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 묵상속세에서의 독신봉헌 생활은 가능한가?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03 조회수1,460 추천수25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31 주간 수요일 - 발목 잡는 집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목록으로 돌아갑니다.

 

원숭이가 많은 지역에서 원숭이를 잡는 방법은 단단히 매여 있는 둥근 통에 원숭이의 손이 들어가 먹이를 하나 간신히 꺼낼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 뚫고, 그 통 안에는 원숭이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를 많이 넣어둔다고 합니다.

원숭이가 둥근 통 가까이 와서 먹이 냄새를 맡고 구멍 안에 가득 들어있는 맛있는 먹이를 보고는 그 통 주변을 한없이 뱅뱅 돈다고 합니다. 다른 데는 볼 겨를도 없이 뱅뱅 돕니다. 그러다가 손을 그 구멍으로 넣어 적은 부스러기 먹이 하나를 꺼내서 입에 넣어 보고는 그만 환장을 합니다. 눈을 깜박거리면서 손을 깊숙이 넣어 손을 가지고 잡을 수 있는 만큼 먹이를 잡습니다. 그리고 손을 빼려니 손이 빠지지 않습니다. 원숭이는 왜 손이 통에서 빠지지 않는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원숭이는 손을 먹이통에 넣은 채 뱅글뱅글 돕니다. 덫을 놓았던 사람이 이것을 보고 걸렸다 생각하고 좇아오면 원숭이는 도망을 쳐야겠는데 손이 걸려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그냥 안타까워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이 원숭이가 도망칠 수 있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쉽지만 손에 잡고 있는 먹이를 포기하면 쉽게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원숭이는 그것을 하지 못해서 뱅뱅 돌다가 눈이 말똥말똥한 채로 잡히고 만다고 합니다. 결국 집착이 발목을 잡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복음전파를 위해 끊임없이 이동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몸이 가벼워야 합니다. 한 달 이상 성지순례를 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음엔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많이 챙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걷다가보면 아주 작은 무게도 크게 지장을 받기 때문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하나하나 버려나가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짐이 많이 준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 순례를 완주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다면 그 무게 때문에 예수님을 온전히 따를 수가 없게 됩니다.

 

신학교에 있으면서 또 사제가 되어서 성소의 길을 포기하는 많은 경우를 접했습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성소의 길에 들어설 때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지니고 있었던 것들이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자신이 가정을 살려야겠다고 옷을 벗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가족에 대한 애정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그것이 결국 발목을 잡게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물을 짓기 위해 공사를 시작해놓고 마치지 못하는, 다시 말해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어머니께서 찾아오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내 어머니요 형제들이다.”

결국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모든 것을 버리고 아버지를 따랐던 것처럼 어떤 집착에도 매이지 말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기 위해 버려야 할 것 중 가장 버리기 힘든 것이 사람의 애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워하라!’고까지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함께 나와 공부하는 어떤 신부님들은 어머니께서 홀로 한국에 계십니다. 어머니 생각을 하면 한국에 들어가 효도를 하고 싶지만 한국에도 못 들어가고 주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온전히 버리지 못하면 여기서 사는 것도 힘들고 한국에 계신 어머니도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온전히 버린다면 주님께서 어머니를 대신 잘 지켜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사랑하시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만큼 성모님을 사랑한 사람이 없고 성모님만큼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분들은 다만 아버지의 뜻을 위해 애정에 매이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 분들의 사랑을 끊지는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 안에서 더 깊은 사랑을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가지지 못한 자는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발목을 잡지 않으셨기 때문에 두 분은 하느님도 갖고 애정도 잃지 않게 되신 것입니다.

 

독수리가 아무리 힘이 좋아도 발에 실을 묶어 놓기만 하면 날 수 없습니다. 집착이 이런 것입니다. 무엇에 집착하면 그것도 가질 수 없지만 집착을 끊으면 모든 것을 갖게 됩니다. 사실 나 자신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집착들이 끌려오는 것입니다. 결국 갖지 못하는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모든 것을 버려 주님을 통하여 모든 것을 얻도록 해야겠습니다.

 

 

속세에서의 독신봉헌 생활은 가능한가?

 

같은 날 비슷한 처지의 두 분 자매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두 분 다 수도회 들어가는 것은 원하지 않지만, 세상에 살면서 봉헌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문제는 봉헌 생활이란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인데, 어쩔 수 없이 사회의 경쟁 안에서 살다보니 시험도 통과해야 하고 진급을 위해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들이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신 말씀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었고, 그래서 무기력감을 느낄 때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봉헌생활을 원하는 자매들에게는 수도회에 입회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합니다. 세상 속에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황에서 갈등을 겪기가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수도회가 좋은 것은 ‘서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정배로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는 혼인서약을 하기에 더 이상 다른 갈등은 겪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과 가족들 앞에서 혼인서약을 하고 부부로 사는 것과, 아무도 모르게 동거생활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선은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겠다고 서약할 수 있다면 속세와 봉헌생활 안에서 겪어야 하는 갈등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독서처럼 수도자가 될 마음도 없는데 억지로 들어가라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떤 삶을 택해야 하는 ‘의지 (원의)’나 그 선택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필립 2, 13)

따라서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수도 생활은 맞지 않는 것 같다.’라는 확신이 들면 세상 안에서도 충분히 봉헌생활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어쨌건 바오로 사도는 하늘나라를 위해 결혼하지 않는 것을 혼인하는 삶보다 더 낫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없는 여자와 처녀는 몸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혼인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나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1코린 7, 34-35)

예를 들면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는 혼자 살면서도, 또 수도자로서 공동생활을 하지 않는 평신도였음에도, 페스트와 교황의 아비뇽 유배로 혼란했던 시대에 세상의 등불처럼 사셨던 분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리스도의 정배로 혼인하지 않기로 결심하였고 이것은 부모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성적인 유혹과 생각이 들어서 극기로 그 유혹을 물리쳤고 그 갈등과 괴로움이 바로 자신 안에 이미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33세에 돌아가셨고 읽고 쓸 줄도 모르셨지만, 기도와 자선으로 이웃을 위해 헌신하였고, 프랑스 아비뇽에 계신 교황님이 로마로 되돌아오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고, 유럽의 주보성녀가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탑을 쌓거나 전쟁을 할 때 미리 끝까지 마칠 수 있는지, 혹은 애정이나 세상 것들을 당신보다 더 사랑하지는 않는지 먼저 잘 살피고 당신의 제자가 될 것을 권고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삶은 이렇게 힘든 것이기에, 끝까지 제대로만 산다면 혼인하여 속세에 얽매이는 것보다 훨씬 자유롭게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가면서도 자꾸 결혼생활에 시선이 간다면 결혼생활을 할 것을 권고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삶이 가장 힘든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에 좋은 원의를 넣어주시기를 빕니다. 또 여러분들 마음이 좋은 결심을 하기를 바라고, 그 의지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끝까지 이어가시기를 빕니다.

 

 

 

< 내 안에 사는 이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