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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를 살다: 예물 준비, 감사기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12 조회수6,329 추천수0

[전례를 살다] 예물 준비

 

 

보편 지향 기도를 바치는 것으로써 이제 말씀의 전례가 끝나면 예물 준비가 시작됩니다. 공동체로부터 빵과 포도주를 손에 든 행렬이 제단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빵과 포도주는 생활영역에서, 인간의 노동에서 생산되는 것입니다. 사실 거룩한 제물을 준비하는 데는 약간의 빵과 포도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서는 신자들이 예물로 많은 것을 희사했고 교회는 그것을 교회의 사업과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는데 사용했습니다. 

 

초세기의 예물 준비는 교우들이 빵과 포도주와 물을 가져오면 부제가 받아서 사제에게 주고, 사제는 그것을 제대에 놓고 바로 감사기도로 들어갔습니다. 4세기 무렵부터 교우들이 증가하면서 예물이 다양해지고 예물봉헌 행렬도 길어지게 되어, 긴 행렬 동안 가만히 있기 보다는 예물 봉헌에 알맞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중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예물은 기름, 초, 기타 자선 예물 등으로 더욱 다양해졌고, 11세기 이후 화폐제도가 발달하면서 예물 봉헌이 헌금으로 대체되어 간편해졌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예물 봉헌을 제물 봉헌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자연적 심리에다 미사의 제사적 의미를 강조하는 신학자들에 의해 예물 준비가 제물 봉헌 행사로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7세기에 이르러서는 교우들의 예물 자체가 제물, 제사 형식이 되고 명칭조차도 ‘봉헌 예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미사 중에 봉헌하는 본 제물은 교우들이 바치는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며, 이 제물은 감사기도 중에 십자가의 제물로 축성되어 봉헌됩니다. 그러므로 이 예식의 명칭은 ‘예물 준비’이지 ‘제물 봉헌’이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미사 통상문 예규(rubrica)는 ‘예물 준비 기도’라고 제목을 붙이고 “사제는 제대에 가서 빵이 담긴 성반을 조금 들어 올리고 기도한다.”고 지시하고 마찬가지로 성작을 두고 “사제는 성작을 조금 들어 올리고 기도한다.”고 지시합니다. 

 

사제는 교우들이 가져온 예물(빵과 포도주)을 받아 제대 위에 정중하게 놓고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는 기도를 바칩니다. 이 기도문은 우리가 하느님께 바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때 빵과 포도주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연의 혜택만을 의미하지 않고, 우리의 노동과 희생, 인간적인 허약이나 부족한 점까지도 포함한 우리 자신 전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전체를 상징합니다. 그 다음 사제는 초대교회에서 실제로 빵과 포도주, 기름 등을 받고 난 후 손을 씻었던 과정을 시대가 흐른 후 그 흔적을 영적인 의미로 재해석하는 정화의 기도를 바치고 마음을 깨끗이 하는 상징으로 손을 씻습니다. 

 

초세기에는 교우들이 자기 집에서 직접 예물을 가져와서 사제에게 바쳤기 때문에 그 많은 예물을 만진 사제는 손을 씻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깨끗한 성합이나 성반, 그리고 성작에 제병과 포도주를 담아오기 때문에 손을 씻을 필요가 없지만 몸과 마음을 깨끗이하여 성찬에 임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어 손 씻는 예절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때 바치는 기도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는 내적 정화를 청하는 시편25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으며 14세기경에 로마 전례에 들어 왔습니다. 이어 사제는 교우들을 향해 지금 바치는 이 예물이 하느님께 의합한 예물이 되도록 하자는 기도에로 초대를 하고 교우들의 화답이 있은 후, 예물 준비를 마감하며 동시에 곧 있을 성찬 전례를 준비하는 「예물기도」를 바칩니다. 

