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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왕따를 시키는 이유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28 조회수504 추천수1 반대(0) 신고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마태오 2:13-18)
 
 성무일도의 ‘독서의 기도’ 즉 ‘옛날의 조과(朝課)’에서 요셉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헤로데! 네 마음 속에서 두려움이 네 자신을 죽이고 있기 때문에 너는 어린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이는 헤로데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한 말 같다. 남을 공격하는 것은 두려움의 표시이다. 그런데 전혀 두려움을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두려움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서 해결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두려움을 표출하고 다른 사람과 싸운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두려움과 싸우지 않기 때문에 겁 없이 싸우게 된다. 그리하여 겁이 전혀 없게 되어 자신의 두려움을 표출할 가장 쉬운 상대를 고른다. 어린 학생들이 왕따를 시키는 것은 바로 이 이유이다.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은 겁쟁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죄 없이 표적이 되어 희생된 순진한 사람들을 도와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온 세상의 이렇게 희생된 사람들을 도와주신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다.(2티모테오 1:7) 따라서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로부터 용기를 배워야 한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St. John Chrysostom)이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을 때 여러분들은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도피를 하게 만든 폭군의 분노를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가족은 아무 죄도 없이 이집트로 피신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위험에 직면하더라도 괴로워하면 안 됩니다. 성모님이 피난 생활도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알고 오랫동안 온유하게 고통을 마음 속에 간직하셨듯이 여러분들도 설령 고통을 겪더라도 하느님의 보상이 곧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 됩니다.”
 
 요즘 대구의 한 중학생의 자살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왕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해묵은 문제이다. 어린 학생이 그 고통을 견뎌내지 못하고 자살하고 만 것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어른들도 고통을 은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드문데 그 학생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어느 학자가 부르주아에 대한 질투 때문에 공산주의자가 된다고 말했다. 권력을 잡고 나면 부르주아보다 훨씬 더 타락하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질투도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 아닐까? 아무리 노력해도 벽을 뛰어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이 모든 것은 고통을 은총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뜻을 저버린 결과이리라.
 
 페르시아의 성인 루미가 말했다.
사람들은 오만하여 ‘하느님의 뜻’을 간과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오만함을 통하여 인간의 무기력함을 보여주셨다. 나는 인간의 영혼이 여전히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섭리대로 하신다.’는 것을 마음 속에 새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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