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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레시안 묵상] 구멍난 양말도 좋아요. - 토토로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23 조회수2,575 추천수1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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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바닥을 딛는 느낌이 이상해서 발바닥을 봤더니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한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구멍난 양말은 천냥마트 같은 곳에서 아주 싸게 주고 사서 두 세 번 정도 신었나 봅니다. 그런데 벌써 구멍이 크게 났으니 좀 속상했습니다. 싼 맛에 샀다가 낭패 아닌 낭패를 본 것이죠.

옷장 서랍에 있는 실과 바늘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서툰 솜씨로 구멍난 곳을 꿰매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찢어진 범위가 너무 넓고, 섬유가 닳아서 생긴 구멍인데다 올이 줄줄줄 풀렸기 때문에 꿰맨들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구멍난 부분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버려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당장 버리기엔 너무 아까우니 실내에서만 신는 양말로 삼기로 하고 대충 꿰매서 되는대로 신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구멍난 양말을 신고 있는 것을 본들 어떻습니까.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떤 형제가 맨발에 발목 보호 아대를 착용하고 있기에 어디 다쳤냐고 물어봤더니, 다친 것이 아니라 뒷쪽에 초대형 구멍이 난 양말을 신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보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건 청빈이 아니라 궁상이라고 놀린 적이 있습니다. 귀찮아서 꿰매지 않은 건지, 의도적으로 그런 양말을 신고 다닌 건지 모르지만 대체적으로 못 입고 못 신기 전까지는 버리지 않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사실 복음 삼덕 중에 청빈을 서원했지만 제 방을 둘러보면 가진 것들이 참 많습니다. 책, 옷 등은 물론이고, 책상 서랍에 정리 안 된 상태로 보관된 잡동사니들... 입회할 때엔 옷이 든 가방 두 개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인사이동할 때 개인짐이 몇 박스 나옵니다. 그나마 줄이고 줄여봅니다만 승합차에 꽉 찰 정도로 옮겨야 할 짐이 많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안 입는 옷과 다 읽었거나 읽을 일이 없는 책들을 정리해서 내놓을 예정입니다. 그렇다고 입을 만한 옷을 버린다거나, 깨끗한 책을 완전 처분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수도원에 있는 옷 방에 걸어놓을 예정입니다. 그러면 그걸 필요로 하는 형제가 가지고 가겠지요. 책도 도서관에 내 놓으면 그 책을 필요로 하는 형제가 빌려가거나 가지고 가겠지요.

얼마 전에 침실 문을 열어놓고 잠시 자리를 비운 형제의 방을 지나가면서 힐끔 쳐다보았는데 방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책상 하나에 아주 작은 노트북 하나만 달랑 올려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걸 보고 많은 것을 비우며 사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어떤 수녀님의 경우엔 인사이동으로 새롭게 도착한 수도 공동체에 허리정도 오는 큰 가방과 어깨에 매는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없이 사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이는구나 싶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멍난 양말을 생각없이 처분하지 않고 최대한 신을 수 있을 때까지 신으려고 노력하는데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양말에 구멍이 나긴 했지만 발바닥 부분이기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구멍이 더 커지지 않도록 임시방편으로 꿰맸습니다. 굳이 양말로 멋을 낼 일이 없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당장 새 양말을 살 필요는 없습니다. 최대한 신고 다니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청빈을 실천하려고 노력을 하렵니다. 지금 당장은 없어도 되니 만족하며 살고자 합니다.

내일 신을 양말을 보니 다행이 구멍난 것이 아닙니다. 하하하~ 모처럼 제대로 된 양말을 신게 되겠군요. 관리를 잘 해야 겠습니다. 구멍난 양말을 신고 다니는 것이 자랑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구멍난 양말을 포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어떻게든 양말의 생명을 연장시켜 보겠습니다. 맨발로 돌아다니시면서도 늘 행복하셨던 예수님을 기억하며, 구멍난 양말 꿰매 신는 사람의 자긍심(?)과 보람을 느끼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렵니다.

그나저나 혹시 바느질 고수 없으신가요? 저에게 제대로 된 바느질 기술 가르쳐 주실 분 안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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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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