 

예물기도는 본기도와 성찬 후 기도(영성체 후 기도)와 더불어 주도자인 사제의 기도 중 하나입니다. 사제는 이 기도를 과거와는 달리 크게, 그리고 팔을 펼치고 바칩니다. 항상 되풀이 되는 이 기도의 내용은 우리의 예물과 기도들, 그리고 이와 함께 우리 자신의 제사도 받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축일에는 자주 그날의 신비를 일깨웁니다. 이상으로 본격적인 성찬식을 거행하기 위한 예물 준비는 끝납니다. 

 

감사기도 (I) 

 

유럽의 고딕양식 성당이나 바로크양식 성당에 들어가면 거기서 많은 제단을 보게 됩니다. 그중 중앙에 있는 제단은 다른 제단들보다 크고 장식도 잘되어 있습니다. 그 제단을 “중앙 제단”이라고 합니다. 신자들이 바치는 기도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믿는 이들은 하느님께 감사하거나 무엇을 청할 때 여러 가지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기도보다도 그 의미가 깊은 기도가 있습니다. 그 기도는 가장 중요한 예배인 미사성제 한가운데서 바쳐지는데 그것을 ‘감사기도’라고 부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를 ‘성찬기도’라고 불렀습니다. 

 

복음사가들 중에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즉 최후 만찬 때 당신 제자들과 함께 바치신 감사기도를 기록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감사기도의 형식과 표현은 단 한번 영구불변하게 고정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변화 될 수 있고 또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감사받으셔야 합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초세기나 10세기와는 다른 언어로 감사받으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는 새로이 감사기도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오는 감사기도가 많이 있고 또 다른 교회의 미사 기도에서 발견된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 기도에 종국적으로 관련되는 실제성, 인간이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함은 시대를 초월하여 이 세상 어디서나 똑같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제 감사기도를 좀 자세히 살피고 그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감사기도는 감사송 전에 사제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는 말로써 시작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마침 영광송 다음에 공동체가 “아멘!”하고 대답함으로써 끝납니다. 우선 신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감사기도는 집전자가 바치는 직무상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즉 주교나 사제가 직무상 바치는 기도입니다. 미사 전례가 사제의 임무라고 해서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권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불완전한 표현입니다. 물론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서는 사제가 절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점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제가 성체성사 제정의 말씀을 하기 전에 아버지께 이렇게 청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은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 성령을 통해서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사제는 미사 중에 감사의 기도를 하느님께 바치도록 위임받았습니다. 신학자들의 말과 같이 사제는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이를 행합니다. 또 미사경본 총지침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듯이 이 기도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회중을 이끄는 사제가 거룩한 백성 전체와 모든 참석자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다.”(미사경본 총지침 30항) 그러므로 사제는 직무상의 다른 기도와 마찬가지로 감사기도 역시 자신의 이름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이름으로, 공동체의 이름으로, 온 교회의 이름으로 바칩니다. 그래서 사제는 복수형으로 사용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우리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주님께 간청하나이다.” 그래서 사제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감사기도를 바칩니다. [월간빛, 2014년 3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전례를 살다] 감사기도 (II)

 

 

감사기도의 역사와 발전, 그리고 그 변천에 대해서는 엄청난 양의 지면이 필요하기에 여기서 살펴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감사기도 안에서의 변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꼭 알아두어야 할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부분이란 바로 최후만찬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행동에 관한 부분인 성찬 제정과 축성문 부분입니다. 미사에 대한 수많은 잘못된 편견과 오해, 오랜 세월에 걸쳐 신앙인의 삶을 일방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던 해석, 그리고 편협함과 일방적인 이해 등은 거의 모두 성찬 제정과 축성문에서 기인하였습니다. 

