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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3-11 조회수1,270 추천수2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3월 11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Can the wedding guests mourn
as long as the bridegroom is with them?
The days will come
when the bridegroom is taken away from them,
and then they will fast.”
(Mt.9,15)
 
제1독서 이사야 58,1-9ㄴ
복음 마태오 9,14-15
 
한 형제님께서 회사 직원 회식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동료 여직원이 너무 많이 취한 것입니다. 마침 술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과음한 여직원을 자기 차에 태워 집까지 바래다주었지요. 물론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 사실을 아내가 알면 오해를 하지 않을까 싶어 아내에게 다른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고 회식 후 곧바로 온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는데 아내가 앉아있는 조수석 밑에 하이힐 한 짝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아차 싶었지요. 이 하이힐을 보게 되면 아내가 얼마나 바가지를 긁을지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주위를 다른 데로 돌린 뒤, 그 신발을 운전석 창밖으로 얼른 집어던졌습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신의 순발력에 감탄을 하는 순간, 극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던 아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보, 내 구두 한 짝 못 봤어요?”

창밖으로 집어던진 구두는 누구의 것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과음했던 회사 여직원 것이 아닌, 바로 아내의 구두였던 것이지요.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또한 솔직했더라면 이런 실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너무 앞서 생각하는 과민반응으로 인해 실수를 했던 것이지요.

평소 신중하지도 솔직하지도 못한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신중하지도 못하고 솔직하지 못한 모습들은 또 다른 잘못들을 일으킵니다. 다른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는 실수, 그리고 거짓을 통해서라도 윗자리에 오르려는 욕심을 간직하게 만듭니다. 이런 모습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지요. 주님께서는 늘 기도하시면서 가장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을 행하셨습니다. 또한 언제나 진실한 모습이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 당연히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겠지만, 우리의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잘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사실 바리사이들과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의 단식은 좀 야단스러웠습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물론 포도주와 물도 마셔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친 삼베옷을 입고 땅바닥에 앉아 옷을 찢고 먼지나 재를 머리에 뿌리며 통곡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들은 국가적인 재앙을 당했을 때, 또는 어떤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기 위한 행동이어야만 합니다.

즉, 이들은 보이기 위한 행동으로서 단식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중하게 예수님을 알려하지 않았고,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심으로 인해 솔직함도 잃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의미로 단식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바로 하느님 뜻을 세우기 위한 단식만이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얼마나 신중하게 살았는지를, 그리고 내가 아닌 주님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말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단식할 때만이 진정한 단식이 될 것입니다.

 

인생은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창조하는 것이다(조지 버나드쇼).




폭풍의 봉(‘행복한 동행’ 중에서)

희망봉은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에 위치한 케이프 반도, 그 끄트머리에 있는 암석곶의 이름이다. 1488년, 포르투갈인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유럽인 최초로 희망봉을 발견했을 당시 이곳의 이름은 ‘폭풍의 봉’이었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이라 항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도와 소용돌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 남단을 밟기 전, 수많은 유럽인들이 탄 배가 상륙을 시도하다가 암초와 폭풍에 막혀 좌초되거나 파선했다. 그만큼 그곳을 지나는 것은 목숨 건 모험이었지만, 폭풍의 봉은 당시 최대의 무역국이던 인도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고국으로 돌아간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국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암초투성이에 폭풍이 거세 매우 위험합니다. 그곳은 폭풍의 봉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절망의 지점입니다.”

그 말을 들은 포르투갈 국왕 주앙 2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위험하단 말인가? 하지만 그곳을 ‘폭풍의 봉’이라 부르면 어느 누가 그곳을 지나 인도로 가려 하겠느냐. 다행히 자네가 이미 그곳에 발을 디뎌 큰 점을 찍었으니, 우리에겐 이미 인도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그곳을 절망과 죽음이 가득한 ‘폭풍의 봉’이 아닌 ‘희망봉’이라 명명한다.”

그 뒤로 인도로 향하던 수많은 항해자들이 희망봉을 지나 위험천만한 항해를 완수했다. 희망봉 앞바다는 여전히 높은 파도와 폭풍이 몰아쳤지만, 그 이름처럼 이 지점만 지나면 잔잔한 바다가 나타나리라는 희망을 품고 죽음의 바다를 건너간 것이다.
 

 
 
어느 맑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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