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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5.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5-03 조회수6,33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7년 5월 3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제1독서 1코린 15,1-8

1 형제 여러분,

내가 이미 전한 복음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3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4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5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6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7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복음 요한 14,6-14

그때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6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학창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늦은 시간까지 시험공부를

하다가 무 졸려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공부할 것은 많이 남아있으니

어쩔 수 없이 어머니께

부탁을 했습니다. “어머니,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시험공부를 해야 하니까

일찍 좀 깨워주세요.”
그런데 눈을 떠보니 아침입니다.

그때 어머니께 “왜 안 깨웠어요?”

라고 짜증을 내며 말했지요.

어머니께서는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기에 잠이나

더 자라고 그냥 놔뒀다.”

라는 것입니다. 안 일어나도

억지로라도 깨우지 않았다면서

어머니께 원망의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시험은 저의 예상대로

 잘 못 봤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험 못 본 것을

누구 탓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어머니 때문에 시험을

못 본 것으로 생각했고

어머니께 그날 저녁에

화를 많이 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그때의 일을 다시금

떠올려보면서 시험 못 본 것이

과연 누구의 잘못인지를

생각해봅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두 말할 필요 없이

바로 저의 잘못입니다.

평소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저의 잘못이고,

스스로 일어나지 못했던

의 잘못인 것이지요.

그런데도 남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면서 내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식으로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으로

남에 대한 불평불만과 원망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조금만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많은 부분에서

바로 내 자신에게 원인이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는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하나임을 말해주면서 그래서

스스로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또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약 예수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런 질문도 하지 않았겠지요.
주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들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주님을 보고 있으며

그 안에서 기쁨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혹시

주님께서 내 곁에 계시지

 않다고 여기면서 “주님,

제가 주님을

뵙게 해 주십시오.”

라는 엉뚱한 기도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나의 믿음 없음이, 주님의

랑을 받아들이려는

마음 없이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Don't give up.

(포기하지 말라) Never give up!

(절대 포기하지 말라!)

Don't you ever and ever give up!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라!)

 (윈스턴 처칠)

필립보.

"주님을 닮읍시다."

존경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닮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오랜 기간을 부부로

함께 한 부부를 보면

참으로 많이 닮았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닮는 것

역시 단지 유전적인 영향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닮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을 보면

 어떤 가정을 꾸미며

살고 있는 지를,

또한 그 부모가 어떤 분이고

배우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의 관계로 똘똘 뭉쳐져

있기에 아버지와 그 아들은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는

얼마나 주님과 닮았을까요?

그만큼 존경하고

사랑한다면 닮아갈 텐데,

우리의 존경과 사랑이 주님을

향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향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주님을 닮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는 주님의 사랑을 보고

 또 그 사랑을 따르면서 주님과

 닮은 우리가 되면 어떨까요?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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