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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6.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6-21 조회수6,270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7년 6월 21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제1독서 2코린 9,6ㄴ-11

형제 여러분,

6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7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8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9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10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11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부유해져 매우 후한 인심을

베풀게 되고, 우리를 통하여

그 인심은 하느님에 대한

감사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복음 마태 6,1-6.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

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항상 많은 사람이 모이는 사람과

반대로 사람이 모이지 않아

늘 혼자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를 따져보면

우리는 이 둘의 차이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관심사와 고민만을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 이외의 사람이나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지루하고

따분해서 가까이 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많은 이들을 모이는

인기 있는 사람은 어떨까요?

이들은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기에 대한 관심사가 아니라

다른 이에 대한 관심사가

더 크기 때문에 자기를 드러내

보이려는 삶이 아니라 남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호의를 베푸는데

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화를 나누면

유쾌하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들을 좋아하고

친해지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나 혼자만 외롭게 살아가는

삶을 원하십니까?

당연히 사람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삶을 원할 것입니다.

러한 삶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내 자신이 어디에 관심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자선 뿐 아니라, 그 뒤에

이어서 오는 기도에 대한 내

용 역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행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하시지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 모습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는 것이면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분명히 칭찬 받을만한

행동이라도 칭찬보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어떻게 보실까요?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행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뿐 아니라

이 세상 안에서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임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집중하는 삶이 아니라,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서

갚아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남모르게 자선이나 기도를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내가 기준이 되는 외롭고

 힘든 삶이 아니라,

남이 기준이 되는 함께하는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안에서뿐만 아니라,

하늘 나라에서도 참 행복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늘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자주 변해야 한다.

(공자)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세 친구"

탈무드를 보면

‘세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왕에게

시 오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 사람은 너무나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세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부탁했지요.
제일 먼저 가장 아끼던

친구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아무런 이유도

말하지 않고 거절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두 번째로 아끼던

친구를 찾아가지요.

이 친구는 왕궁 앞까지만

같이 가주겠다고 말합니다.

서운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요.

이제 마지막으로

평상시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이 친구는

함께 가주는 것은 물론이고

왕에게도 잘 말해주겠다면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이 세 친구가 의미하는 것을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첫 번째 친구는 재산을 상징합니다.

아무리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지만

죽을 때에는 고스란히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 친구는

가족을 상징합니다.

묘지까지는 함께 가지만,

그를 무덤 속에

남겨 두고 돌아갑니다.

마지막 세 번째 친구는

 선행을 상징합니다.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죽음 뒤에도 그와 동행하지요.

더군다나 하느님 앞에서

나를 변호하는 것은

바로 내가 행한 선행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친구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요?

우리의 왕이신 하느님 앞으로

불려가게 될 때 나를 변호해줄

 세 번째 친구인 선행을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탈무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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