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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진정한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는?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28 조회수639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참으로 여러 형태의 죽음을 본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죽음도 보았다.

파스카 축제 때에 예루살렘 골고타의 십자가 죽음을 택하신 그분의 죽음은 그야말로 처절했다.

죽음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울 수 있었던 그분도 결국은 죽으셨고 그리고 부활하셨다.

 

흔히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말 모르는 게 세 가지가 있단다.

첫째가 언제(when) 죽느냐이다. 그 때를 안다면 지금 이 시각이 어떨까?

아마도 금싸라기보다 더 소중할 게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이를 보면 쉬이 알게다.

 

다음은 죽는 장소(where)이다. 그곳을 안다면 거길 가는 택시 타는 게 과연 가능이나 할까?

그건 총알택시보다 더 두려울 게다.

더더구나 그곳과 이름이 엇비슷한 게 있을 것 같아 비행기는 감히 상상도!

그곳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일 테니.

 

문제는 마지막이다. 그건 어떻게(how) 죽느냐이다.

이번에 여객선 침몰 사고로 우리는 한 참에 여러 죽음을 보았다. 그것도 한 장소에서 말이다.

순진 그 자체를 간직한 채 물속 그 아래에서,

죽은 이를 구하기 위해 물위에서,

또 억울하게 죽은 제자들의 곁에 달려가고자 나무 곁에서.

이 모든 게 그야말로 안타까운 죽음들이다.

심지어는 이런 죽음을 보면서 분노까지 치밀어 억울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죽음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death)를 원하는가?

아니면 죽음을 향한 자유(freedom for death)를 바라는가?

이런 저런 유형의 죽음을 보면서

그래도 우리가 모르는 그 세 가지 땜에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가보다.

만약 그 하나라도 안다면 이 시각 우리는 어떨까?

 

아예 그 답을 얻기가 실상 두려울 게다.

그렇지만 이번처럼 여러 죽음을 한꺼번에 보면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 봐야 할 게다.

죽기가 두려워 치졸하게 혼자만의 삶을 추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죽기를 각오하고 그것과 의연히 맛서는 삶을 사는지를 곰곰이 되새겨 봐야 한다.

 

사실 예수님만큼 죽음 그 앞에서까지 자유로운 분은 없으셨다.

그렇지만 그분은 의연하게 죽음을 맞으셨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분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만났다.

그래서 이렇게 그분을 믿는 이가 되었다.

예수님은 죽음을 향한 자유(freedom for death)를 택하셨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우리가 늘 망각 속에서 사는 그 죽음을 향한 자유를 택했기에,

그것으로부터의 진정한 자유(freedom from death)를 얻었다.

이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는 죽음을 향한 자유를 택하는 이만 누릴 수 있을 것이니까.

 

정확히 말해 죽음을 피할 길은 우리에게는 없다.

그래서 진정한 죽음으로부터의 공포를 벗어나길 원한다면 죽기를 각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느냐는 모르는 것이란다. 그러니 그건 몰라도 좋다.

다만 죽기를 각오한다면 죽음으로부터의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게다.

 

죽기를 각오한 삶과 두려워 한 것의 차이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차이는 천양지이다.

이번에 죽음이 두려워 그걸 회피한 삶의 결과가 어떤지를 우리는 이번 참사로 분명히 보았다.

사실 죽음만큼 두려운 게 없다.

그건 모든 걸 우리가 다 체험할 수 있어도 죽음만은 우리가 결코 체험할 수가 없기에.

그리고 우리는 생일이라는 순서로 이곳에 왔지만 순서 없이 반드시 그곳에 가야할 인생이기에.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죽을 때까지는 그래도 산다는 거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은 단지 우리의 몫이다.

죽기를 각오한 삶, 그것만이 진정한 죽음으로 부터의 자유일 게다.

죽음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자.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당당하게 그 죽음을 향한 길을 택하셨다.

그 죽음을 향한[for] 자유를 택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음으로부터[from] 자유로울 수 있었다.

우선 순위를 forfrom이냐, 그건 우리의 몫이다.

부활 시기를 보내면서 죽음을 향한 자유(freedom for death)를 택하신 예수님을 다시금 기억하자.

그분께서는 우리가 늘 망각 속에서 사는 그 죽음을 향한 자유를 택하셨기에,

그것으로부터의 진정한 자유(freedom from death)를 얻으셨다.

그래서 그분은 영원히 사시면서 늘 우리와 함께 이 시각에도 함께 하시는 거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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