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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배꼽과 탯줄 [허윤석신부님]
작성자이순정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04 조회수529 추천수4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전도여행 중에

 

어느 여인으로부터 이런 외침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 군중 속에서

 

한 여자가 큰소리로 "당신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고 외치자..."(루가 11, 27)

 

 

복음을 묵상하다가

 

저는 이런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젖을 먹는 아기도 행복하지만

 

그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에게도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도

 

 당신에게 맡겨진 교우들에게 영적 젖을 먹이면서

 

이 행복을 마음껏 즐기면서 선교여행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 행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고 젖을 먹였습니다.

 

여러분은 그 때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아직도 그것을 소화할 힘이 없습니다..."(1고린 3,2)

 

 

 

저는 얼마 전 묵주기도를 하면서

 

 참으로 내 자신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가

 

 묵주기도를 하면서

 

작은 십자가의 예수님의 발에 친구(親口)하면서

 

너무 형식적이며 기계적인 동작이 이젠 되지 않았는가?

 

 

왜 우린 십자가의 달리신 발에 친구를 하는 것인가?

 

 

우리는

 

 입맞춤이라는 의무를 할뿐

 

입맞춤당하는 예수님의 마음과 상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듯 보입니다.

 

 

제가 이스라엘 성지

 

 예루살렘의 14처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14처를 하는 동안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우울하였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못박히시어 메달리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는 장소에 와서는 놀라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메달리시어 피와 땀을 흘리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예전에는 예수님의 상처에만 그리고 가시관에만 시선이 자동적으로 머물렀으나

 

그날 그장소에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합니다.

 

 

저의 시선이 예수님의 뱃곱에 머물렀습니다.

 

 

 예수님의 뱃곱!

 

 

바로 어머니와의 연대성 즉 하나됨의 상징입니다.

 

 

 모든 사람은 뱃곱이 있습니다.

 

 

 이것은 태중에

 

 어머니와의 하나되는 중요한 기관으로

 

 뱃곱이 없는 인간이 없듯이 뱃곱은

 

어머니에게 물러받은 가장 신비한 표지입니다.

 

 

뱃속에 있을 때

 

 모든 영양분과 물과 그 밖에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조건없이 제공받고 또한 노폐물들은 모두 이 탯줄을 통하여 어머니에게로 배출됩니다.

 

 

예수님은

 

 100% 하느님이셨고,

 

 100% 인간이셨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뱃꼽입니다.

 

 

뱃꼽은

 

 단순히 어머니와 자녀사이의

 

 탯줄이 잘린 흔적으로만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자식은

 

 탯줄을 자르면서 어머니를 잊기 시작하지만

 

어머니는 자식이 배꼽이 생겨도 애틋한 모정(母情)의 탯줄은 자를 수 없다.”

 

 

 

예수님의 신체부위 중

 

어디 거룩하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부분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할 때

 

 뚫린 손과 발 그리고 채찍질과 매맞음 그리고 가시관 쓰심으로

 

 상처난 상처난 피부와 부어오른 근육만을 바라보지 말고

 

 그 가운데서 배꼽을 함께 바라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온 세상에 선포하십니다.

 

 

이분이 너희 어머니시다.”

 

 

예수님은

 

 숨을 거두시기 전에 유언으로 이 말씀을 남기셨는데

 

 이것은 성모님을 모실 집과 성모님을 모실 제자에게 단순히 하신 말씀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하신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바로 오른쪽에는

 

예수님의 시신을 염한 시상판이 있다.

 

 

 시상판이란

 

 염습하는 자리를 말하거나 시신을 받친 나무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국법으로 사형당한 사람이므로

 

 자신의 시상판이 있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고문과 십자가의 수치스럽고 가장 고통스런 죽음을 당한 이들을

 

그저 돌판 그것도 우둘 두둘한 돌판 위에서

 

 핏물을 대충 급히 눈치보면 닦아야 했던

 

그런 초라하고 비참한 공용시상판에서 시신을 수습했다.

 

 

 

나는 이런 바람이 있다.

 

 

우리가 핵가족화되고

 

도시화 되면서 가족애의 부족이 도래했다.

 

 

내가 염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부모 형제를 우리가 염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마지막 가는 길에

 

우리 배꼽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만감이 교차하는

 

회개(悔改)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천주교는 마리아를 숭배하는 종교다!’

 

오해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드린적 있다.

 

 

예수님의 배꼽을 한번 묵상해 보셔요

 

 

그리고 자신의 배꼽을 한번 묵항해 보시고요!

 

 

어린 자녀가 하늘에 오를 때

 

 난 그 어머니의 마음속에 있는

 

아직도 따뜻한 탯줄을 바라볼수 있다.

 

 

어린 6살난 아이가

 

 하늘나라로 가기전 그린 그림속에는

 

엄마의 배꼽과 자신의 배꼽이 대화를 하는 그림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드리는 묵주는 천상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연결된 탯줄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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