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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요셉신부님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06 조회수978 추천수1 반대(0) 신고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II. 삼위일체

 6.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F. 지옥에는 무엇이 있나요?

 지옥을 앎으로써 우리는 천국이 왜

행복한 곳인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가 계시를 받아서

쓴 책에 의하면 지옥이 고통스러운 이유를

4가지 정도로 쓰고 있습니다.

 첫 째로 지옥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습니다.

인간이 스트레스가 쌓이면

풀어야 하듯이 하느님도

인간의 죄를 보면서 참아 주기 위해서는

 쌓이는 것들을 버려야 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그 곳이 지옥이고

그 쌓이는 것이 불입니다.

 마르코 9장

47 또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애꾸눈이 되더라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누구나 다 불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무서운 것처럼 보이지만 이 불의 고통은

지옥에서의 고통에서

가장 작은 부분이라고 합니다.

 천국에도 불은 있습니다.

 사랑의 불입니다.

지옥과 연옥에서의

 은 죄에 대한 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성령의

은 이 세상 삶에 대한 입니다.

 사랑하는 만큼 행복합니다.

하느님은 바짝 말라버린

통나무와 같은 인간을

 성령으로 완전히 살라버리십니다.

이것이 영적혼인입니다.

 두 번째로는 지옥에는

자신의 양심을 갉아먹는

 벌레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마음의 후회입니다.

내가 왜 나를 창조해 주시고

 내 죄를 대신 보속하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하루에 단5분조차도

기도를 드리지 못했을까,

  내가 왜 일주일에 한 시간도 성당에 나가서

 미사를 봉헌하지 못했을까,

 내가 왜 이웃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그렇게도 미워했을까,

 내가 왜 아이들을

성당에 보내지 못했을까...

하는 끊임없는 후회가 가슴을

갉아먹는 벌레와도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가서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양심의 자유가 참 자유이고

참 행복입니다.

우리는 ‘선택’이란 영화에서

평생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던 주인공이

 “나는 양심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참으로 자유로웠지만

교도소장은 미움으로 인해서

오히려 육체는 자유로웠을 수

있어도 미움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양심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 참고: 죄-양심의 가책-부끄러움-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

이웃에게 핑계를 댐-미움이 들어옴

-고통 - 회개-용서-

다시 양심의 자유를 얻음 >

 세 번째로는 자신 때문에

같이 지옥으로 오게 된

사람들이 그 사람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다고 합니다.

 루가 16장

24 그래서 그는 소리를 질러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를 불쌍히 보시고

라자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제 혀를

축이게 해 주십시오.

저는 이 불꽃 속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고 애원하자.

 25 아브라함은 ‘얘야,

너는 살아 있을 동안에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라자로는 불행이란

불행을 다 겪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그는

여기에서 위안을 받고

너는 거기에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

 26 또한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건너오지도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27 그래도 부자는

또 애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소원입니다.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는 다섯 형제가 있는데

그를 보내어

 그들만이라도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경고해 주십시오.'

 29 그러나 아브라함은

 ‘네 형제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으면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부자는 다시 ‘

아브라함 할아버지,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찾아가야만 회개할 것입니다.’

하고 호소하였다.

 31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 복음에서 지옥에 간

부자가 라자로를 보내서

자신의 형제들을 지옥에

오지 말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은

 결코 자신의 형제들을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지옥에 간 사람들은

모든 이들이 지옥으로

오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고통을 겪고 있는데

남이 행복해 하는 것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탄이 인간을 끊임없이

 죄 짓게 하기 위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인데 자신들은

천국에서 쫓겨 나왔는데

인간들이 그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눈뜨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해 주고 싶고

고통스러운 사람은

다른 사람도 고통을 당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은

 사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부자는 모든 이가 지옥에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형제들만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형제들은

신이 영향을 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지옥에 오게 되면

그 고통스러움이 힘에 겨워서

자신의 형으로 인해 자신들이

그 고통을 받는다고 하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온갖 고통을

더 보태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의 행복은 어떻겠습니까?

단순히 꺼지지 않는

불이 없는 것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고통이 하나도 없는데다가

자신이 하느님 나라로

인도한 사람들에 의해서

 행복이 더 커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의

이웃 사랑은

하느님 나라에서의 행복을

더 커지게 하는 것이고

이 세상에서의 악행과 남도

그렇게 하도록 한 행위는

지옥에서 고통을

더 가중시키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이 세상에서

충실히 산 것 자체가

 남이 굳이 칭찬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 나라에서도

후회는 있을 것입니다.

 왜 더 열심히 하지

못했을까...등등,

그러나 구원을 받은

이후에는 어찌 되었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주님의 심판에 대해서

 감사하고

만족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고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그런 내용으로도

분하지 않습니다.

가장 큰 것‘하느님을 볼 수

있느냐, 볼 수 없느냐?’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우리에게 가장 큰 행복은

 ‘하느님을 직접 바라 뵈옵는 것

(至福直觀)’이라고 했습니다.

 지옥은 하느님은 없고

하느님의 분노만 있는 곳입니다.

하느님은 아름다움이십니다.

 지옥에는 아름다운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옥에는 사랑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고

 내가 사랑할 사람도 없고

오직 미워하는 사람만 있고

다른 사람도 나를 미워한다면

그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따라서 지금 내가

누구를 미워하고 있다면

이미 한 발을 지옥에

담그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행복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사랑을 받는 느낌입니다.

 천국에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예루살렘은

하느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우리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이 계시면

우리는 예루살렘이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찢으셔서 당신으로부터 물,

즉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시어

우리가 그 생명수를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 생명수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곧 하느님 나라이고

천국이고 행복이고

평화이고 기쁨입니다.

 성령님의 9가지 열매를 보면

먼저 사랑, 평화,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고 기쁨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우리는 그분 집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마태오 5장 

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하느님만으로 충분한 사람 

4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 하느님을 슬프게 한다는 슬픔

5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 겸손의 열매는 사랑,

사랑의 열매는 인내,

 인내하는 사람은 온유합니다.

6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 세상이 주는 만족은

일시적인 것,

 하느님을 만족시킨 것은

영원히 남는 것 

7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 내가 다른 사람을

심판하지 않으면

예수님도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 죄 없이 깨끗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뵙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느님은 ‘하늘’에

사시기 때문입니다.

 9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 그리스도의 삶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만이

가치 있는 삶입니다.

 10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은

지극한 행복입니다.

성인들의 삶.

 11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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