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예수님을 올라타라!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22 조회수512 추천수10 반대(0) 신고



하느님의 자비 주일은 탐욕에 물들어 고통스럽게 죽음의 골짜기를 헤매고 있는 인간을 너무나 깊이 사랑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파견하시어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는 무한하신 자비를 기념하는 날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자비의 현현顯現이고 핵심이고 본질이며 도구이다. 성자의 파견은 하느님 자비의 시작이요, 성자의 부활은 하느님 자비의 완성이다. 그래서 교회는 2001년부터 부활 대축일 다음 주일에 하느님의 자비를 기념한다. 그렇게 하느님 자비의 시작이자 완성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성자를 세상에 파견하신 것과 같이 우리들을 세상에 파견하신다’(요한20,21). 이제 주님의 파견을 받은 우리는 주님 스스로가 그러하듯 파견하는 자의 자비의 현현이고 핵심이고 본질이여 도구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모든 파견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성자를 세상에 파견하시는 성부 하느님에게 그 근원을 두고 있다. 파견은 자비의 행위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삼위의 다른 위격으로 존재하지만 본성에 있어서는 완전한 하나이다. 파견하는 성부와 파견 받은 성자는 본성 상 하나라는 말이다. 우리들의 파견이 성부의 성자 파견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면 우리들 역시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본성 상 하나가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본성 상 하나가 되는 체험이 없는 파견은 자비의 행위가 될 수 없다. 그것은 허수아비를 파견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본성 상 하나가 될 수 있는가?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호기심은 모든 인간 열정의 근원이다. 호기심은 곧 더 자세히 발견하고 이해하려는 욕구이다. 사람은 호기심을 통하여 어떤 것을 더 자세히 발견하고 이해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과 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더 깊이 감탄할 수 있으며, 마침내 그것과 나는 본성 상 하나임을 체험할 수 있다. 이렇게 어떤 무엇과 본성 상 하나임을 체험하는 행위들이 우리들의 삶과 우리들의 사랑에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아담과 이브의 호기심이 구약의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더 깊이 있는 발견과 이해의 시작이었다면 토마스 사도의 호기심은 신약의 하느님이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 사이의 더 깊은 사랑과 찬미를 가능케 하는 명약이었다. 토마스 사도는 그 호기심으로 인하여 더 깊은 주님께 대한 사랑과 찬미의 고백을 바칠 수 있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20,28)

어렸을 적부터 말이라는 동물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서부 영화에 등장하는 카우보이들이 박차拍車를 가하며 초원을 질주할 때 어린 시절의 나는 속으로 다짐했었다. 언젠가는 나도 꼭 ‘서부소년 차돌이’처럼 멋지게 말을 타고 바람을 가를 것이라고. 말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결국 말이라는 동물에 대한 경외심으로까지 성장해갔다. 바람에 멋지게 휘날리는 갈기며, 거친 숨소리를 내뱉고 있는 기품 있는 머리모양이며, 섬세하게 갈라진 허벅지 근육이며, 부드럽게 휘어져서 완벽해 보이는 허리선이며, 수줍게 엉덩이를 감추고 있는 탐스런 꼬리 등등, 말이라는 동물은 나에게는 차라리 상상 속의 동물이 되어갔다. 그러다가 결국 로마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승마 학교에 등록을 하여 드디어 말 등에 올라 말과 함께 걷고, 뛸 수 있었다. 멀리서 말을 바라보고 말에 대한 책을 읽고 말에 대해 누군가에게 듣는 것과 말과 내가 하나가 되어 달리는 구체적인 체험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차이gap가 있다. 그 둘은 전혀 다른 차원이고 전혀 다른 세계이다. 꿀맛에 대해 전생애를 바쳐 연구를 한 사람이 있는데 정작 그는 꿀맛을 보지 못했다. 그는 꿀을 묻힌 손가락을 빨고 있는 코흘리개 어린 아이보다 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주님에 대한 호기심은 주님에 대한 전혀 새로운 차원의 발견과 이해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그 완전하게 달라진 차원의 세상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생한 주님의 부활을 체험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이 차원이 다른 세상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온몸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찬미의 고백을 바칠 수 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20,28)

친구여! 그대 역시 이러한 사랑과 찬미의 고백을 바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구경은 그만두고 지금 당장 예수님을 올라타시게!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