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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끝까지 견디는 이-반영억신부-(마태오 10,16-23 )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08 조회수450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1 7 8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다.
(마태오 10,16-23 )

 

 요셉은 자신을 이집트로 팔아넘긴 형제들과 화해한다. 이스라엘의 온 가족이 새로운 터전인 이집트로 간다. 이때 하느님께서 야곱을 부르시고, 큰 민족을 만들어서 다시 데리고 올라오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요셉은 아버지 이스라엘을 만나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이름 때문에 제자들이 박해를 받을 것을 예고하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총독들과 임금들에게 끌려가더라도 무엇을 말할지 아버지의 영께서 일러 주시리라고 말씀하신다. 박해를 견디고 이겨 낼 수 있는 힘은 주님에게서 나온다(복음). 

 

☆☆☆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박해 때가 아니지만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이 귀찮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믿음이 발목을 잡아 일상이 힘들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남들은 놀고 있는데 성당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하소연입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변명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라고 하십니다. 신앙 때문에 손해 보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믿음의 길을 무겁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한 번만 봐 주셔도 우리 인생은 얼마나 달라질는지요? 결코 독선의 하느님은 아니십니다. 좋은 결론으로 이끌어 줄 분이십니다. 그러니 언제라도 조용히 주님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그분의 영은 그분의 입니다. 주님의 힘이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시면 우리의 삶은 바뀝니다. 어떤 경우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하느님의 힘을 느끼는 것이 신앙생활의 열쇠입니다. 믿음이 힘겨운 것은 그분의 영을 깨닫지 못한 탓입니다. 걱정 속에서도 걱정 없는 듯이기도하면 그렇게 이루어 주십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두려움 없는 듯이믿으면 주님의 영께서는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걱정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텔레비전과 신문은 연일 살기 힘든 세상을 전해 줍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실 마음 졸이고 안달한다고 내일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힘든 미래가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저만치 내리는 비를 미리 뛰어가서 맞을 이유는 없습니다.
예전에는 의식주에 관한 걱정이 많았습니다. 먹고 입고 잠자는 걱정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 걱정의 질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삶의 폭이 넓어진 만큼 걱정도 다양해졌습니다. 그러기에 능력 밖의 걱정거리가 생겨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근심거리를 만나기도 합니다.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신께 철저하게 맡기며 살라는 뜻입니다. 미리 대비한다고 두려움이 없어지는 세상도 아닙니다. 주님의 보호를 느껴야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걱정도 습관입니다. 습관이 굳어지면 작은 걱정이 어느새 큰 걱정으로 바뀝니다.
순교자들은 모든 것을 포기했기에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처지로 몰렸기에 자유로웠습니다. 지금은 박해 시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순교의 삶을 살 수는 있습니다. 맡기는 생활의 훈련입니다. 작은 걱정부터 맡기는 실습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

  -반영억신부-

이탈리아의 폼페이는 아름다운 공공의 건물과 화려한 개인의 집들이 있었으며 산니티와의 전쟁도 치렀던 곳으로 로마의 속국이 되었고 그 후에는 그리스와 산니티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으나 그 도시공학과 건축술은 그리스 신전 양식과 이탈리아 양식의 복합이라고 합니다. 기원후 79년 8월24일 이전에는 상업에 종사하는 3 만여 명의 시민들이 생활하던 전성기의 도시였으나 거대한 화산 폭발로 화산재와 자갈들로 뒤덮여 버렸습니다. 그래서 여러 세기 동안 잊혀진 도시였으나 1700년대의 첫 발굴이 있었고 1800년대에 와서 과학적인 정리로써 발굴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60ha의 페허가 펼쳐져 당시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페허가 된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귀한 예술을 이해하는데 근거가 되고 건축공학은 바로크 풍의 화려한 모자이크, 대리석 조각들과 청동상 토기들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음을 증명합니다. 폼페이의 정치와 종교와 경제의 중심인 공회장과 아름다운 회당, 거의 모든 기둥이 남아 있는 아폴로 신전, 제우스신전, 놀라울 정도로 과학적인 목욕탕, 술의 신 디오니소쓰를 즐겁게 하려는 벌거벗은 이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 대극장과 소극장, 잘 정리된 길들과 상점, 가재도구, 앉은 채로 또는 누워있는 채로 화석이 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시대에도 성을 파는 곳이 있었고 목욕문화와 술이 뛰어나게 발달했으니 그 어둠의 그림자가 멸망을 자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화석이 되어버린 산모를 보면서 모성애가 얼마나 강한가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한 인간의 작품도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루 한 순간을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22)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 견딘다는 것은 단순히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불의하면 할수록 더 큰 의로움을 살아야 하고 세상이 나를 속이고 불이익을 준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보여주신 희생과 봉헌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어느 한 순간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혼돈과 마지막이 오더라도 그때야말로 주님의 사람임을 증거 할 때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불의하게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느님을 생각하는 양심 때문에 그 괴로움을 참아 내면 그것이 바로 은총입니다.”(1베드2,19)

  폼페이의 아름다운 문명이 한 순간에 묻혀버리듯 이 세상의 화려함도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가까이 일본의 방사능 누출 사고와 쓰나미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설사 내 인생의 마지막이 온다 해도 주님께서 약속해 주신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면서 진리 안에 자유로워야 하겠습니다. 사실 오늘 한 순간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마지막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마지막처럼 그리고 약속해 주신 영원한 생명이 있으니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겠습니다.

  인생여정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방심하지 말고 끝까지 견딜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인생여정의 여러 상황 안에서 실망과 실패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낙담하지 않고 충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현세의 축복뿐 아니라 천상의 열매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제때에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라6,9)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약속된 것을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히브10,36)사랑합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유치성공 63:25 <2011.7.7 > *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대한민국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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