 계속 남아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아버지의 집,

하느님의 집에 살고 있는 행복한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계시지 않아도,

육신의 고향집은 폐가가 되어도,

영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영원하시고,

영혼의 고향집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은 늘 이렇게 건재할 것입니다.

 

 

과연 아버지의 집,

하느님의 집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요.

 

아버지의 자녀답게,

임금이신 하느님의 왕자답게, 공주답게 살고 있습니까?

혹은 종처럼 또는 거지처럼 살고 있습니까?

 

저는 어제부터 이런 관점에서 많이 묵상했습니다.

 

오늘 복음의 자비하신 아버지의 비유에 나오는 큰 아들은

외적으로는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의 아들답게, 자녀답게, 왕자처럼 산 듯이 보였지만

내용으로는 종처럼 살았습니다.

내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했어도 마음은 아버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다음 말씀이 이를 입증합니다.

작은 아우를 환대하는 아버지가 못 마땅하여

화를 내며 쏟아내는 다음 말에서 그의 본심이 잘 드러납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찐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큰 아들의 모습

그대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진정 아버지를 사랑하며 섬기지 못했고

아우에 대한 사랑도 없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녀처럼 살지 않고

말 그대로 종처럼 산 큰 아들이요,

아버지뿐 아니라 아우와의 내적거리도 참 멀게 느껴집니다.

 

 

반면 회개하여 아버지의 집에 돌아오기까지

작은 아들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그대로 거지 생활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자녀로서의 품위와 존엄을 잃고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완전히 거지의 삶이었습니다.

 

세상에 아버지인 하느님을 떠나

왕자로서, 자녀로서 존엄한 인간 품위를 잊고

거지처럼 사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심지어 아버지의 집에 산다는

신자들이나 수도자들 중에도

거지처럼 사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외적으로 부자라 하여 왕자나 자녀가 아니라

내적으로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면

모두가 영적 거지들일뿐입니다.

 

비록 외적으로 가난해다해도

내적으로 하느님을 모시고

자기 존엄과 품위를 유지하며 사는 이들,

진정 부유한 하느님의 왕자들이요,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끊임없는 회개로 아버지께 돌아올 때

비로소 거지 신분에서 왕자 신분에로,

자녀 신분으로의 전환이요 업그레이드입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회개하여 당신께 돌아 온 거지 아들을

즉시 왕자의 신분, 아들의 신분으로 복권시켜 주시는

자비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주어라.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바로 이게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귀한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큰 아들이나 작은 아들 모두 우리의 모습입니다.

깨어 하느님 현존 안에 살지 않으면

아버지의 집에서 종처럼, 거지처럼 살 수 있습니다.

 

 

늘 임금이신 하느님의 왕자답게, 공주답게,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자녀답게

자기 존엄과 품위를 유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늘 회개로서 새롭게 시작할 때 가능합니다.

 

1독서에서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 파스카 축제를 지낸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 거룩한 파스카 축제 미사가

우리를 왕자 신분, 공주 신분, 자녀 신분으로 복권시켜

매일 새 하늘, 새 땅, 새 날을 살게 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 참 고무적입니다.

이대로 믿고 살 때 왕자요 공주요,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우리의 영원한 영혼의 고향은 ‘그리스도 안’입니다.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서만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피조물로, 하느님의 자녀로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아버지의 집에서 종처럼 산 큰 아들은

다음 자비하신 아버지의 말씀에 회개하여

분명 자녀로서 존엄한 품위를 되찾았고

새로운 피조물의 대열에 합류했을 것입니다.

 

“예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부단한 회개로 이런 아버지의 자비로움을 닮아갈 때

비로소 아버지의 자녀요,

임금이신 하느님의 왕자요 공주로서의 신분 회복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너그럽고 자비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평생 숙제입니다.

종처럼, 거지처럼 살지 말고

아버지의 자녀답게, 임금이신 하느님의 왕자답게, 공주답게,

너그럽고 자비롭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살게 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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