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1월 1일 다음 주일), 주님 공현 대축일 - 모든 이의 빛이신 그리스도 세상에는 참 희한한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현대 문명의 이기를 마음껏 누린다. 하지만 그 원리를 잘 깨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은 참 편리해졌다. 20세기를 지내면서, 가장 큰 문명의 이기 가운데 전기와 전자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전기의 발명으로 인간의 삶은 참 풍요로워졌다. 스위치만 누르면 불이 들어온다. 아니 자동 점멸 장치로 날이 어두워지면 저절로 가로등이 켜지도록 만들어놓았다. 어둠을 훤히 밝히는 전기의 도움으로 우리는 어두운 밤에도, 밤을 어둠이 지배하는 시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밝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활동 시간도 더욱 연장되었다. 그만큼 문명의 이기로 우리의 삶이 더욱 확대되고 연장되었으며, 풍요로워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어둠을 밝혀 인간 활동을 연장하는 것이 어느덧 이 밤의 끝을 잡고 놓지 않는 경향들로 나타나고 있다. 새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해만 지면 지저귀는 소리를 멈춘다. 모두 둥지에 든 것이다. 그러다가 여명이 트고 날이 밝으면 쉴 새 없이 지저귄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다. 해가 떠오르면 활동을 시작하고, 해가 지면 휴식과 잠자리를 찾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이다. 그런데 밤을 밝힐 줄 아는 ’인간의 지식’은 오히려 이 밤을 더욱 연장하여, 삶을 거꾸로 만드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 활동의 시간, 깨어있는 시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이 밤의 끝을 부여잡고 저녁시간이 야간으로, 심야로 더욱 늘어지기만 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지식은 날로 발전하지만, ’인간의 지혜’는 문명의 이기가 주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어둠을 물리치는 것이 빛이다. 빛만 밝히면 어둠은 절로 없어지는 것이다. 빛의 이용 가치를 충분히 알면서도 그 원리에 대한 깨달음의 지혜가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빛과 어둠, 양지와 음지, 이런 것들은 서로 상반된다. 하지만, 요한 복음이 말하고 있듯이, 빛이 비추어지면 어둠은 절로 없어진다. 결코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자명한 진리이다. 감춰진 것은 결국 드러나고 진실은 밝혀지게 된다. 빛이 비추이면 어둠이 절로 없어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감춘 것이 결코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갖고 일을 저지른다. 때가 되면 결국 밝혀질 일들이 많이 드러나는 것을 보지 않는가? 우리 신앙생활 안에서 이 점을 깨우쳐주는 날이 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교회는 예수 성탄 대축일을 지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첫 주일을 주님 공현 대축일로 지낸다. 원래 이날이 1월 6일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모든 교우가 이날을 경축하도록 하려고 1월 1일 다음에 오는 주일에 지낸다. 처음 이 축일은 동방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서방교회에서는 12월 25일에 성탄을 지냈지만, 동방교회는 1월 6일에 성탄과 함께 주님 공현을 기념하였다. 그러다가 동방교회의 공현 축일과 서방의 성탄 축일이 서로 교차하여 두 축일을 모두 지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공현 대축일을 별도로 기념하는 것이다. 공현 대축일에는, 성탄 때와 달리 특별한 예식을 하지 않는다. 성탄시기 안에 들어 있으면서 예수 성탄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성탄이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을 말한다면, 공현은 ’그분의 탄생을 이방 민족들 모두에게 밝히 드러내 보이셨다.’는 의미가 강조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날이 되면, 이방 민족들을 대표하는 동방박사들의 형상을 구유에 설치하는 것이다. 세 동방박사들은 우주의 창조주를 경배하는 모든 백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그렇다. 아기 예수님으로 우리 가운데 탄생하신 분은 그리스도이시며 빛이시다. 빛이 오신 것이다. 이 빛이 어두운 세상을 비추고 있다. 그분이 당신 자신을 밝히 드러내심으로써 어둠은 저절로 없어진다. 공현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인간 지식의 발달로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만, 주님 공현 대축일이 주는 의미는 ’어둠을 물리치는 빛에 대한 이치’를 깨닫는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날 대축일을 기념하고 주님 탄생의 기쁨을 누리는 성탄시기를 지내면서, 성탄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자. 고요하고 거룩한 밤에 겸손하게 오신 주님, 그 주님의 빛이 오늘 우리에게 밝게 드러난다. 그 빛을 향한 우리의 시선이 필요한 때가 지금이다. 한 해가 지고 새해를 맞는다. 한 세기가 바뀌고 천년대가 지나고 있다. 숫자의 상징을 보면 그 의미는 더욱 클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이 밤의 끝을 잡고 어둠 속을 헤매지는 않는가? 비록 전깃불은 있지만 말이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경향잡지, 2000년 1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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