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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3일 야곱의 우물- 루카17,5-10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03 조회수506 추천수4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5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7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
 
8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 9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 10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시작 기도
오소서, 성령님. 저희의 믿음을 더해 주시고 그 믿음에 의지하여 걸어가도록 저희를 인도하소서.

독서
스스로 저를 보면서 ‘정말 하느님께서 살아 계신다고 믿는다면 내가 이럴 수 있을까 ?’ 라고 생각하는 때가 가끔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루카 17, 5) 라고 청한 제자들의 마음이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째서 그들은 스스로 믿음이 부족하다고 느꼈을까요 ? 루카복음에서 오늘 복음 앞에 나오는 말씀인, 형제가 하루에 일곱 번 잘못하더라도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주님의 요구를 받아들이기가 인간적으로 너무 어려워 그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제1독서에 나온 하바쿡 예언자의 경우처럼, 억압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 세상 모순을 바라보면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흔들림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습니다. 우리가 걸려 넘어지는 바로 그런 순간에 사도들 또한 약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문제의 정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당신의 계명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쉬운 것으로 바꾸어 주시라고, 아니면 이 세상을 더 이해하기 쉽고 질서 있는 곳으로 만들어 주시라고 청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청하는 것은 다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라는 것입니다. 주님 뜻에 따라 살 수 있는 것도, 이 세상 안에서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오직 그 믿음에 의지할 때라는 것을 사도들은 알았던 것입니다.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그렇듯 그들도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실상 믿음이 없다면 도전 또한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과 아무 상관 없이 제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불의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믿음에 수반되는 갈등도 겪지 않겠지요. 걸려 넘어질 일도 없겠지요. 작은 믿음이나마 있기에 나 자신의, 그리고 이 세상의 현실과 믿음 사이에서 격차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스스로 믿음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것은 적어도 그 마음이 지향할 바를 인식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 이라는 주님의 응답은, 마치 믿음이 너무 작다고 책하시는 듯 보입니다. 말 한마디로 나무를 바다로 옮겨지게 할 수 없다면, 제자들이 아니면 제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겨자씨보다 더 작은 것인가요.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수긍합니다. 예, 주님. 제 믿음은 겨자씨보다도 더 작습니다. 이것이 지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조건임을 당신께서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1코린 13, 12) 볼 뿐이라는 것, 믿음이라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 (히브 11, 1) 이어서, 눈에 보이는 것에 흔들리는 저희의 믿음은 한없이 나약하기만 하다는 것, 다 아시지 않습니까. 인간을 진흙으로 빚어 만드신 분이 바로 당신이시기에, “우리의 됨됨이를 아시고 우리가 티끌이심을 기억” (시편 103, 14) 하시지 않으십니까. 주님,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이어서 예수님은, 주님께서 명하신 것을 우리가 다 했다 하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무엇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 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하여 우리에게 어떤 것을 명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완전하여 생기를 돋게 하고 주님의 법은 참되어 어수룩한 이를 슬기롭게 하네.  … 당신의 종도 이에 주의를 기울이니 이를 지키면 큰 상급을 받으리이다.” 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시편 19, 8. 12) 여기서 ‘상급’ 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본래 꼭 하느님께서 주시는 보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지킴으로써 얻게 되는 ‘이익, 유익’ 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충만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무엇을 받으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리고 주님께 ‘분부를 받은 대로’ 사는 것은 분명 우리에게 이 세상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이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게 하고, 또 세상의 눈에는 중요하게 생각되는 어떤 가치를 포기하게 합니다. 그것이 … 하느님을 위해서일까요 ? 하느님을 거슬러 살아가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 아닐까요 ? 이것이 너무 현세적인 사고방식처럼 보입니까 ?

성찰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믿음이 없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삶, 자신의 이익 외에는 추구할 것이 없는 삶이 얼마나 가련한 삶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기도
정녕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 당신을 아는 이들에게 당신의 자애를, 마음 바른 이들에게 당신의 의로움을 늘 베푸소서. (시편 36, 10 – 11)
안소근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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