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의 타가스테(Tagaste)에서
그리스도교 신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성녀 모니카는
이교도인이던 파트리키우스(Patricius)와 결혼했는데,
남편의 성품은 다소 난폭했고 또 방탕한 기질이 있었다고 한다.
이 부부는 3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나비지오(Navigius) 그리고 페르페투아(Perpetua)이다.
그녀는 끊임없는 기도와 인내로써 370년경에 남편과 시어머니를
개종시킬 수 있었으나 그 다음 해에 과부가 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그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개종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 당시 아우구스티누스는 카르타고(Carthago)에서 공부하던 중에
마니교에 심취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교 철학을 비롯하여 그릇된 길을 걷고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을 따라 로마(Roma)까지 쫓아갔으며(383년) 또
386년에는 밀라노(Milano)까지 갔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여기서 그리스도교의 깊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387년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아들인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살다가
이탈리아의 로마 근처 오스티아(Ostia)에서 55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http://info.catholic.or.kr/pds/include/readImg.asp?gubun=&seq=&id=19917&filenm=%BC%BA%B3%E0%B8%F0%B4%CF%C4%AB13%2Ejpg&maingroup=)
성녀 모니카에 대한 공경은 처음에는 없었으나,
1162년 성녀의 유해가 프랑스의 아라스(Arras) 근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으로 옮겨지면서 전 교회에 확산되었고,
다른 유물들은 1430년 오스티아에서 로마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당으로 옮겨졌다.
성녀 모니카는 가톨릭 여성 단체의 수호성인이자
그리스도교 어머니상의 모범으로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 가톨릭 굿뉴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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