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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사람 - 큰 산, 큰 바위, 큰 나무 같은 사람-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15 조회수480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1.10.15 토요일

예수의 데레사(Teresa of Jesus) 성녀 동정 학자(1515-1582) 기념일

로마4,13.16-18 루카12,8-12

 

 

성령의 사람

-큰 산, 큰 바위, 큰 나무 같은 사람-

 

 

황금빛 저녁노을, 황금빛 가을 벼 이삭들,

성령으로 잘 익어가는 황금빛 노년 인생을 상징합니다.

 

오늘 아침 안개 자욱한 새벽 산책길이었습니다.

별빛 찬란한 새벽하늘 보며 산책할 때도 있고

이런 안개 자욱한 날도 있듯이 우리 삶의 여정도 똑 같습니다.

이런 날 저런 날 상관없이

성령 따라 항구히 성령의 사람으로 살 때 주님의 축복입니다.

 

오늘은 ‘성령’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강론 제목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부활하신 주님의 우선적 선물이 성령이요

항구히 찾고 청하고 두드릴 때 아버지의 참 좋은 선물이 성령입니다.

그러니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성령 따라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난득호도(難得糊塗), 어제 읽은 말마디가 잊혀 지지 않습니다.

중국 발음으로는 ‘난더후투’가 되며

중국인들은 이 말을 그리도 좋아한다 합니다.

‘호도’가 우리말의 뜻과는 달리

중국어로는 ‘어리석은 사람’이란 뜻이 들어있다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외우내현(外愚內賢)의 겸손한 사람을 상징하니

말의 뜻인 즉 진정 겸손한 자 되어 살기가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성령에 따라 성령의 사람 되어 살 때 터득되는 호도의 겸손한 사람입니다.

대우(大愚)의 사람 같으나 실상 대지(大智)의 사람입니다.

 

과찬이지만 다음과 같은 격려가 저에겐 참 고마웠습니다.

 

얼마 전 저의 영명축일을 맞이했을 때 아빠스님의 축하 이메일 중 다음 대목입니다.

“큰 바위처럼 늘 든든하고 항구하게 지켜 주시니 모두가 안심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강론 댓글에 올린 다음 ‘민들레 홀씨’님의 내용도 저에겐 큰 격려였습니다.

“신부님을 보면, 천상 수도자라는 느낌이 들지요.

예전에 어느 분이 성철 큰스님처럼 큰 산 같다 하시더군요.”

 

작년 이 해인 수녀님의 영명 축하 편지 중 다음 대목 또한 고마웠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영명 일을 축하드립니다.

늘 나무처럼 사시는 수사님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주님 안에서 항구히 큰 산, 큰 바위, 큰 나무 되어 사는 게 제 소원이고

정주서원의 궁극 목표이기도 합니다.

 

성령에 따라 성령의 사람 되어 살 때 큰 산, 큰 바위, 큰 나무 같은 삶입니다.

 

바로 로마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묘사하는 아브라함이 그러합니다.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저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하느님 믿음의 끈, 생명의 끈, 사랑의 끈을 꼭 붙잡고 사는 아브라함에게서

즉시 저희 배 밭, 배나무에 달린 배들을 연상했습니다.

 

봄, 여름, 가을 배 열매들이 익어갈 때 까지 배나무에 꼭 붙어있는

배 꼭지가 그대로 믿음의 꼭지, 생명의 꼭지, 사랑의 꼭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믿음의 꼭지, 생명의 꼭지, 사랑의 꼭지로

주님께 매달려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살아가는 지요.

 

바로 이렇게 살게 하는 힘이 바로 성령의 힘이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힘이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주님을 안다고 증언하게 하고

모든 시련과 박해를 견뎌내는 원천이 됩니다.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이렇게 좋은 성령님입니다.

 

성령은 하느님이요 생명이요 사랑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를 받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를 받지 못합니다.

 

생명과 사랑을 통해 누구에게나 자명하게 들어나는 성령의 활동입니다.

누구에게나 자명히 들어나는 생명을, 사랑을 거스르는 것

바로 이게 성령 모독이요 하느님 모독임을 깨닫습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생명의 꼭지, 사랑의 꼭지, 믿음의 꼭지로 주님을 붙잡고

힘겹게 사는 이웃들을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얼마 전 읽은, 초인적인 인내로 거의 300여일을 크레인에서 고공 농성 중인

김 진숙 씨의 소탈한 인터뷰 기사를 잊지 못합니다.

 

-기자 : 만약에 이번에 사태가 잘 해결돼서 크레인에서 내려가면 앞으로 뭐하고 싶나?

김진숙 : 목욕하고 싶다. 실컷 잤으면 좋겠다. 내 마음대로 자고, 내가 깨고 싶을 때 깨는

그런 잠을 잤으면 좋겠다. (크레인에 올라온 후로) 1시간 이상을 이어서 자본 적이 없어서….

늘 긴장된 상태에 신경이 곤두선 채로 있으니 약을 먹어도 잠을 못 잔다.

목욕 갔다 와서 실컷 자는 걸 우선 해보고 싶다.-

 

삶의 진실은 단순합니다.

몸과 직결되는 소원입니다.

구체적 몸으로 살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생명의 욕구를, 사랑의 욕구를 들어주는 것이 성령에 따른 삶이요

이를 거스르는 것이 바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예수의 데레사는 그대로 성령의 데레사,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에 따라 사는 성령의 사람은 사랑 따라 생명 따라 삽니다.

 

성녀 예수의 데레사 사후

그의 성무일도 책갈피에 적혀있는 성녀의 고백이 큰 격려와 위로가 됩니다.

 

-어느 것도 너를 걱정케 하지 마라.

어느 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마라.

모든 것은 지나간다.

하느님만이 변함이 없으시다.

네가 인내하면

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이들은

아무것도 부족치 않다.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어 성령 따라 성령의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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