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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을 섬기는 삶 - 2013.8.17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17 조회수430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3.8.17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여호24,14-29 마태19,13-15

 


주님을 섬기는 삶

 


오늘은 ‘주님을 섬기는 삶’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오늘 1독서 신명기는 백성에 대한 여호수아의 간곡한 당부로 시작됩니다.

 

“이제 너희는 주님을 경외하며 그분을 온전하고 진실하게 섬겨라.”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섬기다.’라는 단어가 계속 나와 헤아려보니
무려 14회나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세상 헛것들을 섬기지 말고 주님만을 섬기라는 당부에
‘우리는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화답하는 백성입니다.

 

영어성경에서 ‘섬기다’를 확인해 봤더니 ‘serve’로 소개되어있었습니다.
serve(섬기다), service(섬김), servant(종) 모두가 같은 어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마지막 대목, 여호수아의 죽음 장면도 장엄하면서도 간명하여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주님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죽었다.
그의 나이는 백열 살이었다.’

 

3일전(14일) 신명기 독서에서 모세의 죽음에 이어
오늘 여호수아의 죽음이니 인간의 생명은 순간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종(Servant of the Lord)’으로서 섬김의 사명을 다 마친 후의
참 홀가분한 선종입니다.

 

 

 

여호수아뿐 아니라 하느님께 봉헌된 수도생활을 하는 우리들 역시
평생 주님을 섬겨야 하는 주님의 종들입니다.

새삼 우리의 영성은 섬김(service)과 종(servant)의 영성뿐임을 깨닫습니다.
주님 역시 이 점을 각별히 강조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20,2-27).

 

마침 며칠 전 어느 수녀님에게 선물 받은 ‘서번트 리더십(The Servant Leadership)’이란 책 제목도 생각납니다.

오늘은 주님을 섬기는 삶에 대해 몇 측면에 걸쳐 묵상을 나눕니다.

 

 

 

 

 

첫째, 공동전례기도의 찬미와 감사로 주님을 섬기는 우리들입니다.

 

하여 베네딕도 성인은 분도수도공동체를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로 정의하며,
하느님의 일인 성무일도를 주님께 바치는 ‘섬김의 의무’라 명명합니다.

막연히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주님을 섬기는 수도자들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자들아 주께 찬미 드리라.”

 

어제 저녁기도 마음에 와 닿은 시편구절입니다.
평생, 매일,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기도로 주님을 섬기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수행에 이보다 더 좋은 수행도 없습니다.

섬김과 환대는 함께 갑니다.
찬미와 감사로 주님을 환대하면서 섬기는 우리들입니다.

 

 

 

 

 

둘째, 우리를 섬기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섬기시는 주님 사랑에 응답하여 주님을 사랑으로 섬기는 우리들입니다.

공동전례기도는 ‘주님을 환대하며 섬기는 우리들’의 측면만 있는 게 아니라,
동시에 ‘우리를 환대하며 섬기는 주님’의 측면도 있습니다.

말씀과 성체로 우리를 섬기시는 주님께
찬미와 감사로 주님을 섬기는 우리들입니다.

전례만이 아니라 주님은 좋은 이웃들을 통해 우리를 섬기십니다.

섬김의 사랑, 섬김의 겸손입니다.
섬기시는 주님을 닮을수록 사랑과 겸손으로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

주님 역시 우리를 섬기러 오셨음을 천명하십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20,28).

 

오늘 주님은 어린이를 환대로 섬기심으로
우리를 섬기시는 주님의 진면목을 확실히 보여주십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19,14).

 

이어 주님은 어린이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으로 섬기신 후 떠나십니다.

여기서 어린이가 상징하는바
무력하고 무능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바로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의 수사님들도 이런 주님을 닮아,
천주의 성 요한이 그러했듯이
무력하고 무능한 이들을 환대로서 섬기는 일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셋째, 사람들과 일을 통해 주님을 섬기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은 애매하거나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전례를 통해 직접 주님을 섬기지만
형제들이나 내 소임 상의 일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주님을 섬깁니다.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이란 분도회의 모토를
‘모든 일에 하느님께 섬김’으로 바꿔도 무방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이웃들에 대한 환대의 섬김,
우리가 행하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것,
모두가 궁극으로는 주님의 섬기는 행위입니다.

주님을 섬기듯 형제를 섬기며, 주님을 섬기듯 소임에 충실할 때
영성의 최고봉에 도달합니다.

어제 천주의 성 요한의 전기인 ‘사랑의 투사’를 읽다가
한 대목에 눈길이 닿았습니다.

 

‘그는 뜨거운 소명감을 느끼면서도,
주님께서 어느 길로 당신을 섬기라 하시는지를 몰라서
막연한 열망은 끓고 있었지만 마음을 항상 슬프고 불안하였다.’

 

 

 

주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 삶의 의미요 삶의 모두입니다.

 

각자 주님께서 불러주신 제자리에서 주님을 섬기는 일에 항구할 때 평
화와 기쁨입니다.

더 이상 삶의 무의미와 허무에 시달리지 않고 의미 충만한 행복한 삶을 삽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찬미와 감사로 당신을 섬기는 우리에게 풍성한 축복을 내리시어
섬김의 삶에 충실할 수 있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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