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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는 말씀으로 태어나다 [바리사이, 헤로데 누룩]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14 조회수529 추천수0 반대(0) 신고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분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 "  <마르코 8, 14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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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은 신속히 발효되는 그 성질로 인해 성경에서 주로 죄의 재빠른 전염성과 그로 인한 부패를 상징한다 (마태 16,6. 12; 1고린 5,8). <굿뉴스 자료실 / 누룩>

무교병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이나 과자를 말하며, 유다인들의 예배 의식 때 의무적으로 사용하였다(레위 2,4). 발효되지 않은 밀가루 반죽은 순수함과 거룩함을 상징한다. 유다인들은 과월절(過越節)에 출애급의 괴로웠던 일을 상기하면서 쓴 나물과 무교병만 먹었다(출애 12장). 오늘날 미사 때 사용되는
제병에 누룩을 넣지 않는 것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누룩의 두 가지 상징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마태오 13, 33 / 하느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다; 루카 13, 21 )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마르코 8, 15)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1코린토서 5,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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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누룩에 관한 '두 가지 상징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는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이다. 여기서의 누룩은 [ 신속히 발효되는 그 성질로 인해 성경에서 주로 죄의 재빠른 전염성과 그로 인한 부패를 상징한다 ]에 해당될 수 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죄악성과 부패성'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바리사이들은 현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광범위한 '위선자'로 생각할 수 있다. 현대에서 위선자들은 사회의 모든 부문에 걸쳐 존재한다. 그리고 헤로데는 권력의 부패상을 생각할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위선의 누룩과 부패의 누룩'은 누구라도 모두 그것에 대해서는 인식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이미 익히 알고 있다고 본다. 위선과 부패는 인간 역사 안에서 없었던 경우는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역사에서나 인간 안에 항상 존재해 있었던 것이다.

여기 복음에서 세상 쪽이 아닌 인간 쪽으로 살펴 본다면, 말씀께서 인간(삶)을 해석해 주신다면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은
[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마태오 13, 33 / 하느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다; 루카 13, 21) ]와 반대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의 언어로 계시되었지만 '말씀'은 또한 하느님의 언어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언어로 '말씀의 육화'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셨다 할 것이다
'말씀'이 겉으로는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분명한 문자이지만 안으로는 '영'이 살아 움직이신다 할 것이다. 이는 [ 내 말은 영이고 생명이다 (요한서) ] 하심에서 더욱 분명하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예수님'을 '말씀'과 분리시켜 '말씀'에서 예수님을 떼어낸 단지 역사의 예수로서만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역사 안에서 진행되어져 왔다. 예전부터 게시판에서 <예수님 없는 예수사상>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몇차례 자주 있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예수님을 때어 버리고 그 말씀(진리)들만을 인간들에게 가져와서는 인간에게 붙여 '인간의 진리'(곧 사상 이념)으로 변질시켰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의 예수님은 '말씀의 예수님'이 아니시며 '다른 예수'(예수-상)가 되어 버린다고 하였다

예수님에 대한 '재해석'(미륵예수-상 / 예수사상이념)으로 '다른 예수'가 나타나는 것이다고 그 경계성을 특별하게 알렸다. 다시말하면 '하느님의 진리'에서 "하느님 없이" 진리만을 인간에게 붙여쓰면 '인간의 진리'로 변질하고, '하느님의 사랑'에서 "하느님 없이" 사랑만을 인간에게 붙여쓰면 '인간의 사랑'으로 변질되며, '하느님의 
정의'에서 "하느님 없이" 정의만을 인간에게 붙여쓰면 '인간의 정의'로 변질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한 인간의 문자이지만 '말씀' 자체이신 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예수님의 말씀'에서 떼어 버리고, 즉 역사의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로서만 재해석하면서 그분의 '말씀'만을 오늘의 인간에게 갖다 붙여 미륵예수 - 상을 만들어 낸다면 이는 말씀에 대적하는 [ 거짓말 속에 '악의 활동(작용)'이다 할 수 있다. (교리서 참조) ]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의 불완전한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인간적 문자인 '말씀' 안에는 완전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의 '영(성령)이 활동(작용)'하시는 신적인 말씀이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말씀 위에 자리하고자 한다면 말씀 속에 살아계시는 (진리의) 성령을 거스리며 하느님께 대적하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가 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누룩은 다름아닌 바로 진리(말씀)의 영을 거스리며 '말씀'에 대적하는 자들이다 하겠다.




"교회는 말씀을 통하여 태어났으며 그 말씀으로 살아간다"  

<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



< 다음 '예수님의 말씀' 입니다 >

 "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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