 

실제로 중세 중·후기에는 미사의 이해에 있어서 극단적인 폐해가 백성들 사이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습니다. 그 대부분이 감사기도가 중심을 이루는 성찬 전례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때 신자들이 거양성체에 맞추어 성당을 옮겨 다니기도 했습니다.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만 해도 사제가 등을 돌리고 미사를 집전하던 시절, 사제가 빵과 포도주 위에 성찬 제정 축성문을 발함으로써 성변화된 성체와 성혈을 들어 올리면 이때 복사는 종을 쳤습니다.(오늘날에도 이 풍습은 여전히 그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보여주는 이 거룩한 순간을 몇 번이나 보려고 이 성당, 저 성당을 찾아 다니기도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전례 언어인 라틴어 때문이기도 했지만 근본에 있어서는 미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마술적이고 미신적인 해석이 근저에 자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미사는 모든 것, 모든 이를 위한 마술지팡이였습니다. 미사 도중에 사람은 더 이상 늙지 않는다고 믿었으며, 연옥 영혼은 세상에서 자기를 위한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연옥의 단련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고 보았고, 임산부에게 미사는 원하는 착한 아이를 낳게 해주고, 심지어 미워하는 누군가를 없애 버리고 싶으면 그를 위해 위령미사를 봉헌하면 곧 죽을 것이라는 등의 해괴하고 그릇된 편견이 널리 퍼져 있기도 했습니다. 

 

거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미신과 마술적인 해석이 미사와 관련되어 있었고 미사를 가능한 모든 원의를 바칠 수 있는 그러면서 그 보답을 얻어 낼 수 있는 요술방망이도 만들었습니다. 미사의 효과를 일방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은 미사 한 대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알아듣게 했습니다. 미사예물을 많이 내면 낼수록, 미사를 지불하기 위해 기금을 유산으로 많이 남기면 남길수록 영혼이 보다 빨리 천국에 올라간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제 감사기도의 기원과 종류 및 특성, 구조와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감사기도의 기원 

 

감사기도의 기원은 예수께서 최후만찬 때에 빵과 잔을 들고 바치신 감사와 찬양의 기도에서 출발합니다. 감사기도는 사제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전 공동체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인데, 먼저 성부께 장엄한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하느님의 과거 구원 역사를 제시합니다. 이처럼 감사기도는 내용과 가치 등 모든 면에서 미사 전례의 중심과 절정을 이루는 장엄한 기도입니다. 미사 전례 총지침은 이 기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 기도는 감사와 축성의 기도이다. 사제는 백성에게 기도와 감사로 주님께 마음을 올리도록 초대하고 자신의 기도에 그들을 참여시켜 전 공동체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를 바친다. 이 기도의 뜻은 신자들이 이룬 회중 전체가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하느님의 위대하신 업적을 찬양하며 제사를 봉헌하는데 있다. 감사기도는 모두가 존경심을 가지고 침묵 가운데 들어야 한다.”(총지침 78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 쇄신과 이해에 따라 교회는 로마의 전통뿐 아니라 동방의 전통도 모두 중시하고 교회의 값진 유산인 귀중한 기도문을 현대에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종래의 「로마 전문」 외에 세 가지의 새로운 감사기도문을 도입하였습니다. 

 

현재 사용되는 네 가지 감사기도문의 공통되는 본질적인 요소는 감사(대화와 감사송), 환호(거룩하시도다), 연결기도, 축성기원 성령 청원기도(Epiclesis), 성찬 제정과 축성문, 기념 환호(신앙의 신비여), 기념과 봉헌, 일치기원 성령 청원기도, 전구, 마침 영광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감사기도는 예수님의 인격을 따라 바치는 대사제의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감사기도는 본성상 오직 사제 홀로 바치도록 되어 있고, 신자들은 믿음 안에서 침묵을 지키며 감사기도에 규정되어 있는 참여를 통하여 사제와 일치하여 기도를 바칩니다. 신자들의 참여 부분은 감사송 대화에서 응답, 거룩하시도다, 축성 다음의 환호, 마침 영광송 다음의 아멘 환호입니다.

 

감사기도의 양식을 살펴보면, 현행 로마 전례의 감사기도에는 네 가지 양식이 있는데, 제1양식은 1,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로마 전문(典文)이고, 다른 2 · 3 · 4양식은 1968년에 도입된 새 감사 기도입니다. 

