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 - 주님의 모습은 우리의 목표 옛 사람들 가운데 커다란 업적을 남긴 이를 ’위인’이라 한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위인들을 들라 하면 세종대왕이니, 이순신 장군 등을 언급한다. 역사적으로 중대한 시기에 중요한 업적을 남기거나 위대한 일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위인들의 이야기를 모든 이에게 알리려는 것일까?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 가운데는 연예인들이 많다. 매스컴을 통해 인기를 누리는 이 연예인들은 당대에는 유명하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지나면 대개는 잊혀진다. 이들은 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인은 모든 시대에 걸쳐 알려지고 인지되며 교육의 대상이 된다. 그 위인의 ’업적과 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것이 현시대의 사람들과 사회에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시대 정신이다. 위인을 더 잘 알고 이해하는 데는 무엇보다 그들을 직접 만나는 것, 곧 그들의 삶을 ’체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 문화기행이니, 테마여행이니 하는 것들이 유행하는가 보다. 많은 사람이 한 시대를 지혜롭게 살기 위해 위인들을 알려고 노력한다. 위인을 이해하려고 그의 정신이 배인 삶의 현장을 체험하듯이, 우리의 신앙생활도 주님께서 보여주신 당신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주님의 모습을 뵐 수 있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얼마나 좋은 것을 마련하셨는지 생생하게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그분과 함께 지냈다. 함께 지내면서도 예수님이 ’주님’인가 알쏭달쏭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부활하신 다음에 완전하게 깨달았지만, 수난과 죽음 이전에는 그랬다. 그런데 그 기간에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부활 뒤의 영광된 모습’을 보여주셨다. 예수께서 주님이심을 나타내주는 모습, 인간으로 오셨지만 빛나는 신성의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써 직접 하느님의 모습을 체험하도록 하셨으며, 우리 인간들도 그렇게 현양될 수 있음을 일러주신 것이다. 교회는 8월 6일에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을 지낸다. 예수께서 타볼산에서 몇몇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거룩한 변모’ 사건을 기념하여 거행하는 것이다. 이 축일은 본래 타볼산에 세워진 기념성당의 봉헌을 기념하는 축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축일의 날짜는 이 축일보다 앞서 생겨난 성 십자가 현양 축일과 관련이 있다. 전통에 따르면,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40일 전에 일어난 것으로 전하고 있다. 그래서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인 9월 14일보다 40일이 앞선 8월 6일을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로 정한 것이다. 이 축일이 전파된 것을 보면, 5-7세기에 중동의 여러 동방교회가 이 축일을 받아들였다. 서유럽 교회가 기념한 것은 9세기 중엽부터 시작해서 11-12세기에 빠르게 전파되었다. 또한 이 시대에 이 축일을 위한 시간전례(성무일도)가 만들어졌다. 이 축일은 15세기에 로마 보편 전례력에 들어와 오늘에 이르렀다. 이 축일의 주제도 ’성 십자가 현양’과 관련이 있다. 일찍이 동방교회에서 거행한 관계로 - 거기에서는 이 축일에 십자가에 관한 노래를 불렀다 - 십자가 현양과 더불어 동방교회의 신학인 ’인간의 신격화’(divinizatio)에 관한 신학이 주제를 이룬다. 곧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로 인간 본성이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하게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미사의 기도문과 노래들이 이 점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고, 죄를 씻어주시며"(예물 기도), 더 나아가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영광을 드러내시고 빛을 비추시어 십자가의 수치를 없애주셨으며, 그 영광이 교회(우리) 안에도 나타날 것임을 밝혀주셨다"(감사송). 그래서 "우리도 성자의 빛나는 그 모습을 닮아"(영성체 후 기도), "그분과 ’같은 사람’이 될 것이며, 그때에는 그분의 참모습을 뵙게 될 것이다"(영성체송). 그래서 주님의 그 모습은 우리가 지향하는 구원의 목표이다. 우리도 주님처럼 영광을 받게 될 그 찬란한 모습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이며, 그것을 이해시키시려고 직접 ’체험’하게 만드신 것이다.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영광을 받으신 주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그래서 아름다우신 주님께 관한 체험들을 떠올려보자. 우리가 받았던 수많은 은총의 시간들과 그 체험들은 주님을 이해하고 믿는 데 소중한 추억이며 신앙의 힘이다. 세례와 견진 성사를 통해 받았던 은총의 체험, 또는 피정이나 신심 행사를 통해 체험한 것도 있을 것이며, 생활 안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받았던 소중한 체험들이 있을 것이다. 이를 떠올려보자. 내 삶의 생생한 체험이 그분의 마음과 정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향잡지, 1999년 8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 효성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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