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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부활한 우리들" - 4.2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24 조회수520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4.24 예수 부활 대축일

사도10,34ㄱ.37ㄴ-43 콜로3,1-4 요한20,1-9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부활한 우리들"

 

 

 

우리는 방금 화답송 후렴을 통해

주님 부활의 기쁨을 흥겹게 노래했습니다.

 

“이날이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 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알렐루야,

우리 예수님 하느님의 생명과 빛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겸손하신 예수님(성목요일)’을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성금요일)’을

 

하느님께서는

마침내 예수님을 부활시키시어 당신 오른 쪽에 앉히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부활 성야 미사 중

온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했습니다.

 

며칠 전

성삼일 늦게 서야 고백성사를 본 어느 자매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은 처음이에요.

  배나무들 터널 사이에

  초록빛 풀들이 꼭 자라나는 보리들 같아 너무 예뻐요.”

 

생명의 초록빛 풀들보다 더 예쁜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 부활 은총과 함께 만개한 온갖 부활의 봄꽃들입니다.

만일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봄꽃들은 영영 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지난 부활 새벽 다시 한 번 주님 부활을 체험했습니다.

마침 일찍 눈이 떠져 일어나니

동편에 빛나는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고

저도 모르게 오늘 복음의 두 제자들처럼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수도원 정문 쪽을 향해 달렸습니다.

 

사실 옛 수도승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듯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고자 새벽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마침 오늘

복음의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주님의 무덤을 방문한

마리아 막달레나가 생각났고

얼마 전 부활 편지의 그림도 생각났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두 제자가

빈 무덤의 소식을 듣고 숨차게 달려가는 참 인상적인 장면의 그림입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이 참 심오합니다.

 

주간 첫날 동터오기 직전의 이른 아침은

아직 주님 수난이후 계속된 혼돈의 어둠을 상징합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 짙은 어둠이 감돌던 모습의 재현입니다.

창세기 서두 장면을 연상하게 됩니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위를 감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창세1,2-4ㄱ).

 

바로 맨 먼저 혼돈의 어둠 안에 빛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주간 첫 날 새벽에 빛으로 부활시키셨습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재창조입니다.

요한 사도는 이 감격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왔다.”(요한1,9).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참 빛으로 부활시키셨습니다.

 

어제 빛의 예식 중 ‘그리스도 우리의 빛’ 이란 환호는

그대로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만일 우리의 빛인 그리스도가 없다면

마치 태양 없는 세상처럼 세상은, 우리 마음은 온통 암흑일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빛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합니다.

주님을 사랑했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뭔가 주님 부활의 빛을 감지했기에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주님 무덤을 찾았습니다.

주님 무덤을 향해 숨차게 달려오던 두 제자들 역시

뭔가 짚이는 점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두 제자의 달리는 모습은 그대로 주님 향한 사랑덩어리 같습니다.

빈 무덤의 장면이 심상치 않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대로 주님 부활의 표징입니다.

이를 보자마자 즉시 주님 부활을 깨달은 사람은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한 애제자였음을 다음 묘사가 분명히 합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주님의 애제자는 빈 무덤을 보는 순간 전광석화(電光石火),

즉시 주님 부활을 깨달았고 믿었습니다.

‘봄(見)-깨달음(覺)-믿음(信)’이 동시적으로 발생했음을 봅니다.

 

누구에게나 자명한 주님부활체험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한 이들에게 계시되는 부활 체험임을 깨닫습니다.

 

고맙게도 주님을 사랑한 우리들 역시

지난 부활 성야미사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주님과 함께 부활했고

지금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부활 대축일 감사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합시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 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맙시다.

 

모름지기 주님과 함께 부활한 이들이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우리는 이미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공동체에 속한

주님 부활을 체험한 우리 모두에 해당하는 참 심오한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이게 우리 생명의 심오한 비밀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느님 없이는

우리 생명의, 정체성의 비밀은 영원히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얼마나 고마운 말씀인지요.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빛이자 동시에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 없이는 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살 때

생명과 빛으로 충만한 삶에 참 나의 실현이지만

그리스도가 사라지면 나에게서 빛도 생명도 사라집니다.

살아있으나 실상 죽어있는 삶입니다.

 

 

어제의 부활 성야 미사 시 묵상을 다시 나눕니다.

1독서 창세기 한 구절과

마지막 바오로 서간 로마서 한 구절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창세1,27ㄴ).

 

“이와 같이 여러분 자신도 죄에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바로 이 거룩한 부활 대축일 미사를 통해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우리 모두 더욱 하느님의 모습을 닮게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힘차게 살아가게 합니다.

 

이게 우리 인생의 모두입니다.

 

이 거룩한 부활 대축일 미사를 통해

부활하신 주님은 당신의 말씀과 성체를 모시는 우리 모두를

당신의 생명과 빛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하느님을 위한 복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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