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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존중 - 도반 홍성남 마태오 신부님
작성자최유미 쪽지 캡슐 작성일2011-05-31 조회수530 추천수9 반대(0) 신고

청소년주일학교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한 아이가 교사에게 질문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주님을 죽인 도시인데 왜 지금까지 멸망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을까요?

사실 예루살렘은 주님을 버리고 죽인 도시입니다.

그런데도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가서 예수님을 죽인

예루살렘의 후손들을 먹여 살리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허용하고 계십니다.

왜 이런 일이?

교리교사가 명답을 하였습니다.

주님이 입성하실 때 너무나도 환대했던 예루살렘 조상들 덕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혹시 귀한 손님이 올 때 자기 양복을 벗어서 마당에 깔아놓는 분 계신가요?

손님이 의자에 앉을 때 자기 옷을 깔아드리는 분 계신가요?

아무리 귀한 손님이 오신다고 하더라도 그럴 사람은 없지요.

그런데 예수님 당대의 예루살렘 주민들은 실제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서 나귀 등에 걸치고

주님을 거기에 올라타게 했다고 하고 또 겉옷을 벗어서 길에다 깔았다고 합니다.

마치 왕이 입성하는 그런 장면을 연출한 것입니다.


이들에게 겉옷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겉옷은 둘러 입고 다니는 것임과 동시에 잘 때는 덮고 자는 생활필수품이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것을 주님이 사용하도록 내어놓았다는 것을 보면 

이들이 주님께 가진 마음이 어떠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주님을 최상으로 존중해드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수많은 죄와 업보를 지으며 살고 있는데도

조상 덕에 하느님께 용서받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속상한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속상함은 두 가지에서 나옵니다.

하나는 일이 되지 않아 속상한 것,

다른 하나는 사람으로 인하여 속상한 것이지요.

이 둘 중에서

사람으로 인한 속상함이 가장 오래 가고 힘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어떤 경우에 사람으로 인하여 마음이 상하는가?

여러 경우 중에서 사람의 마음을 가장 상하게 하는 것은

무시당하는 경우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경험을 많이 해보셨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옷을 사러 가게에 갔는데 넘 비싸서 사지는 못하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더니

점원이 말하기를 아주머니 행색으로는 그 옷 못 사 입어요 하더랍니다.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부아가 터지는지 그만 자기도 모르게 카드를 확 긋고

주인에게 한 마디 했답니다.

저 따위 점원을 두고 장사하면 나중에 쫄딱 망할 거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후회막급했다는 이야기인데 사실은 상술에 넘어간 것이지요.

이 분뿐만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무시당했을 때 가장 마음이 상합니다.

왜 이렇게 우리는 무시당했을 때 기분이 상하는 것인가?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져야 하는 감정이 존중이라고 합니다.

부모로부터 내 이쁜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존감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이 존중감은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아주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나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사람에게는 홀라당 빠지지만

나를 무시하는 사람은 죽이고 싶도록 미운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도 예외가 아니셨습니다.

당신을 존중해주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기적을 베푸셨고

당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기적도 주지 않으셨다고 하지요.

이만큼 존중은 일상인이건 신앙인이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존중해드려야 하는가?

무당들이 자기 신을 모시는 것만큼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무당들은 먹을 것이 생기면 가장 좋은 것을 제상에 올린다고 합니다.

돈이 생겨도 제상에 먼저 가장 빳빳한 돈으로 올린다고 합니다.

한 번은 북한산에 갔는데 무당이 굿을 하고 있더군요.

무슨 굿이냐고 했더니 그냥 자기가 모시는 신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굿이라고 하더군요.

이 정도 신앙생활만 해도 주님이 감복하지 않으실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썰렁한 야그 하나

어떤 본당에 아주 성질 고약한 신부가 부임해왔습니다.

얼마나 성질이 고약한지

그 신부 앞에서는 신자들이 고양이 앞의 쥐처럼 달달 떨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신부가 떠나기를 학수고대하던 신자들은 그 신부가 떠나자마자

잔칫상을 벌려서 실컷 먹고 마시다가 탈이 난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답니다.

그런데 새로 간 본당에 못지않게 성질 고약한 신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신자는 오는 신부들에게 다 시비를 걸고 트집을 잡아서 일년 이상 살지 못하고

떠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내가 쫓아낸 신부가 몇 명이야 떠벌이고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둘이 만나게 되었으니 옆에 있는 사람들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면서

누가 이길까 내기를 걸었다고 합니다.

성질 고약한 신자가 본당신부를 어떻게 골탕을 먹일까 궁리하다가

옳지 성목요일에 골탕을 먹여야지 하고는 세족례 대상자 명단에서

다른 사람 이름을 지워버리고 자기 이름을 올렸답니다.

본당신부가 선정한 명단을 우격다짐으로 바꾼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본당신부가 노발대발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는 것을 보면서

종이호랑이라고 놀렸습니다.

그런데 고약한 신자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내 이 참에 본당신부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리라

생각하고는 세족례가 있는 날까지 며칠 동안 발을 씻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세족례날.

고약한 신부는 고약한 신자의 벗은 발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좀에 걸린 데다 씻지 않아 발은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신자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신부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았고 심지어는 그 장면을 보기 위해

전 본당에서 온 신자들도 우글우글하였답니다.

그런데 노발대발할 줄 알았던 신부는 잠깐 얼굴을 찡그리더니 아주 얌전하게

그 신자의 발을 박박 닦아주더랍니다.

그 순간 그 고약한 신자가 이길 거라고 내기를 걸었던 많은 신자들이 속으로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돈 벌었다 하고...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발을 다 씻겨준 신부가 비누로 손을 닦거나 물로 씻을 생각조차 않고

그냥 그대로 미사를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래에서는 설마 저 손으로 미사를 하지는 않겠지 하고 복사를 시켜서

물을 가져다 드리라고 했는데 신부는 물을 흘깃 보더니 그냥 바닥에 버리고는

그 손으로 그냥 미사를 집전하고는 그 손으로 신자들에게 특히 고약한 신자에게

제일 먼저 성체를 주더랍니다.

고약한 신자가 저는 오늘 성체를 영하기 어렵습니다 하였더니

신부는 큰 소리로 아니 대죄를 지은 사람이 세족례는 왜 나왔단 말이요 하고 바락바락 소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땟구정물이 줄줄 흐르는 신부의 손에서 성체를 영하였는데

이 신부는 자기가 떠나는 날까지 손을 씻지 않아서 손무좀에 걸렸는데도

그냥 성체를 신자들에게 영해 주어서 신자분들이 모두 혓바닥무좀에 걸렸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삶의 이치는 간단합니다.

존중해주면 존중받고 무시하면 무시당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존중해드리면 존중받고

무시하면 무시당하는 것이 신앙의 법칙인 것입니다.


평화 신문 상담코너 '아 어쩌나'/ 평화 방송 '행복한 신앙'

책[벗어야 산다] 외 다수

상담 카페 도반 http://cafe.daum.net/withdoban 주일미사 강론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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