 

제1양식 : 이 양식은 로마 전문(Canon Romanum)이란 명칭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오늘날에도 로마 미사 전례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양식은 감사기도의 특징인 감사와 찬양의 요소가 빈약하고, 미사의 식사 특성을 잘 드러나지 못하는 반면, 제사 성격이 매우 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쉽게도 거룩한 변화의 주체이신 성령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감사기도 자체가 하느님을 찬미, 감사드리는 기도인데 이 전문(典文)에는 그보다 청원의 내용이 많으며 구조도 복잡합니다. 그렇더라도 제1양식은 항상 사용이 가능하며 특히 주님 대축일(성탄, 부활, 승천, 성령 강림 대축일)에 사용하도록 권장합니다. 

 

제2양식 : 가장 널리 애용되는 이 양식은 3세기의 히폴리투스 감사기도를 모범으로 삼아 만든 것이라 흔히 ‘히폴리투스 양식’이라고 합니다. 이 양식은 제1양식의 결점을 보완하여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에 대한 기념과 찬양을 강화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이나 특별 축일이 아닌 연중 평일이나 특수한 환경에 적합한 기도입니다. 보통으로 사제들은 이 양식을 선호하는데, 이유는 네 양식 가운데 가장 짧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상당히 어려운 내용이 많습니다. 

 

제3양식 : 이 양식은 현대의 신학자들이 제1양식의 특징을 살리면서 동시에 제1양식의 결점과 부족한 점을 보충하여 로마 전례의 감사기도로 완성시킨 양식입니다. 제사와 봉헌의 요소를 많이 표현하는 로마 전문의 내용을 담으면서도 감사기도에 필수적인 식사 의미도 강화했습니다. 이 양식은 고유감사송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감사송과도 함께 사용할 수 있으며, 단순하고 쉬운 내용 때문에 신자들에게 잘 맞는 사목적인 양식으로 특히 주일, 축일, 성인 기념일 등에 사용하기를 권합니다. 

 

제4양식 : 이 양식은 동방 교회의 전례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생긴 전통을 이어 받은 바실리오의 감사기도를 문장과 표현에 있어 서방 교회에 맞게 정리한 감사기도입니다. 구세사가 잘 정리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 그리스도의 신비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서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서 피정이나 소공동체 미사전례에 적합합니다. 

 

사제들은 이들 네 가지 감사기도의 특징과 의미를 잘 새겨 가급적 여러 양식을 골고루 사용하는 것이 기도나 사목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월간빛, 2014년 4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전례를 살다] 감사기도 (III)

 

 

감사송 : 시작 대화, 감사송, 거룩하시도다 

 

감사기도는 먼저 사제와 신자들과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마음을 드높이” 등의 세 차례 대화로 시작합니다. 이 대화는 신자들로 하여금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심을 다시금 확인하고 미사 중에 다소 흐트러진 마음을 주님을 향하여 들어 높이며 찬양과 감사의 마음으로 감사기도를 바치도록 인도합니다. 교회는 신자들이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소망을 하느님께 바칠 때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께 감사하기를 가르칩니다. 감사는 자신이 선물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이따금씩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 기도의 첫 번째 주요 부분인 감사송에서 우리가 왜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지 그 내용을 알게 됩니다. 

 

