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존재의 피로
작성자심경섭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01 조회수478 추천수4 반대(0) 신고

가톨릭 신문을 본다. 여러 교구의 소식과 신부들의 그저 그런 강론들로 채워져 있다. 성의 없는 구성에 마음이 편치 않다. 묻고 답하기 코너에서 신앙의 중심을 잃어간다는 독자의 질문을 본다. 신부가 첫 마음을 기억하라고 한다. 신을 믿게 된 첫 마음. 신앙의 기본은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이다. 화두가 가슴과 뇌 사이를 깊숙이 찔러 들어온다. 과연 나는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가? 그대는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가?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경로는 거칠게 축약하면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우선 종교적 세뇌다. 미성숙한 어린이에게 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시키고 교리를 주입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세뇌를 통해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경우는 상당한 지속력을 지닐 가능성이 높다. 세뇌의 과정에서 신앙조직의 배려와 관심을 받으며 자란 추억이 생기고, 신앙 공동체의 문화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어린 시절부터 민주주의를 교육받은 시민이 평생 아무런 의심 없이 민주주의가 선이라는 믿음을 죽음의 순간까지 지키는 것과 동일하다. 이런 경로의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이들이 확신하는 신의 존재 속에는 이른바 논리와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통로는 체험이다. 정확히 말하면 신을 체험했다는 주관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경험하는 경우다. 가령 지울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사람이 고해성사를 통해 강렬한 용서의 느낌을 체험한 경우, 인색한 사람이 우연한 봉사활동을 통해 강렬한 나눔의 기쁨을 체험한 경우, 소중한 사람의 죽음 앞에 문득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뼈저리게 체험하는 경우 등에서 신을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나 역시 이러한 체험을 가진 적이 있는데 그 경험은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주관적 근거로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배움이라는 것이 삶의 일면에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논리의 필연성은 차치하더라도 절대적 존재의 윤리적 당위를 합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신 존재의 확신이란 지식인에게는 가혹한 형벌이다. 더욱이 정신 병리학과 심리학의 발달로 신에 대한 주관적 체험들은 하나의 심리적인 현상으로 환원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 결국, 이런 체험을 통한 신 존재의 확신은 지속적인 체험과 느낌을 통해서 확신을 이어가지 못할 경우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신 존재 확신의 마지막 경로는 무엇인가? 그것은 철학적 반성일 것이다.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법칙 안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만이 자연법칙을 역행할 때가 있다. 가령 내가 궁핍하게 살아가면서도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내 지갑을 꺼내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일은 인과 적으로 전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인과적 자연법칙에는 그러한 시나리오는 들어있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분명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 순간은 인간이 자연법칙에서 스스로 벗어나 다른 법칙 속에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법칙에서 인간이 자유로워진 순간이면서 전혀 다른 법칙을 통해 스스로 행위 하는 순간이다. 결국 우린 인간은 원인과 결과 혹은 시간과 공간으로 파악되는 이 자연법칙과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세계가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실인 것이다. 마치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물자체는 인식할 수 없고 선험적 감성형식에 걸러지는 현상계만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이성인식의 운명이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물자체가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물자체가 존재하다는 것이 사실임을 인식할 수 있듯이 그 세계는 존재하며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모든 사람들은 위의 세 가지 경로 중 어떤 하나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어쩌면 가장 바람직한 길은 세 가지 길을 순차적으로 걸어가는 것이리라. 자신이 존재하는 근거를 묻고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존재의 피로를 느낀다. 하지만 우리의 신체가 운동 중에 피로를 느끼지만 육체의 보존을 위해 그 피로가 꼭 필요하듯이 우리의 영혼도 철학적 반성을 통한 존재의 피로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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