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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씀의초대 2014년 10월 6일 [(녹)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06 조회수54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4년 10월 6일

 

[(녹)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는

 신자들을 훈계하며 복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이른다.

참된 그리스도의 종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해서는 안 되며 복음을

충실하게 전해야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길을 묻는

 율법 교사에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전심으로 실행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신다.

 누가 이웃인지 반문하는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그렇게 행하라고 명하신다.

 

◎제1독서◎

< 복음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1,6-12
형제 여러분,

 

6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을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실제로 다른

복음은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을 교란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8 우리는 물론이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9 우리가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이제 내가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누가 여러분이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10 내가 지금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하느님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라면,

나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종이 아닐 것입니다.


1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분명히 밝혀 둡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12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1(110),1ㄴㄷㄹ-2.7-8.9와 10ㄷ(◎ 5ㄴ 참조)
◎ 주님은 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신다.


○ 주님을 찬송하리라. 올곧은 이들의 모임,

그 집회에서 내 마음 다하여 찬송하리라.

주님이 하신 일들 크기도 하여라.

 그 일 좋아하는 이들이 모두 깨치네.
◎ 주님은 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신다.

 

○ 그 손이 하신 일들 진실하고 공정하네.
그 계명들은 모두 참되고,

진실하고 바르게 이루어져

영원무궁토록 견고하네.

◎ 주님은 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신다.


○ 당신 백성에게 구원을 보내시고,

 당신 계약을 영원히 세우셨네.

그 이름 거룩하고 경외로우시다.

주님 찬양 영원히 이어지네.

◎ 주님은 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신다.

 

◎복음환호송◎

요한 13,34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5-37

그때에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듣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명심해야 하는 말씀이지만,

믿지 않는 선의의 많은 사람도 이 말씀에

깊이 감동하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 비유의 보편적인 호소력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께서 모든 이의 마음에

심어 놓으신 사랑의 계명을 감지하게 됩니다.

고통에 빠진 이웃에 대한 연민의 정이나

사랑의 실천이 없다면,

어떤 높은 지위에 있든,

얼마나 많은 지식과 언변을 지녔든,

그는 가장 중요한

 ‘인간다움’을 잃은 자입니다.

‘인간다움’이야말로 윤리와 도덕의

근원이자 행동의 기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로써,

 왜 우리가 그리도 자주 인간다움을

잃고 사는지를 깨우쳐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나의 세계에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상관없는,

굳이 마음 쓸 필요 없는 익명의 ‘타인’

이라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마르티니 추기경은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와 가진 서면

대담에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시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사랑하고

우리 스스로를 성화하기 위한

이 세계는 존재에 관한 가치 중립적인

이론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역사적인 사건들이나 자연 현상들에

의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세계는 얼굴이라고 하는

이타성의 중심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바라볼 얼굴,

 존중할 얼굴,

어루만질 얼굴들이

존재하기에 우리 세계도 존재한다.

(마르티니·에코 공저, 『무엇을 믿을 것인가』에서)
나와 무관한 ‘타인’은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언젠가 만날

 ‘이웃’으로 존재합니다.

고통 받는 이들에게서

‘이웃의 얼굴’을 보는 것,

그것이 보편적 윤리입니다.

또한 그 윤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겨 주신 ‘사랑의 계명’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실천으로 보여 주는 것,
그것이 영원한 생명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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