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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6/9 연중 제10주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9 조회수475 추천수9 반대(0) 신고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3년6월9일 연중 제10주일 복음묵상


“울지 마라.” (루카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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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아들을 두고 사는 남편 잃은 여인이 있었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이 죽었다.
울음으로도 그 한을 채울 수 없는 아픔이었으리라.

장례 행렬을 예수님께서 보신다.
그리고 가여운 마음이 드신다.

“여인아, 울지 마라.”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죽었던 아들은 살아나서 말을 한다.

오늘 복음의 간단한 줄거리였다.
복음서에서 특히 루카가 전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연민의 예수님이다.
딱한 처지의 여인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결국 일을 또 저지르고 마신다.

예수님의 마음 안에 있던 연민은 어떤 것이었을까?
복음서에 나오는 연민, 즉 예수님께서 당시에 사용하시던 언어 아람어가 가지고 있는
연민이라는 단어의 뜻은 조금 다르다.
우리 말 번역에는 ‘측은히 여기셔서’라든가, ‘가엾은 생각이 드셔서’라는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이셨던 연민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나 동정심하고는 다른,
보다 강한 마음의 움직임이었다.

예수님의 연민은 누군가의 아픔을 보았을 때, 오장육부가 뒤틀리는듯한 아픔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런 연민을 뜻한다.
즉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 무엇인가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야만 해결이 될 수 있는 아픔을 가진 단어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른바 소외 계층이라고 불리는 약자들에게 당신의 시간 대부분을 쓰셨다.
그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지나칠 수 없는 아픔을 느끼셨고 무엇인가 그들을 위해 하셔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희망을 알려주셨다.

우리의 삶을 뒤돌아 본다.
복음을 믿으며 그 안에 약속된 구원을 희망하며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그 복음이 가르치는 삶의 태도에 대해서는 너무 이기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닐까?
그분께서 보이신 연민의 마음을 닮아야 한다.

좀 더 세상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하려는 노력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연민에 약한 사람들이 가장 복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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