모든 감사송은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도입 부분과 ‘거룩하시도다’에로의 인도 부분은 모든 감사송에서 거의 동일합니다. 매번 다른 중간 부분은 그때그때 미사에서 특별히 감사하는 구원업적에 대한 찬양들을 표현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구원행위를 선포하는 데 있습니다. 감사송에서 주요한 주제는 우리 인간을 도와주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활동입니다. 특히 성모 마리아를 위시한 성인 감사송에서는 그들의 삶 안에서 일으키셨던 하느님의 손길, 그분의 움직이심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현행 로마 미사경본은 85개의 다양한 감사송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 청원(축성 기원)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몸과 피로 변하려면 성령의 힘이 필요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빵과 포도주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바로 이러한 성령의 축성을 기원하는 중요한 기도입니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제2양식) “이 예물을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제3양식) 이 기도를 바치면서 사제는 빵과 포도주 잔에 안수하며 십자표를 긋는데, 이것은 성령의 강림과 축성을 기원하는 동작입니다. 하느님은 성령을 통하여 변화의 기적을 완성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이해된 축성 기원은 ‘인간의 행위나 또는 능력이 성찬의 예식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같은 모든 주술적인 혐의’를 없애줍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사제직무의 변화 권한”이란 말을 크게 제한시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하게 하는 능력인 성령을 보내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사제는 직무를 통해서 말하는 감사기도 안에서 신적 권능의 일을 위한 전제 조건만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서방교회 신학은 성변화는 성찬 축성문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견해를 대변했는데 비해, 동방의 견해는 “…당신 성령을 통하여 이 예물을 변화시켜 주소서.”라는 축성 기원에 두었습니다. 두 견해가 지난날 오랜 세월에 걸쳐 논쟁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새로운 감사기도 신학에 두 견해를 모두 포함함으로써 서방교회 안에서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성찬 제정과 축성문 

 

성찬 제정 및 축성문은 최후만찬 때 예수께서 빵과 잔을 들고 하신 말씀으로, 성체성사의 기원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감사기도의 핵심 부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만찬 때에 몸소 제정하신 제사는 당신의 말씀과 행위로 이루어진다.”고 미사경본 총지침은 가르칩니다.(79항ㄹ) 사제는 그 직무를 통하여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반복하며, 이로써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축성되어 거룩하고 흠 없는 제물로 봉헌되며 그리스도인에게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따라서 성찬제정과 축성문은 감사 기도뿐 아니라 미사 전체의 핵심이며 절정을 이룹니다. 이에 사제는 축성 후 허리를 약간 굽힙니다. 그리고 성체와 성혈 축성이 끝날 때마다 매번 성체와 성혈을 거양하여 신자들에게 보입니다.(1200년경 도입) 이어 사제는 옛 로마 전문에서 찾아내었던 “신앙의 신비”라는 말로 환호를 인도하고 공동체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하고 응답합니다. 코린토 1서 11장 26절에 따르는 이 본문으로 공동체는 감사를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위대한 구원업적 곧 파스카 신비를 찬양합니다. 로마 미사경본은 이 기념 환호 본문 외에 두 가지 다른 선택양식을 제시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나이다.” “십자가와 부활로 저희를 구원하신 주님, 길이 영광 받으소서.”

 

 

기념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나 사건을 잊지 않고 항상 생각하게끔 기억을 일깨우는 일은 중요합니다. 미사 전체가 기념 행위지만 교회는 특별히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이 기도를 바칩니다. “아버지, 저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며 ….” 기념의 핵심 내용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며(제2양식) 주님의 승천과 재림(제1·3·4 양식)이 덧붙여지기도 합니다.

 

 

봉헌 

 

새 미사경본은 사제만이 그리스도의 제물을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와 함께 성찬례에 참여한 공동체 모든 신자들이 제물을 봉헌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봉헌하나이다. 이는 주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제사이며 세상에 구원을 주는 제사이옵니다.”(제4양식) 제3양식에는 이 점이 정확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주님, 교회가 바치는 이 제사를 굽어보소서. 이는 주님 뜻에 맞갖은 희생 제물이오니 너그러이 받아들이시어….” 우리가 바치는 제물은 마지막 순간까지 헌신적 사랑으로 인간에게 봉사하시고 자신을 희생하신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미사경본 총지침은 “교회, 특히 지금 한자리에 모인 공동체는 이 기념제로 흠 없는 제물을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봉헌한다.”(79항ㅂ)고 가르치며 이를 감사기도 제2양식에서는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봉헌하나이다.”로, 제3양식에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봉헌하나이다.”라고 표현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부활의 영광으로 건너간 주님의 파스카 기념 의식을 함께 지냄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사 봉헌이 이루어지며 우리 또한 자신을 봉헌하는 제사를 바칩니다. 여기서 미사의 제사성이 드러납니다. 

