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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기본교리(45-1 죽음과 그 후의 생활)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12 조회수2,058 추천수1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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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완성될 사람들
45-1 죽음과 그 후의 생활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마르 12, 25)."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다음'
이란 말은 '최후의 날 부활한
다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최후의 심판(마태 25, 31-46)
은 이미 널리 알려진
그리스도교의 교리입니다. 
그 최후의 날에 관하여
신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은
많은 관심을 두고 있지만 
 확실한 세부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미래를 살아 볼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적으로는 이를
계시적 교리사항이라 합니다. 
 물질은 유한하므로 틀림없이
끝이 있게 마련이라는 이론에
기초하여 믿고 있는 것이 최후의
심판이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물질 세계만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물질은 끝없는
핵분열과 그리고 또 합침으로
무한히 계속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핵'이라는 것 자체가
물질인 것이므로 '무한'이란
말과는 과학적으로 직결될 수
없는 것이 상식적 이론입니다. 
 그러므로 과학은 어디까지나
물질만을 연구하는 학문이지
 물질계를 초월한 힘의 세계,
물질계의 질서를 있게 한
그 원인이 되는 존재(=창조주)
에 관해서는
언급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는 신학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과학을 성실히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신의 존재나
영의 세계에 관해서는
신학의 말을 듣고 긍정할줄
알아야 정상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종교에 관심 없이 사는
사람들도 이런 과학자들의
말만 듣고 물질계의 원리나
인간의 감각적 반응으로만
살아간다면 이는 진정한 삶을
영위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비물질계에 대해서
비웃는 태도나 무관한 세계로 
 밀어 버리려는 고집은 오히려
가소로운 처사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생이라는 점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삶이 중요하다는 말은
곧 죽음이 중요하다는
말과도 일치합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이 중요하므로
삶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죽음이란 물질계의
세상이 끝나고 이어서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로 윤리적
생활을 얼마나 책임있게 살았고
또 얼마나 후세를 믿고 후세에
맞게 살았는가에 따라 후세의
생활이 결정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로 이 후세의 생활은
물질의 법칙을 떠난
생활이므로 무한히,
영원히 지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무한한 후세에
관하여 모든 종교는 중대한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당장
무한한 세계에 자유롭게
갔다 올 수 없으므로, 
 사람들은 후세의 상황들을
 다양한 양상들로 만들어 내어
자기 종교의 교리로 선전하고
강조 내지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이 말하는
후세의 상황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계시하여 가르쳐 주신 것만을
정리하고 이해하려 하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이상 더 살을 붙인다는 것은
인간의 실수로 오염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톨릭의 교리는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사항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는 것 뿐입니다. 
 그 이상의 상황적 설명들을
 곁들이는 주장은 가설로
취급할 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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