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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 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23 조회수468 추천수7 반대(0) 신고

<연중 제33주간 토요일>(2013. 11. 23. 토)(루카 20,27-40)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부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이상한 이야기를 만들어 와서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루카 20,27-33)."

 

 사두가이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1) 부활은 없다.

 2) 만일에 부활이 있다면 굉장히 복잡한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그러니 부활이 없는 것이 좋다.

 

 사두가이파 사람들도 유대교라는 종교 체제 안에서 살고 있었고,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라고 믿었고, 계명을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부활, 영생, 내세, 영혼불멸,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았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믿는 하느님은 현세적인 복만 내려 주시는 하느님이었고,

 그들의 신앙생활은 지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만이 목적이었습니다.

 

 (요즘에도 사두가이들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직 현세적인 부귀영화와 쾌락만 추구하면서

 심판, 회개 등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사람이란 죽으면 다 끝난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막 살아버리면,

 남들은 부활해서 영생을 얻을 때,

 그들은 정말로 죽으면서 다 끝나버릴 것입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라는 믿음과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은 서로 모순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로 그 점을 지적하십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루카 20,38)."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다." 라는 말은,

 "하느님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사람들을 지배하고,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는 힘을 쓸 수 없는 그런 신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라는 말은,

 하느님은 현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죽어서 내세에 가 있는 사람들도 지배하시는 하느님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죽어서 내세에 가 있는 사람들도 (최후의 심판 때까지는)

 하느님 앞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라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라는 말은,

 "죽음이라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사람들을 빼앗아갈 수 없다." 라는 뜻입니다.

 만일에 죽음이라는 것이 하느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면

 (하느님이 죽음이라는 것에게 사람을 빼앗긴다면)

 전능하신 분이 아닌 것이 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죽음이라는 것도 지배하시는 분이고,

 그것을 영원히 소멸시킬 수 있는 분입니다(묵시 20,14).

 최후의 심판 때에는 죽음이라는 것도 심판 대상이 되고,

 죽음은 영원히 소멸될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부활은 있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부활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격을 얻은 사람만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루카 20,35).

 

 그리고 부활한 다음에는 천사들과 같아질 것입니다(루카 20,36).

 이 말은, "부활 후의 삶은 이승의 연장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만일에 지금의 삶을 부활 후에 그대로 다시 살게 된다면

 어떤 사람은 좋아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불공평하고 억울한 일이 될 것입니다.

 부활 후의 삶은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는' 삶이고,

 이전 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완전히 새로운 삶입니다(묵시 21,4-5).

 

 부활 후에는

 '하느님의 자녀' 라는 신분 외에 다른 신분은 없기 때문에(루카 20,36)

 높은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없고, 부자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고,

 잘난 사람도 없고, 못난 사람도 없고,

 남들보다 더 아름답거나 추한 경우도 없고,

 남들보다 더 건강하거나 약한 경우도 없습니다.

 

 부활할 자격을 얻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천사처럼 살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을 괴롭히는 욕망 같은 것에서 벗어나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에

 종족 보존 본능 같은 것에서도 해방될 것입니다.

 그래서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세상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일들이 악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일들은 분명히 선하고 아름다운 일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 속에서 인간의 오욕칠정, 집착, 번뇌 등이,

 또 여러 가지 인간적인 한계 등이 작용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아무리 사랑해도 이승에서는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

 '영원'을 말하려면 부활해서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부활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무해집니다.

 그러니 부활은 꼭 있어야 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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