 

다음호에서는 ‘미사의 제사성’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공부해봅시다. [월간빛, 2014년 5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전례를 살다] 감사기도 (IV)

 

 

미사의 제사성 

 

이 기회에 우리는 미사의 제사성과 관련하여 제사의 본뜻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미사를 가리켜 제사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먼저 제사의 참된 의미부터 밝혀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의미하는 말로 라틴어 사크리피치움(Sacrificium, 희생)이 있는데, 이 말에는 세상의 어떤 물건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그것을 아주 없애 버린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가장 원초적(原初的) 제사로 보이는 번제(燔祭)에서는 제물로 바친 짐승이나 음식을 완전히 태워 없애 버리고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제사 개념은 네 단계에 걸쳐 발전했습니다. 첫째, 족장시대에는 제사 때 신(神)에게 직접 음식을 제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판관기의 “신들과 사람들을 흥겹게 해 주는 포도주”(9,13)라는 표현은 신에게도 술을 드릴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알려줍니다. 시편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나타납니다. “나는 네 집에 있는 수소도, 네 우리에 있는 숫염소도 받지 않는다. … 내가 황소의 고기를 먹고 숫염소의 피를 마시기라도 한단 말이냐?”(50,9.13) 

 

두 번째 단계로 정신화 된 제사 개념입니다. 곧 신은 제물을 직접 먹고 마시지 않지만 번제단의 냄새를 맡고 흐뭇해 하며 제사를 기쁘게 받아 들인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향기로운 제사”란 표현이 그것입니다. 창세기의 “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8,21)라는 표현이나 레위기의 “너희가 바치는 향기도 맡지 않겠다.”(26,31)와 같은 표현들은 이 같은 개념을 반영합니다. 

 

셋째 단계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에는 물질적인 제사를 바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이른바 ‘찬미’의 제사 개념이 나타납니다. 특히 회당에서 바치는 아침 예배와 저녁 예배는 찬미의 제사였습니다. 

 

이런 제사 개념을 시편 141장 2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의 기도 당신 면전의 분향으로 여기시고 저의 손 들어 올리니 저녁 제물로 여겨 주소서.”,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당신의 찬양을 널리 전하오리다.”(51,17)에서도 그 개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신약의 히브리서는 바로 이런 사상을 받아들여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칩시다.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13,15-16)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완전히 정신화 된 제사 개념이 나타납니다. 곧 “감사하는 마음”, “찢어지고 터진 마음”이 바로 제물로 간주됩니다. 구성경 시편 50장 23절에서 이런 제사 개념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제물로 바치는 자, 나를 높이 받드는 자이니, 올바르게 사는 자에게 내가 하느님의 구원을 보여 주리라.”, 시편 51장 19절에서 20절의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 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호의로 시온에 선을 베푸시어 예루살렘의 성을 쌓아 주소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성부께 바치신 제물도 그 찢어지고 터진 성심이었습니다. 집회서는 고도로 정신화 된 제사 개념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제물을 많이 바치는 것이고, 계명에 충실한 것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은혜를 갚는 것이 고운 곡식 제물을 바치는 것이고, 자선을 베푸는 것이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악을 멀리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고, 불의를 멀리하는 것은 속죄하는 것이다. 주님 앞에 빈손으로 나타나지 마라.”(35,1-6)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제사는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제사는 단순히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만이 아니고 출생과 공생활(公生活), 수난, 죽음, 부활을 포함하는 그의 전 생애(全生涯)를 하느님께 바치신 것을 의미합니다. 

