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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꽃동네 13. 예수님 발에 붓는 향유 - 거룩한 것들의 공유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25 조회수529 추천수0 반대(0) 신고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요한 12,1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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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비싼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합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우정 호의의 표시로 자기 집을 방문한 손님의 발을 씻겨 주던 풍습이 있었다.발을 씻겨주는 행위는 애덕과 겸손의 상징이며 또한 정화를 상징한다 (가톨릭대사전참조) 다른 한편, 예수님께서는 종의 행위인 발을 씻김으로 제자들에게 섬기는 모범을 보이셨다(요한 13,2-11). 여기서 발은 비천함의 상징이다.다른 이의 발에 입을 맞추거나 발을 닦아주는 것은 철저한 자기비하나 경의를 의미한다. (발; 성경의 상징, 자료실)

마리아는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고 합니다.  상기에서 처럼 '발'을 씻겨 주는 것은 손님에 대한 우정과 호의의 표시였습니다.마리아는 그것도 비싼 향유로 예수님께 대한 최상의 애덕과 겸손 그리고 경의를 표현한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의 행위에 대하여 그냥 놔 두어라시며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하십니다. 

향유에 대한 복음의 다른 기록에 보면 죄 많은 여자의 향유 이야기가 있습니다.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루카 7장)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또한 [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요한 15,13-15) ]는 말씀도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 보다 먼저 앞서서 하느님 아버지와 진리(아버지의 사랑)을 증언하시기 위하여 기꺼이 당신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 위에서 내놓으셨습니다. 이 일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생명과 당신의 평화를 주시려고 자기 목숨을 내놓으셨던 일입니다.이만큼 친구들을 위하여 제 목숨을 내놓는 더 큰 사랑은 우리들에게도 주어집니다.

자기 자신이 악을 행하여도 전혀 아파하지 않고 대항하지 못하는 남(하늘이와 같은 아기들과 노인들인 약자)들에게 악의 고통을 안겨 주어도 조금도 슬퍼하지 못한다면 예수님과 당신 말씀 앞에서 죄를 용서받지 못할 정도의 악과 죄의 지배 아래에 있는 탓입니다.이런 거친 삯꾼은 '악의 꽃'(꽃동네)을 피울 수는 있지만 결단코 '큰 사랑'을 피워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연인들의 거룩한 것들의 공유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악의 꽃을 피우는 악한 것들의 공유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예수님과 말씀 아래에 있는가 혹은 은총을 욕되게 하는 지배 체제 아래에 있는가에 달린 일이 될 것입니다. 학대하는 '빽'을 가진 악한 자들이 뿌리내리는 그 곳은 바로 '악한 토양'의 자리가 되어집니다.

예수님과의 일치, 말씀과의 결합은 "많은 죄를 용서받고 큰 사랑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리하여 대항조차 할 수 없는 약자들을 결단코 보복 학대를 할 수 없습니다.하지만 악의 토양에서는 그것이 가능한 일입니다.  그 공동체가 많은 죄를 용서받고 큰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면 향유의 가득함 처럼 거룩한 것들의 공유가 이루어 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버려진 이들 때문에 내려지는 주님의 은총을 가지고 도리어 학대하고 있다는 것은 죄 많은 여자가 자기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주지 못함이며 또한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의 발에 거룩한 향유를 붓고 제 머리카락으로 닦지 못함입니다. 그리하여 악한 것들이 공유되고 있다 할 것입니다.큰 사랑을 도무지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만 '큰 사랑'을 입으로 내세우지만 행동으로는 '예수님의 사랑'이 죽어있는, 학대하는 '빽'의 거친 삯꾼들이 지배하는 기업체, 돈 계산 (이윤 계산) 만을 하는 기업체일 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이렇게 이스카리옷이 말합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버려진 이들의 고통과 평화에는 관심 (큰 사랑)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회개하지 못하면 (울지 못하면) 악한 것들의 공유가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작년 9월 글 일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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