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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탓이냐? 네 탓이냐?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22 조회수968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내 탓이냐? 네 탓이냐?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희망하면서

행복하게 잘 지내셨나요?

메르스에 대한 걱정 때문에

  사회의 분위기가

서로 만나지 않고 접촉하지 않는 등

싸늘하게 느껴집니다.

성당에서는 안 그러면 좋겠는데

저절로 분위기가 그렇게 잡혀갑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교회가 오늘 특별히 기도하는 것은

반세기에 걸친 분단의 장벽을 넘어

남과 북이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고,

그 은총의 결실인 평화의 실현을

하루 빨리 앞당기자는 것입니다.

서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의 정착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평화가 깊이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의 평화를 존중해야 합니다.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이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누릴 수 있게 된

평화를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형제 자매님, 지금까지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는데

힘을 다 낭비했습니다. 

  그래서 남는 것은 서로의 상처와

깊은 불신입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남북의 관계가 경직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피를 나눈 형제이면서도

세상의 그 어떤 나라나 민족보다

미워하도록 교육을 받았었습니다.

이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작은 일에서부터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그러한 큰 일치에로

나아가기 위해서 먼저 우리 가까이에서부터

 착실하게 출발을 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 본당을 생각해본다면,

본당 모든 신자들의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아니 어쩌면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우리 가정,

 우리 반, 우리 구역 그리고 우리 본당,

이렇게 점점 큰 공동체로 나아가면서

일치를 이룬다면 본당 전 신자의

 일치도 충분히 이룰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친교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참으로 예수님의 이름

곧 사랑으로 한 마음이 된다면

당신께서 함께 계시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참된 평화를 주시리라는 약속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런데 공동체가 참으로

평화를 누리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참된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용서에 몇 번이면 족하다는 선이 없고

끝없이 용서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고

참된 평화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속으로,

“에이 신부님, 한 번 용서하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끝없이 용서를 할 수가 있습니까?”

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하느님은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까지 우리에게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제를 통해서

당신의 용서를 베푸십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받았던

 고백성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사제가 “당신의 죄는

 용서해줄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하느님은 우리를 그렇게 무한히

용서해주시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이런

큰 사랑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

특히 가족들의 잘못을 용서할 수가 있습니다.

똑 같은 일을 두고 각자가 “내 탓이오!”하면

 웃음이 흘러넘치게 되지만,

  “네 탓이오!” 라고 하면 싸움이 일어납니다.

똑 같은 상황에서 이렁나는 두 가정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예를 들어서,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뛰다가

 방바닥에 있던 물그릇을 쏟았어요.

A집 할머니- 아가 괜찮나?        

할매가 아까 방을 닦으면서

치운다고 생각했는데 잊어버렸구나.

아버지- 어무이 아이라예,

내가 먼저 봤는데, 요놈의 신문을

 다 보고 치운다고 생각했는기라예,

내가 잘못했심더. 엄마- 아입니더. 

제가 설거지 시작하기 전에

치웠으면 됐을낀데 지 탓이라예.

아들- 제가 똑바로 안 보고 뛰어서

그랬어예. 제 탓입니더!

이런 가정은 가족들이 모두 항상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B집 아버지- 바로 보던 신문을

둘둘 말아서 퍽 치면서 야 이 세끼야,

 니는 눈까리도 없나?

엄마- 와!  니는 손모가지도 없나?

  니가 쫌 치우마 안 되나?

할머니- 저것들 또 지랄들 한다.

  아들- 우리 집은 완전히 콩가루 집안이네!

이런 집은 싸움이 거치지를 않습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생활 가운데서

가정이 평화를 누리는 공동체가 되도록

  용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이웃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파할 수 있고,

나아가서 우리 교회에 더 나아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까지

기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 미사를 봉헌하면서

우리가 더 이상 말로써 사랑을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용서하는 삶,

가족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작은 일 하나하나에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평화를 건설하는

사람이 될 것을 결심하면서

우리의 결심을 실천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대구대교구 산격성당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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