 

미사는 이러한 의미에서 제사이며 또 제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사를 바친다고 할 때 우리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분과 함께 우리 자신의 전 생활(全生活)을 하느님께 바치고 그분을 위해 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으시고 온전히 바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 자신의 삶을 온전히 희생하며 바칠 때 우리의 제사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제물은 단순한 헌금이나 미사예물만이 아니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포기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제물이 됩니다. 히브리서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일을 ‘찬미의 제사’라고 불렀으며 선한 일을 하고 서로 사귀고 돕는 일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이라고 가르치듯이 우리가 미사 때 바치는 빵과 포도주는 그것 자체만으로는 제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표시하는 빵과 포도주와 결합할 때 비로소 그 빵과 포도주는 합당한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거룩하고 산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자신을 남김없이 하느님 뜻에 맡기고, 하느님과 이웃 사랑 안에서 자기 삶의 십자가를 지고 가며, 그리스도의 자기 헌신을 배워 사는 일입니다.(참조. 에페 4,22-24) 우리나라에서는 조상숭배 사상이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제사라고 하면 자꾸만 좁은 의미로 이해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미사의 제사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미사를 제사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조상숭배를 위한 제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미사를 지낼 때 예수께서 세우신 미사의 본 의미를 생각해야 하며 결코 죽은 이를 위한 기도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오해를 씻어야 하겠습니다.

 

 

전구(轉求) 

 

전구란 개인이나 공동체가 다른 사람이나 단체를 위하여 바치는 기도를 말합니다. 미사 중에 믿는 이들은 이미 보편지향기도에서 전구를 바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전구를 바치는 이유는 이 간청들은 전체 공동체와 성찬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보다 깊은 내적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 기도의 일반 규정인 “그리스도인은 깊이 신뢰하는 간청을 하느님께 향하지도 않으면서, 더 나아가서 그분의 도우심에 의존하지도 않으면서 긴 감사의 기도를 하느님께 올릴 수는 없다. 따라오는 간청이 없는 감사기도는 단지 하나의 의무를 해치운 것처럼 교만한 마음을 생기게 할 수 있다.”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전구자로서 성부 곁에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제는 항상 성부 곁에서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는 그리스도의 직무를 대리하는 대리자입니다. 감사기도 안에 있는 전구들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전구에 교회가 참여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거행하는 제사는 그리스도의 제사이듯이 교회의 전구도 그리스도의 전구인 것입니다. 미사는 인류 구원의 제사이자 일치와 사랑의 잔치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뢰의 마음으로 구원에 초대받은 교회 자신을 비롯하여 모든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성인 성녀들의 도움을 간청합니다. “주님,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교회를 생각하시어, 교황 ( )와 저희 주교 ( )와(과)….” 모든 산 이와 죽은 이를 함께 기억합니다.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제2양식) “세상을 떠난 교우들과 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떠난 이들을….”(제3양식) 유의할 것은 이때 주례 사제가 서품, 세례, 견진 등 예식 미사와 장례미사와 같이 죽은 이를 위해 마련된 별도의 기도문을 외지 않을 때는 개별적으로 받은 미사 지향자의 단체나 개인 이름을 거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굳이 그들을 거명하려면 보편 지향 기도 때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침 영광송 

 

감사기도 마지막에 바치는 영광송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를 마침 영광송이라 부릅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유다인들의 기도 관습을 본 받아 주요기도 끝에는 흔히 영광송을 바치곤 했습니다. 미사의 감사기도는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기념하고 재현하면서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기도입니다. 그래서 감사송으로 시작하여 영광송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으로 하나되어 성부께 영광을 드리는 형식의 이 영광송은 가장 오래된 영광송 형식의 하나입니다. 공동체는 이러한 영광송뿐 아니라 감사기도 전체에 동의하며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마음으로 “아멘.”하고 성대하게 환호합니다. 공동체가 외치는 ‘아멘.’은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이 ‘아멘.’ 또한 가장 중요한 환호이자 노래입니다. 

 

[월간빛, 2014년 6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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