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착한 일은 교회 밖에서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도나 오쉐이 신부님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20 조회수3,427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때에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마태 15,21-28)

 

지난 주일 복음에서 베드로는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오늘의 복음에서 가나안 부인은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가나안 부인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기도는 같은 기도였고 주님께서는 기도를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복음에서 주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하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마지못해 도와주신 것처럼 보입니다.

 

나는 유다인을 돕기 위하여 파견되었지

 

가나안인들을 돕기 위하여 파견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어서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유다인들을 뜻했고 강아지들이방인들을 뜻했습니다.

 

그 당시 유다인들은 이방인들을 그렇게 개 취급을 했습니다.

 

그때의 예수님의 마음을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을 개 취급하기 위하여

 

그렇게 심한 말씀을 하셨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가나안 부인의 기도도 들어주시고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그 당시의 사람들의 생각을 나무라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에게 믿음이 있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없는 때였습니다.

 

따라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방인들에게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제자들조차도

 

이방인들을 개 취급했다는 것을 말씀하시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 당시 이방인들도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곳에서 로마의 백인대장을 두고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8,10; 루카 7,9)

 

그리고 제자들에게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르 9,40)

 

그리고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말씀하셨습니다.(루카 11,23)

 

그러나 나와 함께라고 하셨지 너희와 함께라고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똘똘 뭉쳐서 군중을 이루게 되면

여지 없이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배타적으로 되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제자들도 배타적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른 바 착한 그리스도인들’ ‘착한 가톨릭 신자들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넓은 마음도 갖고 있지 않고 성령도 받지 않고 있고

 

그리스도와 같은 연민과 사랑을 갖고 있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교를 싫어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착한 일은 교회 밖에서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교회 밖에 착한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의

 

<비그리스도교에 대한 선언(Nostra Aetate, 2)>에서는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다른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양식과 행동 방식뿐 아니라 그 계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한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 교회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

 

그러나 교회그리스도를 선포하며 또 끊임없이 선포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길이요 진리생명이시며”(요한 14,6)

 

그분 안에서 모든 사람은 풍요로운 종교 생활을 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당신과 화해시키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혜와 사랑으로 다른 종교의 신봉자들과 대화하고 협력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을 증언하는 한편,

다른 종교인들의 정신적 도덕적 자산과 사회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증진하도록 모든 자녀에게 권고한다.

 

 

 

오늘의 복음에서 보면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심지어는 시험하려고 들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실을 알려고 하는 것은 모르기 때문이며

 

무지(無知)에서 달아나면 더 큰 무지에 빠지게 됩니다.

 

거짓 지식이나 얕은 지식은

 

단순히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쁜 무지로 이해를 가로 막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는 말은 솔직하고 겸손한 자세에서 나옵니다.

 

배우는 자세는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어린이처럼 “아무것도 모른다”는

 

맑은 마음을 갖게 되면 금새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잡다한 지식이나 이론을 정리하지 못하고

 

혼돈 속에 있게 되면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그리스도인들처럼

 

좋은 것을 보고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다른 신자들을 헐뜯는 것을 봅니다.

 

자신의 행동은 뒤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행동만 비웃는

 

이른바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나무라는 식입니다.

 

예수님을 해괴망측한 기적만 일으키는 베엘제불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베 위벨랭 신부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고통을 더 많이 당할수록 다른 영혼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즉 무엇보다도 고통 당하는 영혼들은 책망과 수정을 강요당하기 보다

 

안도와 위로를 더욱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 안에 악마가 너무나 깊이 뿌리를 박고 있기에

 

아무도 자신의 힘으로는 악마를 몰아내지 못합니다.

 

더구나 악마는 무척 다양하며 떼를 지어 계속하여

 

우리 안을 깊이 파고 들고있기 때문에 쉽게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악의 세력과 악마와

 

싸우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악마를 물리치실 수 있는 분은 그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과연 악마란 무엇인가요?

 

우리가 가진 나쁜 생각이나 나쁜 버릇이나 나쁜 행동은 모두 악마의 소행입니다.

 

마음에서 나쁜 생각이 나와 나쁜 행동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 증언, 중상이 나옵니다.”(마르 15,19)

 

 

 

아일랜드에서 한 사람이 죽기 바로 전에 기도하면서

 

악마의 말에 머리를 숙이는 것을 보고 신부가 너무나 이상하여 질문을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어요?”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불손(不遜)하게 대할 필요가 있겠어요?

 

죽어가면서까지 적()을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실 악마는 호시탐탐 악의 행동을 하게 부추기고 있으므로

 

항상 깨어 있지 않으면 누구나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기 마련입니다.

 

악마는 우리가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1베드 5,8)

 

그러나 항상 깨어 있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하듯이 악마도 변합니다.

 

자신 안에 있던 옛날 악마

 

즉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나쁜 버릇을 없애지 못했다면

 

옛날 악마들에게 새로운 악마들이 떼를 지어 가세합니다.

 

그리하여 악마 소굴이 되고 맙니다.

 

마치 우리들이 좋은 식당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처럼

 

악마들은 깨어 있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3,20-30)을 보면 조금 더 상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사탄을 쫓아 낼 수 없다.”

 

사탄은 절대로 서로 갈라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덮어씌웠습니다.

 

예수님을 사탄으로 몰아부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 3,28-29)

 

신성을 모독하는 말은 용서를 받을 것이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교부 오리겐(Origen)이 말했습니다.

 

성부와 성자의 능력이 모든 창조물 안에 작용하고 있습니다.(로마 1,20)

 

성인들은 성령께서 생명이 되어주신 분들입니다.(로마 8,10, 갈라 6,8)

 

따라서 성령을 받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한 사도들은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는 말씀을 들을 자격이 없습니다.(사도 1,8)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도들을 두고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한 사람은

 

용서를 받을 것이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태 12,32) 

 

따라서 때때로 말씀에 따라 살지 않은 사람이나 무지나 어리석음에 빠진 사람은

 

진정으로 회개하거나 용서 받을 길이 막히게 됩니다.

 

그러나 한 때는 성령 안에서 살던 사람이 다시 배교(背敎)한 사람은

 

이 배교 때문에 성령을 모독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부정하면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즉 그리스도의 힘과 말씀을 부정하며 마지막 심판 날까지 회개하지 않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